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젠 Jun 12. 2023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예의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잘못된 태도를 보인다는 건 우리 사이가 너무 가까워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실수를 하곤 한다. 당연히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믿기에 그 기대감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친구 A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곳저곳 여행도 참 많이 했다. 우리는 성격이 꽤 비슷하다. 우유부단한 성격에 결정 장애가 있지만, 해야 할 일은 꼼꼼하게 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를 할 때 이 정도면 됐지 뭐라는 생각에 흐지부지 손을 놓는 편인데, 그 친구는 야무지게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 덕에 우리가 여태껏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에 모르는 사이에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물어본다. 물어보지 않으면 얘기를 안 하기 때문이다. 얘기하기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무던한 성격이 그러한 행동들을 무심히 넘겨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두 주인공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불편하고 어색해하는 장면을 보고 문득 일본어 호칭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상대와의 거리를 새롭게 정의하는 기준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상대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들의 관계를 지레짐작해 볼 수 있다. 


성에 상을 붙여 누구 상, 이건 처음 만났을 때나 그리 친분이 없을 때, 가까운 관계가 아니라 여겨질 때 상대를 호칭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성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성으로 부르는 문화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누구누구 상은 누구누구 씨 정도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김 씨라고 부르는 느낌일 것이다.) 


좀 더 친분이 생긴다면 이름에 상을 붙여 부른다. 대신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허락을 구하거나, 상대가 먼저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한 경우이다. 허락 없이 이름을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긴다. 진짜 가까운 사이(찐 친구, 도모다찌)가 된다면 이름에 짱을 붙여 부른다. 이건 어린아이들 이름을 부를 때나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일 경우에 호칭할 때 쓰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든 어른에게도 쓰인다고 하니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는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진다.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선뜻 만나자고 하지 못하기도 하고, 회사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데 선을 넘는 걸까 두려워 다가가기 어렵기도 하다. 요즘은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칩거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쾌적한 탑층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굳이 외출을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 쌓일 일도, 굳이 바람을 쐬러 나갈 일도 없다. 


세상만사 내 마음 같기만 한 일은 좀처럼 없고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지쳐갈 때쯤에는 '그러려니'와 '아님 말고' 정신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기록을 위한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