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디짱 Mar 05. 2022

또 구독 당해 버렸다

                

아, 또 당했다. 또 당했어. 이번 달도 어김없이 2일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결제됐다. 예스24 북클럽. 1년 넘게 내가 구독하고 있는 e-book 서비스. 한 달 5500원만 내면 북클럽 내 모든 책을 볼 수 있는 혁신. 독서광은 아니어도 독서왕은 놓취지 않을 꼬에요. 모토의 나에게 딱 맞는 프로그램. 읽고는 싶은데 돈 주고 사긴 살짝 아까운 책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그러다 진짜 꿀잼 책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 신문만 빼고 다 구독한다는 요즘 세상에 이걸 안 하면 섭하지. 한 달에 10권은 거뜬했던 나였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고 있다.  

   

사실 변수가 있었다. 아기였다. 3키로 남짓한 아기와의 생활에 책은 낄 틈이 없었다. 젖을 주고, 젖을 짜고, 젖 먹인 병을 씻고, 젖 먹고 싼 똥을 치우고, 젖을 만들기 위해 먹고, 젖 먹일 때 졸지 않기 위해 잤다. 그야말로 젖 같은 나날들이었다 (부정적 표현 아님 주의). 나는 책을 좋아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게 뭐지. 어떤 신간이 나오는지, 어떤 책이 요즘 인기인지, 새롭게 떠오르는 핫한 작가는 누구인지, 최근 출판계 동향은 어떤지. 줄줄이 소세지처럼 꿰던 사람이었는데. 책은 내 인생에 필수였는데. 육아에 밀려 하등 하찮은 옵션이 되어버린 이 상황 어쩔티비 저쩔티비 킹받네 진짜.     


보지도 않는 이놈의 북클럽, 이번 달은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던게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야속하게도 혹은 야비하게도 롯데카드에서 보내는 북클럽 결제내역 문자는 예스24에서 보내는 북클럽 갱신문자보다 항상 빨랐다. 어버버 하는 순간 결제가 되어버린거다. 내가 구독했다기보다 구독 당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 권도 보지 못한 채 5500원*3을 날렸다. 그게 아까워 접속한 북클럽에는 저번달에도 똑같이 아까워하며 책을 다운받아 놓은 과거의 내가 있다. 애석하게도 그 책들조차 임신출산육아대백과, 애착육아의 기적, 똑똑한 엄마되기 뭐 이딴 식이다. 고상했던 내 독서 취향 어디갔어. 소소한 기쁨을 주던 에세이 목록 어디갔어. 밤새워 읽던 현대소설 어디갔어. 아, 원래 경제 책은 안 읽어요. 원래 먹물들이 돈에는 약하잖아요.      


항상 내 생각 범위의 오차를 벗어난 갱신날짜를 맞추려 알람도 설정해봤건만 에라이 또 당일 취소는 안된다 하네. 골똘히 생각해본다. 이건 예스24의 계략이 아닐까. 지금까지 예스24에서 책 팔며 뿌린 할인 쿠폰들을 이렇게 회수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책을 너무 사랑하는 예스24인 나머지 독자들이 한 권이라도 더 읽게 하려는 걸까. 구독해지 예약도 모르는 이 할미는 다음 달 갱신날짜 전날에 알람을 맞추며 또 읽지 못할 무용할 책들을 다시 다운받는다. 물론 그 날짜가 되어 알람이 울리면 이건 무슨 알람이더라, 하고 넘기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없는 둘리 때매 울어버린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