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지
남편이나 아내, 상사나 부하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야.
- 어린 왕자 두 번째 이야기
저녁 11시 이제 잠이 들려고 하는 데 어디서 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머리맡에 놔둔 내 폰에서 울렸는데, 누군가 봤더니 생산팀 K 부장님이다.
밤늦은 시간에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을 사업장 안전관리자라면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13년 가까이 안전업무를 하면서 밤에 울리는 전화를 보고 내 직감이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아! 사고가 났네 났어.'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네~ 부장님"
"박 팀장~ 생산팀 P 씨가 설비에 손가락이 끼어서 다쳤어. 나도 현장 반장님한테 연락받고 병원으로 가고 있거든. M 병원이야"
"네~ 부장님"
전화통화로 어떠 상황인지 들은 와이프는 13년 넘게 안전관리자 남편을 곁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초연하다. 가끔은 나보다 더 강단이 있는 거 같다.
옷을 급하게 추슬러 입고, 마이크로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사고가 나면 비상 조직도에 따라 안전환경팀에 즉시 보고를 한다. 보고를 받은 안전환경팀은 부상자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사고 심각성에 따라 병원으로 이송을 한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부상자와 사고 인터뷰를 한다. 작업자가 아파서 대답을 하기 힘들겠지만 그 순간이 아니면 직접 사고 상황의 팩트를 알 수없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물어본다.
"사고는 언제 발생했어요?"
"어떻게 하다가 다쳤어요?"
본인에게 직접 듣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조사를 하면 예측을 하게 되고 사고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사고에 대한 왜곡이 생기고 엉뚱한 사고 대책이 이루어지므로 부상자 본인에게 사고의 팩트를 전달받아야 한다. 이번 사고와 같이 야간시간에 발생한 사고는 안전환경팀이 부재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부상자와 같이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가서 확인을 해야 한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집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운전하고 가는 차 안에서 하는 생각이 갑갑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당황하지 않고 초연하게 마인드셋을 잡아야 하는 시간이다.
내가 안전환경팀장으로 담당하고 있는 3개 공장 모두 1년 이상 무재해를 달성하고 있던 터라 오랜만의 사고 소식이라 많이 놀래고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기가 내 주특기다.
우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않은 범위를 분리한다.
사고는 이미 났고 작업자 P 씨는 손가락이 다쳐서 병원에 있다. 언제 퇴원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의사 선생님 최종 소견에 따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은 오 씨의 손가락 부상 파악과 추후 치료, 정확한 사고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모든 것을 책임 하여 사장님과 본사에 보고하는 것이다.
이 일련의 절차를 20분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병원에 도착을 했다. 이 병원은 응급실이 5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는데 바닥에 피가 떨어져 있다.
'아니 설마 우리 직원 P 씨의 피는 아니겠지?'
응급실 앞에 생산팀장, 관리감독자 그리고 P 씨가 앉아 있었다.
다친 왼손에 붕대를 칭칭 감아놨다. 긴급하게 치료만 하고 입원 수속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내 생각대로 엘리베이터 바닥에 닦여진 흔적이 있던 피는 재해자의 좌측 새끼손가락 상처에서 난 피였다.
이 업무만 지금까지 하고 있지만 사고가 난 후 병원에 누워 있는 재해자와 실제 상처를 보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냥 이 업무를 하는 동안은 앞으로도 안될 거 같다.
사고는 그날 밤 9시 용접기 클램프에 서로 연결을 할 선재를 끼우다가 발로 풋 스위치를 눌러 클램프를 압착할 때 선재를 잡고 있던 좌측 새끼손가락이 끼이면서 발생했다.
아직 세부적인 사고 조사는 더 해봐야겠지만, 우리 현장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고는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으로 발생이 되었다.
그래서 사고의 근본 원인을 작업자의 잘못으로만 치중해 버려 작업자 안전의식 강화에 대한 대책만 주야장천 이어지게 된다. 그런 식으로는 현장 내 사고의 재발을 절대 막을 수 없다.
B (Behavior) = P (Person) +E (Environment)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인적요소로 인해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동물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천차만별 바뀐다.
"와~ 저 사람 임원 되니깐 사람이 변했네. 옛날에 부장이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자리가 사람 만든단 얘기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내 행동도 거기에 맞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안전관리를 함에 있어서 Human 인적요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매번 느낀다.
P 씨 사고도 사고 당시 손가락이 클램프에 끼인 직접적인 원인은 불안전한 행동보다는 설비적인 문제로 인해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현재 P 씨는 정말 다행히도 뼈에는 이상이 없고 좌측 새끼손가락 끝의 피부가 벗겨져서 재생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한 상태다. 아마도 1달 정도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요양기간 동안 통원치료를 받게 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평소에 작업자들에게 없던 안전의식이 생겨서 안전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본인 작업현장의 안전관리에 힘을 쓴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것, 내 동료가 다쳤다는 것도 서서히 잊혀가고 안전관리도 느슨해진다.
사장, 공장장, 조직의 부서장, 현장 관리감독자들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본인들의 안전리더십을 바탕으로 계속적인 교육과 현장을 관찰하여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인을 개선해야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속적인 교육의 힘을 믿는다.
안전교육은 콩나물시루와 같다. 우리가 매일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지만 그 물은 시루를 통해 그냥 흘러내려버린다. 하지만 꾸준하게 물 주기를 계속하면 시루 속에는 어느새 이만큼 키가 자란 콩나물로 가득 차는 것처럼, 안전교육도 한번 두 번 시도할 때는 이 교육이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들지만 학습자들의 안전의식을 쑥쑥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내가 알고 있어야 보이고, 보는 것부터 안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