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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Sep 28. 2024

모순덩어리

일상의 깨달음


"엄마! 아까 저기 족욕탕에서 노는데, 어떤 형아가 애벌레도 막 돌로 찧고, 메뚜기같이 생긴 것도 머리랑 날개 막 떼어내고 죽이고 그러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더라고! 너무 화가 나고, 그 형이 너무 싫어!"


하교 후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우연히 나랑 만나 집으로 같이 들어가는 길에 아들이 말했다.


아들이 너무 실감 나게 설명하는 바람에 그 곤충들의 마지막 모습이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너무 잔인하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생명들을 그렇게 죽일까?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말자~! 알겠지?"


"당연하지~!!"


그렇게 불쌍한 곤충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각자 할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저녁준비를 하고, 아이들 각자 알아서 씻고.

그렇게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다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다.


내 할 일을 다 끝내고, 아이들이 학습기로 공부할 동안, 난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불을 켜니, 화장실 거울에 초파리 하나가 딱 달라붙어있었다. 그 순간 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고민 없이 손바닥으로 초파리를 향해 재빠르게 내리쳤다.


나의 조준은 정확했다.

그렇게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된 초파리는 변기 물속으로 버려졌다.


한참을 씻다가 변기물 한번 내리려고 변기를 들여다보는데,

내 손바닥에서 죽은 초파리가 힘없이 시계방향으로 뱅뱅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아까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너무 잔인하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생명들을 그렇게 죽일까?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말자~! 알겠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또 멍해지기도 하고, '이건 무슨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초파리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까지 생각했다.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이유를 아주 잠깐이지만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모순'


나와는 거리가 먼, 어울리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나 역시 인간인 이상, 모순덩이리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 보이는 초파리는 계속 내 손바닥에서 죽어나갈 테니까.




지금도 글을 쓰는데, 내 옆으로 초파리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한다. 원래라면 이 성가신 녀석을 아주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내리쳤겠지만, 오늘은 내 마음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난 모순덩어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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