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없다.

by 밝을 여름


요 며칠 숨 쉬는 게 불편해졌다. 음식을 먹거나, 마스크를 쓰고 있음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음식을 급하게 빨리 먹어서 그런 건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되길래, 삼일째 날부터는 아예 음식을 줄여보기로 했다.

음식을 덜 먹으면 숨 쉬는 게 나아질까 하고.


그런데 음식을 덜 먹어도 여전히 숨 쉬는 게 불편하고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숨이 안 쉬어지니 일부러 크게 숨을 내쉬어야 하고, 그것도 잘 안될 때는 억지로 하품을 크게 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머리털 나고는 처음 겪는 기분 나쁜 고통이었다. 명상이 아니고서야 숨 쉬는 걸 의식해본 적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쉬어져야 할 숨이 잘 안 쉬어지니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오후에는 그 증상이 더 심해져서 억지로 크게 하품을 해도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다른 통증도 아니고 호흡이 안되니 정말 죽을 것 같은 공포였다.

첫째 하원 시간에 맞춰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면서 걷는데, 엄마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재잘재잘 거리며 자꾸만 말을 거는 둘째 때문에 나의 호흡은 더욱더 불안정해졌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답답함은 배가 되어 생전 없던 공황장애까지 오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자꾸만 질문을 하고, 난 억지로 대답하다 보니 답답함에 짜증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급하게 네이버 검색창에 내 증상 키워드를 입력했다.

그랬더니 관련 내용들이 화면에 띄워졌다.


'백신 부작용'


헉! 백신 부작용 하고는 연관을 못 시켰는데... 백신 2차 접종한 지 2주도 훨씬 넘었는데... 왜 이제 와서? 그리고 왜 하필 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나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백신 부작용' 경험자들의 글을 계속해서 쭉 훑게 되니, 어째 마음은 더 초조해지고 호흡은 더 불안정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나의 증상이 백신 부작용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평소 어떠한 기저질환도 없었기에, 게다가 숨쉬기 힘든 증상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최근에 백신을 맞았으므로 백신 부작용과 연관 짓지 않으려고 해도 연관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제일 먼저 언니들한테 카톡을 보냈다.

나의 증상을 얘기하니, 곧바로 큰언니는 백신 부작용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당장 취해야 될 액션들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해줬다.


큰언니는 백신 접종한 병원은 크게 도움 될 일이 없을 거라며 곧바로 관할 보건소로 연락해 보라고 했다. 큰언니가 알려준 관할 보건소로 전화를 해서 내 증상을 설명하니 보건소 직원은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받아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증상이었으면 며칠 더 지켜보다가 병원에 가거나 안가거나했을 텐데, 아무래도 백신 부작용과 관련된 증상이다 보니 시간을 지체하기엔 덜컥 겁이 났다.

오늘은 반드시 가까운 동네병원이라도 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회사일이 바빠 웬만해서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 사정이 더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전화를 잘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오늘 갑작스러운 나의 전화에 남편은 몹시 놀라며 당황해했다. 게다가 전화 내용도 지금 당장 병원을 가야겠다고 하니 남편은 더 심각해져서 목소리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몇 분 채 되지 않아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전히 당황하고 떨린 목소리로 남편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 일단 급한 대로 근처에 사는 시동생한테 집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남편 전화 끊기가 무섭게 시동생이 한달음에 달려왔고, 난 아이들을 부탁하고 미리 검색해 둔 집 근처 내과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의사 선생님 진료를 받고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 그리고 X-ray까지 검사받았다.

검사를 받고 나오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는 남편이 병원에 와 있었다.

혈액검사 빼고는 결과를 바로 알 수 있다고 해서 옷을 갈아입고는 의사 선생님과 다시 면담을 하였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모두 다 정상이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며칠 기다려야 알 수 있다지만 그래도 심장과 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과를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답답하고 힘들었다.


남편과 집으로 오니 어느새 어머님까지 우리 집에 와계셨다. 아픈 나는 오히려 덤덤한데, 똑같이 생긴 어머님과 남편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별일 아닌 일로 온 집안을 들쑤신 것 같아 조금은 멋쩍기도 했다.


방에 들어가서 쉬어라는 어머님과 남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안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다 채 썰지 못한 우엉도 그대로 싱크대에 있고, 둘째가 먹다 남긴 불어 터진 냉면도 상위에 올려져 있는 게 생각났다. 숨 쉬는 것도 숨 쉬는 거지만 엉망으로 해놓은 집안 꼴이 자꾸만 생각나서 마냥 쉬고 있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그런와중에도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라고.


숨 쉬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는데, 단 한 번도 의식하면서 불편하게 숨 쉰 적이 없는데, 요 며칠 고생하고 보니 숨 쉬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 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안심이 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남편이 건네준 우황청심환을 먹어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 갑자기 숨 쉬는 게 괜찮아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내일은 좀 더 자연스러운 숨 쉬기를 기대해보며, 잠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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