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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Feb 09. 2022

육아 반성일기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아들은 그동안 유치원에서 했던 과제물들을 집으로 한아름 가져왔다.

아들은 큰 비닐에 묵직하게 들어있는 과제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꺼내더니,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동안 했던 결과물을 내게 보여줬다.


유치원에서 마냥 노는 줄만 알았는데, 꾹꾹 눌러쓴 글씨며, 꼼꼼하게 칠한 그림까지, 아들의 과제물들을 쭉 넘겨보니 새삼 아들이 기특하고 대견하고, 내가 더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들이 했던 과제물들을 한 장씩 넘겨가며 보고 있는데, 유독 아들이 그린 가족 그림에 눈길이 갔다.

다른 그림들은 그냥 쓱 넘겨가며 가볍게 보게 되는데, 육아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을 많이 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가족 그림, 우리 집' 그림들은 더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아무튼 난 가족 그림에  대해 아들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아들~ 왜 아빠 얼굴만 이렇게 커?"

"엄마, 미안."

"엥? 왜 미안? 미안해할 일이 전혀 아닌데? 엄마는 그냥 물어본 건데?"


나름 감정을 섞지 않고 이성적으로 질문했다고 생각했는데, 예민한 기질의 아들은 뭔가 뉘앙스가 다른 걸 느꼈나 보다.

끈질긴 나의 질문에도 아들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속시원히 대답을 해줬음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렸을 텐데, 반응이 영 시원찮다 보니,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인 채로, 스케치북의 다음 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우리 집'그림이 나왔다.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이건 아빠고 이건 엄마고 어쩌고 저쩌고 그림설명을 하는데, 에잉? 이번에는 나만 옷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검은색은 뭔가 안 좋은 것 같던데, 아들이 나한테 뭔가 불만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아들이 그린 '가족 그림, 우리 집' 그림에 궁금증만 잔뜩 품은 채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저녁까지 다 먹고 나니,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다. 아들은 남편을 보자마자, 또 신이 나서 남편한테도 유치원에서 했던 과제물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문제의' 그림들이 나오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아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말이 없으니, 아들은 묻지 않아도 혼자서 술술 그림설명을 이어갔다.


"아빠! 이건 가족 그림인데, 봐봐. 이건 아빠고, 이건 엄마고~~"


아들의 그림설명을 듣고 나서 남편은 나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왜 아빠 얼굴만 커?"


그러자 아들은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


"아빠우리 집에서 머리가 제일 크잖아~ 그렇지? 맞잖아~"


아들의 대답에 남편은 겸연쩍은  허허 웃는데, 나는 대폭소하고 말았다. 

저녁시간 내내 찝찝한 기분인 채로 궁금해했던 내용이 이렇게 허무할 줄이야.


뒤이어 '우리 집'그림을 보여주며 아들은 또 한 번 설명을 이어갔다.

"이거는 우리 집 그림인데, 여긴 아빠고, 여긴 엄마고, 이건 나고, 이건 동생이야. 히히."


아들의 그림설명이 끝나자마자, 난 이때다 싶어 곧바로 질문을 했다.


"엄마는 왜 검은색이야?"


나의 질문에 아들과 남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마치 둘이 입을 맞춘 듯, 동시에 대답했다.


"엄마는 맨날 검은색 옷만 입잖아~"





난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혼자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최근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몰입해서 본 게 화근이었나?

혼자 상상이 과했다.


난 아직도 많이 멀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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