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 봅니다.

일상의 깨달음

by 밝을 여름


최근 몇 달 동안 정말 고요하고 평온하게 지냈다.

매일 똑같은 루틴대로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 등하교시키고, 운동하고, 밥 해먹이고, 애들 씻기고, 그리고 매일 밤 9시 똑같은 시간대에 잠이 들었다.


운동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했다. 아이들 낳고 처음 갖게 된 나의 첫 자유시간이기 때문에, 4시간을 정말 알차게 바쁘게 운동만 하며 보냈다.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를 오가며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는 데다가 운동까지 하다 보니, 아이들 일정이 다 끝난 저녁 시간대에는 거의 녹초가 되어, 눈이 저절로 감겼다. 침대에 누우면 아이들보다 먼저 잠이 들어 거의 10시간 넘게 숙면을 취했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날 때도 어디 뭉치는 데도 없이 아주 개운하게 일어났다.


인바디 체중계에서는 크게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지만, 눈바디와 내가 느끼는 신체변화는 꽤 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피부가 더 좋아졌다.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니, 피부는 더 매끈해지고 건조했던 피부에 윤기가 돌았다. 눈가 주름도 옅여지고, 얼굴 안색도 생기 있어졌다.


매일 조금씩 미세하지만 신체 사이즈에도 변화가 생겨, 옷 꺼내 입는 재미도 생겼다. 딱 붙는 옷 대신 늘 헐렁한 티셔츠에 어두운 운동복만 입고 다녔는데, 작아서 못 입었던 청바지들이 하나 둘 맞기 시작하니, 어디 특별한 약속 없는 하루이지만 아이들 등하교시킬 때 청바지도 꺼내 입기도 하고, 또 더운 날씨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옷 꺼내 입고 나가기도 했다.

거울 볼 때마다 달라진 나의 외적 변화에 스스로 만족하며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큰아이 친구들 엄마와도 친해져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스스로 '자발적 아웃사이더'라 자칭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최근 몇 달 동안은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로 모임이 많았다. 아이 낳고는 거의 집에만 있던 사람이, 최근 들어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남편도 꽤 당혹스러운 듯 나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지곤 했다.


"요즘 꽤 바쁘네?"


"요즘 엄마들하고 자주 어울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자꾸 어울리다 보니 나도 재미있더라고~헤헤."


" 거봐~ 외향적이라니까. "


난 남편의 말에 웃음으로 마무리지었다.




원래 내향적인 스타일은 아니지만,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다 보니, 외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그 세월이 길다 보니, 그냥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구나하며 살았던 거였다.


몇 년 만에 바뀐 나의 생활패턴에 나도 사실 조금은 당혹스러워 나의 변화에 나름 적응 중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외적 활동으로 바쁘게 보내다 보니, 혼자서 조용히 산책하며 사색할 시간이 없었고, 또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애써 그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하다 보니, 책이라고는 걸을 때 듣는 오디오북이 다였고, 이 마저도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들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일찍 잔다는 핑계로 밤에도 따로 책을 읽지 않았고, 아침잠이 많다는 핑계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 읽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


운동하는 것도 좋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다 좋은데,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기 마련.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운동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석 달을 했더니 9년 묵은 살은 빠졌지만,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내적인 부분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나의 내면에서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평소 신체, 정신, 영혼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가 되어 균형을 이뤄야 된다고 생각해서, 운동으로 몸 신체도 잘 관리하려고 한 건데,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치다 보니, 나의 정신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남이 봤을 땐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들도 나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게 되었다.


최근에 나에게 어떤 불합리한 일이 있었는데, 결국 못 참고 폭발해버렸다. 몇 년 만의 있는 일이었다.

거의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와 막장드라마 한 편 찍은 것처럼 심각하게 싸웠다.


그렇게 이틀을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나의 몸, 정신, 영혼은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얼른 떨쳐내야지 하면서도 나의 에고는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문제가 터진 이후였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나의 몸과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던 그 문제에서는 벗어났고 더 이상 스트레스는 받지 않지만, 내가 했던 행동들을 계속해서 반추하게 된다.


난 식탁에 앉아, 일주일 넘게 36페이지에 멈춰있는 독서대에 놓인 책을 멍하니 응시한 채,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노트를 꺼내, 일기를 썼다.

반. 성. 일. 기. 를.


반성일기를 구구절절 쓰다가, 문득 최근에 나에게 일어났던 문제로 큰아이 친구 엄마한테 흥분하며 얘기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흥분한 나의 모습과 반대로 너무나 평온하고 차분했던 그 엄마의 표정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녀의 표정은 아마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에이. 별거 아니네요.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요. 그냥 넘겨요. 중요한 일도 아니네요 뭘.'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렇게까지 흥분하며 화낼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보면 정말 다 별 일 아니게 보이는 법인데.


그렇게 반성일기를 쓰면서 또 나의 지나간 행동들을 되돌아보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면서, 괜히 기분까지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또 한 번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최근에 나에게 있었던 경험들도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한 우주의 뜻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위안 삼아 본다.


앞으로 나에게 또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생긴다고 해도 이제는 그때 큰아이 친구 엄마 표정처럼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다시 예전의 나의 모습대로 책에 집중하고 나의 내면에 집중해야겠다.

물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되는 존재인가 보다.

그렇기 위해서는 책과 글쓰기에 더욱더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는 언제나 정답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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