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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12. 2020

할머니의 식은밥


오늘 저녁 밥상엔 콩나물무침 조금과 오이소박이 두 조각이 남았다. 싱크대 하수구에 쏟아 버린다. 물로 헹군 다음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옮긴다. 이미 그 통에는 전날 버린 열무김치 몇 가닥과 밥 덩어리가 있다. 조금씩 그릇에 담는다고 담았는데도 또 남았다.      


콩나물무침은 내가 저녁에 직접 만들었다. 콩나물을 사와 다듬고, 소금을 조금 넣은 물을 팔팔 끓여 데친다. 삐죽 튀어나온 콩나물 대가리 껍질은 못 본척한다. 익은 콩나물을 채반에 받쳐 한 김 식힌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과 깨로 마무리. 에어컨을 틀어놔도 여름 부엌은 덥다. 옥수수밥과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의 과정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 번 상에 올려졌다가 남은 것들은 다 버린다. 차가워진 반찬은 인기가 없다. 나와 남편 중 차가운 반찬을 자처해 먹을 사람이 없다.      


나의 외할머니 류옥련씨는 나와 다르다. 외숙모가 처음 시집 와 쌀을 씻으며 몇 톨을 흘려보내자 불호령이 떨어졌단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허투루 뭘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옥련씨의 밥상에는 반찬이 많다. 가지를 쪄 조물조물 무친 가지나물, 호박을 뭉개 새우젓과 볶은 호박나물, 멸치육수를 진하게 우려 방아잎과 미더덕을 함께 넣고 끓인 된장찌개, 손녀가 온다고 전날 만들어놓은 국물 자작한 장조림, 여름에 새로 담근 살큰한 김치까지. 그릇마다 그득그득 담겨있다. 당연히 한 번에 다 먹지 못한다. 남은 반찬들은 그릇째 랩에 싸 냉장고로 직행한다. 다음 끼니엔 이 반찬들은 나오지 않는다. 소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미역국과 한치를 썰어 넣은 정구지찌짐, 오이에 식초와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무침이 밥상에 오른다. 밥도 찰옥수수를 알알이 따 넣고 새로 했다. 그릇에 덜어놓은 식은밥과 냉장고에 가득한 반찬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철없는 손녀인 나는 따뜻한 정구지 찌짐만 뜯어먹는다.      


옥련씨는 손녀가 떠난 집에서 몇날 며칠 식은밥과 차가운 반찬을 먹는다. 그것들이 상해 먹지 못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먹는다. 물에 만 밥은 색깔이 제각각이다. 흑미밥 옥수수밥 쌀밥이 섞여있다. 누가 없을 땐 쟁반에 밥과 반찬 한 가지만 담아 여섯시 내고향을 보며 먹는다. 티비 속에선 전국 팔도의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데 옥련씨는 물에 만 밥과 차가운 반찬을 먹는다. 버리지 못하는 옥련씨가 답답했다. 좀 버리면 어때서. 멀쩡해도 버리면 어때서. 일부러 버려보기도 하고 내가 꺼내 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옥련씨는 내 손의 그릇을 뺏으며 자기가 혼자 먹을 때 먹으면 된다고, 소디 니는 따뜻한 국 따뜻한 밥 따뜻한 반찬만 먹으라고 한다. 철없는 손녀인 나는 또 못이기는 척 넙죽넙죽 새 반찬만 먹는다.


얼마 전 옥련씨의 집에서 잤던 날, 아침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요즘 옥련씨가 입맛이 없어 보여 별식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낸 게 김밥이었다. 소화력이 약해진 옥련씨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지테리언이 됐다. 재료가 단무지, 당근, 오뎅, 크래미 정도였다. 내 딴에는 정성껏 싼 김밥이었다. 옥련씨는 김밥을 세 알 정도 먹더니 이내 냉장고에서 식은밥을 가져왔다. 전날 저녁 나와 함께 먹고 남은 밥이었다. 옥련씨는 그걸 두고 "먹어 치워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어쩌다 옥련씨는 새로 만든 음식이 있어도 남은 것을 '먹어 치우는' 사람이 됐을까. 옥련씨의 뱃속엔 재활용 밥과 재활용 반찬만 남아있는 게 아닐까. 나의 버럭에 옥련씨는 거듭 미안하다 말하며 식은밥을 식탁 옆쪽으로 밀어놓는다. 내가 떠난 후 혼자 먹을 그 식은밥을. 



할머니 밥상의 키포인트는 참깨 후드려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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