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티브이 보지 말고 공부해라고 맨날 잔소리하시니, 공부는 더더 하기 싫어지고 티브이는 더더더 보고 싶고 그랬다.
엄마가 외출해서 집에 안 계실 때면, 바로 이때다 싶어 부랴부랴 티브이를 켜서 초집중모드로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했었다. 물론 마음 편히 시청한 건 아니었다. 외출했던 엄마가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니 가슴은 언제나 콩닥콩닥, 한쪽 귀는 현관문 쪽으로 향한 채 언제든 티브이 전원을 끌 수 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티브이를 봤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날은 현관문 쪽에서 외출했던 엄마의 발소리가 들려 부리나케 티브이 전원을 끄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책상 앞에 앉아 가쁜 숨을 조금씩 티 안 나게 내쉬며 안도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엄마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티브이에다 손을 얹으시곤 뜨거워진 상태를 보고 우리의 티브이 시청 여부를 확인하신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시치미 뚝 떼고 뻔뻔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었으니 엄마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불안함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티브이를 보려고 했던 우리도 대단하지만, 티브이의 뜨거워진 상태로 시청 여부를 확인한 우리 엄마는 더 대단한 것 같다.
그 정도로 난 티브이에 진심이었다.
정의로운 주인공이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만화를 보면서 통쾌함과 희열을 느꼈고,
예쁘고 멋있게 꾸민 가수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음악방송을 보면서 힐링하였으며,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박장대소하며 맘껏 웃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티브이를 보고 바보상자라 하지만, 나에게 티브이는 행복 그 자체였다.그렇게 티브이를 보면서 나도 같이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 티브이가 없거나(자녀교육을 위해 일부러 안 사는 경우임.) 있어도 티브이를 잘 안 보는 사람을 정말 이해 못 했다.
'그 재미있는 걸 왜 안 보지? 설마 무한도전도 안보는 건 아니겠지? 티브이 안 보면 도대체 뭐하지?' 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랬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우리 집 티브이 채널은 자연스레 어린이 채널에만 고정되어 있게 되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티브이 시청에 딱히 제한을 두지 않으니, 이제는 지겨워진 모양이다. 오죽하면 티브이 좀 끄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리모컨으로 티브이 전원을 끌 정도이다. 그렇다고 티브이를 아예 끄면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정적만 흐르는 것 같기도 해서 어린이 채널 말고 다른 채널로 돌리기도 하는데, 문제는 내가 예전 같지가 않다.
이제는 티브이가 재미없다. 심지어 요즘은 티브이에서 나오는 소리도 듣기 싫을 정도이다.
예능도 예전만큼 재미가 없고, 드라마는 챙겨보기 힘들어서 안 보게 되고, 뉴스는 어휴 패스하자.
이제는 누구를 비난하고 험담하는 내용은 듣기도, 보기도 거북하다. 서로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기도 바쁜 세상에 매일 험담하고 비난하는 건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물론 나도 가끔씩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 어느새 싫은 점을 얘기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곧바로 나쁜 생각은 멈추고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뇐다.
'내가 뭐라고. 그 누구도 남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지만 또 특별한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늘 하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정말 소중하고 또 특별해 보인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만약 어떤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싫어하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은 알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만약 어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응원하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은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싫은 건 싫은 거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남을 비난하기 전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면, '나쁜 생각'을 덜하게 되지 않을까.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들만 생길 것이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들만 생길 것이다. 당연한 말이라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
이 짧은 인생, 이 세상엔 내것은 하나 없으니, 빌린 육체, 정신, 영혼 잘 쓰고, 잠깐 머무는 이곳에서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