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옥련씨는 수프 만들기에 빠졌다. 큰이모집에 일주일 다녀오신 후 부터다. 난 어릴때 이모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딸이 없는 이모네의 수양딸이 되고싶었다. 이모가 거부했는지 엄마가 거부했는지 알수는 없다. 사실 최소디보다는 박소디가 어감이 더 낫다. 박소디보다는 제일 특이한 성인 왕소디가 되고싶었지롱.
여하튼 나는 옥련씨가 이모집에서 일주일 동안 뭘 먹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옥련씨는 행동으로 답했다. 수프였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옥수수를 삶아 갈아 체에 걸러 만든 옥수수 수프, 고구마를 삶아 갈아 만든 고구마 수프 등등. 일단 뭘 삶아서 우유와 갈아 끓이기만 하면 수프가 만들어진 것이다.
옥련씨가 오랜만에 낙이 생긴것 같아 뿌듯했던 나는 우유 조달에 열심이었는데, 옥련씨는 우유 입구를 뜯는데에는 재능이 좀 부족해보였다. 우유곽 입구엔 항상 고군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래 뜯고 저래 뜯고 결국엔 다 쥐어뜯는, 그래서 흐물해져버린 우유곽을 매번 보게 됐다. 아, 그럼 플라스틱 뚜껑이 있는 우유를 조달해야겠다. 난 착한 손녀니까 옥련씨의 고군분투가 끝나길 바랬다.
어느날 옥련씨의 몇번째일지 모를 옥수수 수프가 좀 뻑뻑해보여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찾았다가 빵 터졌다. "할머니, 이거 어떻게 뜯은건데" "아니 이 우유는 여는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가위로 짤라뿟다아이가. 불량이다 불량" 멀쩡히 열 수 있는 마개를 놔두고 우유곽 끝을 잘라 수프를 만든 우리 옥련씨. 좀 귀여웠어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