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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14. 2023

아빠와의 여름밤

내게는 시골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모두 도시의 아파트에 사셨다. 방학이면 시골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영화 ‘집으로’의 주인공처럼 보내고 싶었는데. 꿈뻑이는 소의 그 큰 눈도 스무살이 넘어서야 봤다. 내 본적은 함양군 서상면 00부락이었지만 고향은 아니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나의 본적은 아빠의 출생지다. 아빠의 고향이 00부락이다. 아빠는 퇴직을 하자마자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 퇴직 후 아내를 괴롭히는 삼식이가 판치는 세상에서 아빠는 홀연 함양으로 간다며 짐을 쌌다. 졸혼인가, 했다. 전국적으로 죽어가는 시골을 살리고자 군청들이 안간힘을 쓴다. 아빠가 참여한 귀농 체험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였다. 아빠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30인에 뽑혔다. 내게도 드디어 시골이 생긴 것이다.


“장인어른은 내가 아는 퇴직자 중에 제일 바쁘신거 같아.” 남편 말대로였다. 아빠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아기가 태어나 육아에 찌들었던 나는 아빠가 나를 안 도와주는 것에 심통이 났다. 손주 새끼보다 고구마 새끼 고추 새끼가 중요한 아빠였다. 백일잔치도 근근이 참석한 아빠가 한 번 함양에 오라 했다. 안 가. 못 가. 멀어서 안 돼. 아기 때문에 못 있어. 시골이 생겨도 가지 않은 나였다.      


아빠는 귀농 체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의 본적이자 아빠의 고향인 00부락에 아예 자리잡았다. 엄마는 달에 한번 정도 찾아갔다. 반찬도 해주고 아빠도 챙겼다. 남편은 계속 나를 부추겼다. 한번은 가봐야 하지 않냐고. 토요일 아침 7시, 베이글을 먹다가 짐을 쌌다. 2시간반을 달리고 달려 추상부락에 닿았다. 아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컥했다. 아빠는 우리의 깜짝 등장을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일부러 오지 않았던 불효녀 큰딸의 마음을 부지깽이로 쑤시는 반가움이었다.     


밭에서 토마토도 따고. 동네를 돌며 아기와 꼬꼬댁도 구경하고. 한국인의 밥상st 밥도 먹고. 마당에 불을 지펴 삼겹살도 구워먹고. 불멍도 하고. 아빠가 치는 기타에 아기가 둠칫둠칫 춤을 추고. 내가 어릴때부터 원했던 시골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왜 나는 2년 동안 오지 않았을까. 결혼을 하고 아빠와 종종 부딪혔다. 울분을 토하며 싸우기도 했다. 아빠는 괴짜였다. 엄마는 너무나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고 아빠는 너무나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편이었다. 차라리 아빠가 우리와 떨어져서 자연인처럼 사는게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날 밤에 부산으로 복귀하려던 당일치기 계획은 무산됐다. 좁은 촌집에 얼기설기 얽혀 누웠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까지 살았던 집이 생각났다. 16평 짜리 주공아파트였다. 방이 두개밖에 없어 손님이 올때면 아빠 엄마 나 동생이 함께 잤다. 그런날에 아빠는 항상 재밌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할머니에게 들은 625전쟁 이야기가 제일 실감났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했다. 지금도 나를 사랑한다.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하거나 멀리했을때에도.      


아침 일찍 떠날 채비를 했다.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아빠는 또 오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또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 또 올 수 있겠다는 마음은 들었다. 나 혼자서. 아빠와 단 둘이.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잠시 상상했다.


음총난 동네 입구 느티나무 크라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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