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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Nov 07. 2023

김장이 뭐길래.


며칠 전, 별거 아닌 일로 남편과 말다툼이 있었다.

사소한 일인 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날은 또 뭐에 씌었는지, 남편이 하는 말이 계속 귀에 거슬렸다.


내 말을 곡해하고 따박따박 반박하는 남편이 너무 밉상스러워서, 내 속에서는 화가 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애초에 그렇게 말싸움할 생각은 없었지만, 사회생활하면서 말빨(?)만 는 남편한테 뭔가 밀리는?지는 느낌이 싫어서, 치사하고 못된 방법인 건 알지만 남편을 한방에 이길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럼 나도 하나만 부탁할게. 나도 시댁에서 김장 안 하고 싶다. 김장이 힘들어서라기보다 나한테는 김장이 너무 불필요한 일이거든. 나는 내가 알아서 김치를 담그니 필요할 때 그때그때 조금씩 만드는 게 편하거든. 그리고 시댁에서 김장할 때 절임배추며 다른 재료들 보니 사 먹는 것보다 결코 싸지가 않더라고."


묵직하게 한 방 날리는 나의 말에 남편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당장 다음 주 주말에 시댁에서 김장하기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남편은 더 놀란 듯했다.

하지만 본인이 한 말도 있고, 김장이라는 주제는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담담하게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그럼 이번 김장부터 여보는 오지 마~ 나랑 동생이랑 엄마랑 할게. 저번 김장 때 여보가 웃으면서 요즘 시댁에서 김장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얘기했었잖아? 실제로 주변에 물어보니 시댁에서 김장하는 사람은 없더라고. 그리고 나도 김장할 때마다 여보 눈치 많이 보거든.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해 주니 오히려 고맙네~ 여보 생각 알았으니 이번 김장부터는 오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차분하게 얘기하는 남편을 보니, '내가 좀 심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곧바로 '마음공부!'하고 속으로 외쳤다. 꼭 이렇게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아차차 하게 되니 참 문제다.


이번에도 '나를 시험하는 거다.'라고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곧바로 알아차리긴 했지만 나의 대응방법은 올바르지 못했다.


평소 늘 머릿속으로는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행동해야지, 저렇게 행동해야지.'하는 생각이 있는데, 막상 일이 나한테 벌어지면 평소 했던 생각처럼 행동하지 못하니, 그동안의 마음공부가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아 늘 아쉽고 항상 반성하게 된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김장하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다. 물론 많은 양의 배추를 양념에 버무릴 때 오래 앉아 있다 보니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게 조금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일 년 중 하루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내할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님의 김치는 뭔가 깔끔하고 시원해서 늘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댁 김장에 참여한다. 이번 김장 때도 나 나름대로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어머님한테 김장을 제대로 배워서 레시피로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가짐과 생각을 남편하고 공유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시댁에서 김장하는 게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남편과 소리 지르고 막말하며 싸운 건 아니지만, 서로 예민한 부분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우리 둘 사이에 아주 어색한 기운만 맴돌았다.


남편의 대단한 어떤 약점을 잡은 것 마냥, 돌아오는 김장철마다 그리고 감정이 상할 때마다 '김장'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 나 자신이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장하는 게 정말로 싫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남편한테 먼저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고 남편한테도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카톡으로 남편한테 나의 속마음을 적어서 보내려고 하는 데, 갑자기 남편의 카톡이 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민감하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먼저 사과하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치다니. 이번에도 내가 졌군.'


남편의 사과가 고마운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남편에게 사과 카톡을 보내려던 참이었기에, 곧바로 전송했다.

 

"내가 미안해. 아까 너무 감정적으로 말한 것 같네. 김장 괜찮으니 같이 가서 하자."


남편은 고맙다. 라는 글과 함께 요상한 이모티콘도 함께 보내왔다.


한바탕 소동이 있은 뒤, 좀 생뚱맞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건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그 상황이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고 우스워 혼자 푸하고 웃어버렸다.


이번 김장 때는 본의 아니게 남편이 나의 눈치를 더 보겠지만, 남편 마음 편하게 내가 더 신경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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