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보는데,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은 '못. 생. 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주름이며 점이며 기미까지, 평소 안보였던 잡티들이 언니네 화장실 거울에서는 유난히도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였다.
겨우 몇 초, 아주 잠깐이었지만, 난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못생긴' 얼굴을 더 이상 보기가 싫어 재빨리 손을 씻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화장실을 나와버렸다.
살쪄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늙어 보이기까지 하다니...
이 모든 게 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상으로는 표준체중이지만 미용상으로는 아니었다. 딱 5킬로만 빠지면 모든 게 완벽해질 것 같은데 이 지긋지긋한 살들은 나에게서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밝은 나였지만, 언니 집 화장실 거울을 마주한 그날 이후로, 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처럼 이상하게 힘이 나지 않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었지만 기운도 없고 모든 게 즐겁지가 않았다.
그런 기운 없는 나를 위해, 언니는 부단히 노력해줬다. 예쁘게 꾸며준다고 머리에 헤어롤도 감아주고, 언니가 입었던 예쁜 옷도 나에게 주고...
하지만 아무리 꾸며도, 또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나 자신이 전혀 예쁘지가 않았다.
거울을 본 이후로 자존감은 더 낮아져, 나의 얼굴에선 좀처럼 웃음기를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언니 집에서 우울하게 며칠을 보내고, 언니랑 같이 엄마가 계신 본가로 갔다.
오래간만에 엄마를 뵙는 거라, 언니가 준 예쁜 옷으로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자기 관리 못하는 딸의 모습을 엄마께 보여드리기 죄송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엄마는 나의 외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지적은 하지 않으셨다. (사실 우리 엄마는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신다. 사람은 늘 운동하고 가꾸어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엄마를 오래간만에 본 그날 하루만큼은 나의 '못생긴' 얼굴을 잊을 수 있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화장실에 들어가 씻었다.
다 씻고 난 후 거울을 보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습기가 차서 뿌옇게 된 낡은 거울 속 나의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참 깨끗하고 하얬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안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웃기게도 갑자기 내 얼굴이 예뻐 보였다.
거울의 차이일 뿐인데 한순간에, 정말로 단 한순간에 나 자신이 새롭게 보였다.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난 정말 그랬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 얼굴이 예뻐 보이지? 어쩜 잡티 하나 없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지? 그러고 보니 턱도 좀 갸름해진 것 같네.'
그렇게 조그마한 거울 앞에 서서 '예뻐진' 내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난 한껏 상기된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와서는 엄마와 언니에게 들뜬 목소리로 얘기했다.
"엄마 화장실 거울로 보니, 내 얼굴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이지? 기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살도 빠진 것 같은 느낌이네. 헤헤"
뜬금없는 나의 말에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나의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그렇게 난 원래 밝은 내 모습으로돌아왔다.
또 한 번의 '거울 사건'이후로, 난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몸무게도 그대로고, 얼굴에 있는 잡티들도 그대로이겠지만 괜찮았다. 상관없었다. 이제는 어떤 거울을 봐도 내 얼굴이 제일 예쁘고 내가 제일 최고라고 생각한다.
길을 걸을 때에도 가슴 쫙, 어깨 쫙 펴고 마치 모델처럼 자신감 넘치게 걷게 되고, 걷다가 버스정류장이 보이면 절대 지나치지 않고 유난히 길어 보이는 유리창에 비친 나의 '날씬한' 몸매를 꼭 보게 된다.
참 웃긴 건, 나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하니,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늘 '외모 칭찬'을 해준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5킬로가 안 빠져있는 몸무게이지만, 엄마는 나를 보고 그 정도면 되었다고 하고, 또 나의 친한 지인은 나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얘기해준다.
피부과에 가서 피부관리 한번 제대로 받은 적 없지만, 나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니, 남편은 피부가 왜 이렇게 좋냐며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 나는 예전 하고는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
"나처럼 이렇게 꾸준히 관리해봐 봐. 매일 꾸준히 내가 만든 특별 크림으로 피부에 보습해 주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걸로 가끔씩 마사지도 하면서 관리해봐 봐. 주름도 없어진다니까. 봐봐. 주름 없어졌잖아.흐흐."
어떤 이한테는 재수 없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난 정말로 잘난척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가 진심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오늘도 손때 묻고 얼룩진 거울을 굳이 닦지 않은 채 한참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