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지못한 소문
‘양보단 질’을 추구하는 나에게 유독 기억에 남는 짧은 연애 한 조각이 있다. 당장 옆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10분이면 끝나는 딱 그 정도의 이야기. 그와 처음 만난 장소는 맛있다고 소문난 일본 라멘집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말했고, 돌아온 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의 손이었다. 그의 손에는 물통이 들려 있었다. 그게 우리의 만남이었고 연애의 시작이었다. 연애 초반엔 늘 설렜다. 그와 좋아하는 음식이 같아서, 가치관이 비슷해서, 관심사나 웃음코드가 통해서… 인연이라 믿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그냥 모든 것들이 사랑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입술 옆에 있는 점까지 특별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소문은 우리의 주선자이자 훼방꾼이었다. 소문은 귀를 관통함과 동시에 사람 머릿속을 헤집는 재주가 있다. 그는 유독 ‘동굴’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나흘 정도 집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부재는 나에게 많은 의문을 던졌다. 그는 대체 왜 나랑 만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그를 만나는 것일까, 라는 물음들. 그렇게 혼자서 물음을 내리고 말던 영역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한 건 내가 친구에게 조심스레 그와의 고민을 털어놓던 순간부터였다. 친구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점점 나를 뒤흔들었다. ‘집에 있는 것 맞아?’라고 시작된 질문은 ‘바람피우는 거 맞네’라며 마침표를 내렸다. 그런 나를 잡아줄 남자친구는 옆에 없었다. 헤어지자는 내용이 담긴 나의 메시지는 남자친구를 동굴 밖으로 꺼낼 근사한 먹잇감이 되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 또한 소문의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급류에 빠르게 휩쓸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미처 다 익숙해지기도 전에 연애를 끝냈다. 가끔 귀가 열려 있다는 건 축복일까, 괴로움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오늘도 사람들 말소리에 섞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