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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05. 2020

언택트 시대, 줌 없는 그녀들의 소통방식

“여보세요”

“어~ 소디 와있었네. 함안 할매다. 할무이 계시나”     


나의 외할머니 류옥련씨 집에서 삐대고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옥련씨의 여동생 재순씨에게 전화가 온다.  시간은 저녁 7 30 정도로 거의 일정한데, 그러니까 ‘6시내고향 끝나고 ‘7시뉴스 마칠 무렵이다. 뉴스 뒤에 이어지는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인 ‘이웃집 찰스 한글에 대한 퀴즈를 주구장창 맞추는 ‘우리말 겨루기  그녀들의 취향이 아니다.      


“어 그래, 머신일이고?”

부산에서 혼자 사는 88살의 언니 옥련씨를 걱정해 함안에서 혼자 사는 84살의 여동생 재순씨가 전화를 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서 그녀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매일 전화를 한다. 그 전화는 매일 머신일이고로 시작해 저녁 뭐 드셨소로 이어진다.      


“아니 그 밭에 호박 구디를 들씨보이까는 몇 개가 있는기라. 그래가지고 따오긴 했는데 집에 앉아 가마이 생각해보이 늙은 호박이 쌔가 만발이 빠지는기라. 다 썩카 내삐리겠드라고. 그래서 날을 잡고 다 긁었지. 그기 또 쌔가 만발이 빠지. 그래도 뭐 낮에 할끼 있나. 그거 긁고 앉았지. 그걸로 찌짐 부치무따 소디랑. 요새 정구지 찌짐만 묵다가 이래무이 또 맛있데.”     


정신이 아득하다. 30년 넘게 경상권 네이티브인 나도 혼미하다. 대충 해석해보자면 밭에 있는 호박밭을 파보니 몇 개가 있어서 따오긴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에도 이미 늙은 호박이 몇 개 있어서 그걸 힘들게 긁어서 부침개를 해 먹었다는 이야기다. 나같은 쪼래비는 범접도 못 할 짬에서 나오는 사투리 바이브에 리스펙하며 아예 그 옆에 배를 깔고 누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이고 코로난지 귀로난지 내사 마 노인정에 2월부터 못 가고. 우리가 갈 데가 어딨냐고. 전염병 돌아, 물난리 나, 경제 다 말아묵어. 나라 꼴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이기 다 나랏님이 덕이 없어서 그런기라. 빔히 알아서 잘하면 말도 안 하지. 머한다고 그래 난리 벚꽃장을 지기느냐말이다”      


옥련씨 손에 태극기만 쥐여주면 이곳이 광화문 광장이요, 보수 혁명의 선봉장일텐데. 옥련씨와 재순씨는 그마저도 역병에 가로막혀 전화통만 붙잡고 열변을 토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저 쪽 사람들은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언택트 시대의 필수품 zoom도 없고, 지지자들과 함께할 유튜브 계정도 없는 그녀들은 그녀들의 방식으로 전화통 집회를 하고 있다.    

  

“그래, 나만사람은 빨리 가야 되는데 뭐한다고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아파서 이 시국에 입원까지 하고, 의사는 파업인가 뭐신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상전이 따로 없다 상전이. 어렵게 만나서 뭐 좀 물어볼라 하니까 의사가 하는 말이 맘에 안들면 지금이라도 딴 병원 가라하데. 내가 기함을 했대도. 퇴원해서 집에 왔는데 희정이가 맨날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백중 내때매 고생이라. 내가 맨날 밤에 기도하면서 내 안데꼬가요, 와 내 안데꼬가요 이라는데 할배는 저 위에서 듣는건지 마는건지 답도 없다.”   

  

빠질  없는 신세한탄 코너다. 어여  세상 하직하고 싶다는 옥련씨의 레파토리. 그러면서도 옥련씨는 딸이 없는 재순씨에게 자신의 딸이자 나의 엄마인 희정의 이야기를 하며 스무스하게 자식 자랑으로 넘어간다. 희정이가 잡채를 해줬다, 매일 오지마라고 해도 부득불 온다, 와서 말동무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재순씨는 그런 언니의 자랑을 알면서도 모른  나는 딸도 없고 새이가 너무 부럽다, 장단을 맞춰준다.      


“엄마야 벌써 시간이 이래됐나. 기막힌 유산 할 시간이다. 전화비 많이 나오겠다. 들으가재이”     

정확히 일일연속극이 시작하기 직전인 8시 25분쯤 그녀들의 전화는 끝난다. 한 시간을 통화하고 나서야 걱정하는 전화값. 스마트폰의 무제한 요금제가 없는 그녀들은 유선 통화료를 내는 사람들이다. 티비로 얼굴을 돌린 옥련씨에게 나는 묻는다.      


“할머니, 나만사람 뭔데. 남한사람?”

“응? 나만사람? 나이 많은 사람”

“그럼 빔히는?”

“빔히가 빔히지 뭐긴뭐야”

“아니 뜻 뭐냐고 빔히”

“모르겠는데? 옛날부터 빔히는 빔히라 했는데”

“할머니 근데 마지막에 함안할머니 어디 들어갔는데?”

“어딜 들어가. 그기 아이고 그냥 인사지. 느그들 빠빠이처럼”     


오늘도 사투리 오답노트에 적을 게 많다. 나만사람, 들어가재이, 난리 벚꽃장, 기함, 새이. 빔히는 사전에도 안 나온다. 어련히 정도로 해석이 되려나. 티비 속 연속극에는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싸우는 형제들이 나온다. 이 뻔한 연속극을 본방사수 하기위해 옥련씨와 재순씨는 전화를 끊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녀들의 전화는 8시 25분에 끝나겠지?              


옥련씨에게 줌이 있었다면, 재순씨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엇을텐데! ㅠㅠ @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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