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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Mar 10. 2022

5년 만의 치킨 게임

그날의 간식은 치킨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삼 남매는 누가 이기던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노무현과 이회창. 이회창과 노무현. 아빠는 노무현을 뽑았고 엄마는 이회창을 뽑았다. 아빠는 이제야 서민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 했고 엄마는 이회창이 두 번은 안 떨어진다고 장담했다.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는 쪽이 치킨을 쏘기로 약속했다. 그다음 날, 우리는 눈치를 보며 치킨을 먹었다. 엄마의 기분이 계속 안 좋았다. 나라 망했다고, 어쩌냐고. 엄마는 계속 걱정인지 울분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왜 나라가 망하는 걸까.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정치였다.


대학에 오니 자동으로 선거권이 주어졌다. 내 전공은 사회학이었는데, 친척 어르신은 나보고 데모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점수 맞춰 지원한 전공이긴 했어도 사실 살짝 기대하고 있었다. 데모. 새터 가니 과 깃발도 시뻘건 색이라 흥분했다. 난 정치적인 대학생이 될 테야. 선배들이 가르쳐줄 테지? 금지된 비디오 같은걸 보는 걸까. 화염병 만드는 걸 배울까. 다큐에서 대학생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열렬히 싸우던데. 하지만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막걸리와 소주였고 얼큰하게 취해 '바위처럼'을 부르며 몸짓을 배웠다. 그게 노동가인지도 모른 채.


2학년이 돼서도 정치에 대해 가르쳐주는 이는 없었다. 무방비 상태서 난생처음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 국밥 먹던 이명박과 앵커 잔상 남아있던 정동영이 붙었는데 나는 기호 6번 문국현을 뽑았다. 첫 선거라 기호까지 기억난다. 나 되게 진지했다고. 여튼 유한킴벌리 회장이었던 문국현을 뽑은건 학교 앞에 직접 연설을 온 유일한 후보였기 때문이다. 휴지 회사 출신이니 왠지 깨끗할 거 같기도 했고. 사표를 던지는 줄도 모르고 엄청 떨면서 도장을 꾸욱 찍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이명박, 아빠는 정동영을 밀었다. 치킨 내기는 하지 않았다. 아빠가 무조건 지는 게임이었다.


4학년이 되니 바빴다. 취업스터디의 막내여서 더 바빴다. 정치 토론이 잦았는데 아는 게 없어서 후달렸다. 선배들의 해박한 지식에 맞장구치면서도 밑천이 드러날까 쫄았다. 빡빡한 스터디가 하루는 취소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이었다. 선배들은 술을 먹다 말고 울었다.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아 난감했다. 그다음 날 혼자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왜 우는지 궁금했는데 그곳에 가니 나 빼고 다 울었다. 이게 정치인 걸까. 내가 사는 세상을 바꿔준 사람을 위해 우는 게 정치인가.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줬나 보네. 줄을 서서 조화 한 송이 올리고 영정사진을 빤히 보았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부부로 살 수 없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35년을 지지고 볶으면서 함께 선거방송을 본다. 이번 선거도 그들은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다. 나도 엄마처럼 정치성향이 반대인 남편과 산다. 둘 다 직업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내적으로는 불같은 싸움이 항상 준비돼있다. 대화하다 급발진해 얼굴 붉히며 싸운 적도 많다. 정치에 1도 관심 없는 이는 말한다. 그게 싸울 일이야? 정치, 그게 중요해? 응. 중요해. 5년간 내 삶을 좌지우지할 그리고 내 아이의 삶까지 좌지우지할 대통령.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새로 뽑혔다.


어제도 치킨을 먹엇다!! 황금올리브 대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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