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께 보내는 편지

감사한 마음 듬뿍 담아

by 밝을 여름


밤 9시가 되어, 불을 끄고 아이들과 나란히 침대에 누웠어요. 얘기 좀 더하자는 큰 아이의 말에 몇 번 맞장구를 쳐 주었더니, 이제는 아예 잘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더 신나서 얘기하네요. 어쩜 이리도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드는지,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이제 그만 자자고 묵직하게 한 마디하니 그제야 아이들의 입이 다물어집니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캄캄한 방안은 째깍째깍 시계 소리만 들리고 정적이 흐르네요.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조용히 눈을 감으니 오늘따라 문득 아빠 얼굴이 떠오릅니다.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는데, 감긴 두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네요.


2019년 아빠와 함께했던 마지막 해외여행에서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아주 많이 더웠던 그날, 힘들게 그곳 근처까지 가서 왜 아빠만 거대 불상을 보러 가지 않았는지.

괜스레 마음이 헛헛해지네요.

거대한 불상의 발을 만지며 소원 빌던 그때, 아빠도 저희 따라 같이 가서 빌었다면 지금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관광지라 아이스크림 가격도 말도 안 되게 비쌌는데, 그래서 돈 아깝다고 사주지 말라고 그리 말렸는데, 바가지요금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큰 애 손잡고 쿨하게 아이스크림 사주시던 아빠 모습이 생각나네요. 별거 아닌 아주 사소한 추억 같은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때 아빠가 큰아이 손잡고 있던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가슴 한편이 뭉클해집니다.


아빠가 사주셨던 파인애플은 어쩜 그리도 달았는지, 지금도 그 맛을 기억할 정도예요.

두 손으로 수건 양끝을 잡아 목 뒤로 넘겨 천천히 걷던 아빠의 걸음걸이 모습도 생생하고요.

아직까지는 아빠의 모습이 꼭 마치 옆에 계시는 것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요.

나이가 더 들면 선명하고 생생했던 기억들도 점점 희미해지겠지만요.


남아있는 엄마께 더 잘해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생각나고 그리운지.

살아계실 때 더 잘할걸, 저도 어쩔 수 없는 불효자인가 봅니다.

'산효자는 없어도 죽은 효자는 있다.'라는 옛말, 틀린 말 하나 없네요.


아빠!

제 기억 속에 아빠는 아주 젊지도 그렇다고 나이가 아주 많지도 않은 모습이에요.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할 거고요.


저는 여기서 아이들 다 키우고,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까지 지켜보면서 건강하게 있다가 천천히 갈 거예요.


아빠는 지금 젊은 저의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날 때, 제가 아빠보다 더 많이 늙어있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만나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아빠가 보고 싶지만, 아빠 걱정은 하지 않아요. 내가 아는 아빠는 유쾌하신 분이니까 거기서도 즐겁게 잘 지내실 거라 믿어요.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랑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세요. 아빠,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했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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