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생각하기 나름.

일상의 깨달음

by 밝을 여름

"역시 물맛은 삼다수가 최고야."


광고도, 홍보도 아니다.

남편이 물 마시다가 한 말이다.


책 읽고 있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푸하고 웃어버렸다. 황당했다.


사실 우리는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초록 대형마트 물만 마셨기 때문이다. 이유는 가격이 저렴해서...


그러다가 '건강'을 중요시하고 특히 먹는 거에 대해서는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거' 먹자라는 주의인 어머님과 같이 살게 되면서, 우리의 상황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초록 대형마트 물에서 삼다수로

계란은 난각 번호가 4에서 2로

두부는 외국산에서 국산으로


처음부터 이렇게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나도 물론 어머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 가격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또 이런 쪽에서는 덜 민감하기도 해서다.

"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싼 게 비지떡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두부는 국산 꺼, 계란은 맨 뒷자리가 1 또는 2 인걸로 사 먹어."

"뭐든지 국산이 좋아."


같이 살게 된 이후로 어머님은 끊임없이 얘기하셨다. 잊을만하면 말씀하시고, 또 잊을만하면 말씀하시고...


잔소리 같아서 듣기 싫을 때가 많았지만, 말대꾸했다가는 또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 어머님이 말씀하시면 나는 늘 긍정적으로 대답을 했었다. 이게 역효과를 불러온 것 일까? 나의 긍정적인 대답이 어머님은 '진짜'라고 받아들이셨는지 더 신나서 말씀하시고 어머님이 이용하시던 사이트까지 친절하게 공유도 해주셨다.

이렇게까지 하시니 나도 내 고집만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실 동안만 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삼다수를 먹게 되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이런 쪽에서는 민감한 편이 아니라, 삼다수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고, 국산두부, 계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나와는 다르게 메이커 브랜드 이런 거에 굉장히 신뢰하는 스타일이라, 삼다수로 바꾸니 물맛이 좋다 하고, 계란도 더 쫀득쫀득하니 맛있다고 하고, 두부도 더 부드럽다고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삼다수 물을 마시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역시 비싼 게 좋아. 다 이유가 있어."


때마침 깨달음과 관련된 책을 보던 중이었던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남편은 내 말과 표정이 자기를 비웃는 것 같다며 씩씩거리더니, 갑자기 휴대폰으로 급하게 무언가를 검색을 다. 그러면서 나에게 삼다수가 미네랄이 많다며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데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남편 말이 다 맞겠지만, 나는 문득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원효대사도 어둡고 깜깜할 때 마셨던 물은 달콤하다고 생각했다가 아침에 밝을 때 자신이 마셨던 물이 썩은 해골물인걸 알고는 구역질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미네랄이 많고 이런 건 나는 모르겠고, 지금 내가 마시는 물이 삼다수든, 해골물이든 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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