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사진은 언제 마지막으로 걸렸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거의 인생 처음 걸려본 독감으로 인해 병원에서 혈관 주사를 맞고 있을 때의 사진이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감기몸살 증세로 회사도 못 가고 드러누워 있었는데 독감이었다. 허허허
어쩐지 아무리 처방받은 약을 복용해도 열이 38도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더라니... 스마트 워치로 걸음을 확인했을 때 주말 동안 100걸음도 안 되는 걸음을 기록할 정도로 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보고 먹고 자고를 반복한 결과 몸이 좀 나아져 다행히도(?) 오늘 정상 출근을 하였다. 하지만 세연이가 유치원 개학 하루 전인 어제 독감 판정을 받고 오늘부터 비공식 방학이 다시 시작되었다. (와이프 개빡.... 쿨럭)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혹이 넘어가니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게 술 한잔 마시면 다음 날은 잠을 평소보다 푹 자야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잘 때도 있다. 그나마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유지 아닌 유지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마저도 충분치 않다는 걸 많이 느낀다. 진짜 나이를 들면 체중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그 시점이 온 거 같다.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의 애청자다.
결혼을 하고 그동안 잊고 있던 이성에 대한 부끄러움과 설렘을 티브이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달받는 그 느낌이 좋다. 이번 편은 모태솔로 편인데, 보는 내내 구부러질 수 있는 나의 모든 관절이 다 오그라질 정도로 화끈거린다. 저녁 11시 40분쯤(?) 한창 빠져들어 보고 있는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생산팀 C 씨 안전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문자를 보낸 생산 팀장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
"박 팀장님 아직 안 자고 있었네요?"
"네~ 부장님 작업자는 뭘 하다가 다치신 거예요??"
"C 씨가 기계에 들어가는 제품의 원재료인 구리가 꼬여 있는 걸 발견하고 그 상태로 기계에 들어가면 공정사고가 발생하니깐 꼬인 구리를 본인이 풀려고 하다가 기계에 들아가고 있는 구리 선에 손가락이 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S병원 응급실에 가서 응급처치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엄지손가락 끝과 약지 손가락 끝이 부러진 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
"우선 부장님 야간 관리감독자에게 요청해서 사고 현장을 보존해 주시고, 사고 상황에 대한 확인과 사진 촬영을 사전에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작년 이 맘 때쯤 C공장에서 발생한 사고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다.
안전환경 팀에서 13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고를 경험하였지만 사고가 날 때마다 익숙지 않고 적응이 안 된다.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채워진다.
'아~ 연초인데, 안전목표 잡기도 전에 사고가 났네.... 사장님께 보고 드리면 어떤 잔소리를 하실까... 산재처리하면 노동부에서 J 공장을 블랙리스트에 넣고 불시점검 하는 건 아니야? 우리 안전관리 서류들 미비한 게 많은데... 등등...'
생산팀장과의 전화를 끊고 쉼 호흡을 했다. 내가 명상을 매일 짧게라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다. 온갖 잡생각을 잊어버리고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고 싶은 이유에서다. 나는 눈을 감고 어떻게 해야 될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사고 현장에 가서 관리감독자와 다른 작업자와 같이 사고 조사 및 인터뷰를 하고, 24시간 내에 그룹에 보고해야 되는 재해속보(Flash report)를 작성해야 된다. 작성한 재해속보를 공장장에 검토 요청을 하고 사장님께 보고 한다. 보고 후 사장님 코멘트에 따라 재해속보 수정 작업을 거쳐 본사에 재해속보를 보고하고 본사규정에 따라 사고보고시스템에 입력한다. 그리고 사고원인을 근본적으로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한 미팅을 생산팀, 설비팀 관리자, 작업자 모두 모아서 미팅을 한다. 미팅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관련 부서에서는 대책에 대한 개선을 진행하도록 한다. '
미리 머릿속으로 사고 후속 처리에 대한 설계를 해놓지 않으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게 된다.
안전환경팀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전예방적인 업무와 더불어 사고 발생 후 처리와 사고 재발방지에 대한 업무도 중요하다. 평소에 위기가 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빠르게 대처하고 그걸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그 위기이다.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J공장 안전관리를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H 매니저에게 미리 연락하여 오늘 아침 일찍 출근하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해서 J공장으로 가는 그 시간 동안 어제 머릿속으로 설계해 두었던 사고 처리에 대한 이미지트레이닝을 다시 했다.
"반장님 어제 C 작업자 사고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현장에서 같이 볼 수 있을까요?!"
"네~ 박 팀장님 그럼 5분 뒤에 T-10호 기계에서 봐요"
팀원인 H매니저는 작년 8월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다. 팀장으로서 사고를 처음 접해보는 H매니저에게 회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환경팀에서 어떤 식으로 사고를 수습하고 분석하고 보고하는지의 절차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H 매니저~ 안전관리자로서 사고를 경험해 보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야. 안전관리자인 내가 안전관리를 잘 못해서 사고가 발생한 거 아닌가 하는 죄책감 같을 혹시 가지게 된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고는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해 운이 없어서 발생할 때도 있고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건 이미 과거의 일이야.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자책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우리는 사고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돼. 그리고 앞으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관리를 하는 게 그 사고를 위한 우리 안전환경팀의 일이야. 그러니 오늘 현장 가서 조사 잘하고 보고 잘하고 생산팀 모아서 회의하고 대책 방안 잘 세워서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
사고가 발생한 T-10호 기계에서 반장님을 만났다.
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직접 보면서 C 작업자와 같이 일하는 동료와 반장님과 의 인터뷰를 통해 세밀한 조사를 하였다. 이 사고가 발생하는데 원인은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과 기계의 불안전한 상태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우선 작업자가 기계에 들어가는 원재료인 구리가 꼬여 있는 상태를 발견했을 때 기계를 멈추고 꼬인 구리를 푸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C 작업자는 기계 가동 중에 꼬인 구리를 푸려다가 그 꼬인 구리에 손이 끼었다. 예측컨데, C 작업자 스스로 안전보다는 생산이 먼저라는 의식이 자리 잡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안전한 행동을 했다.
작업자가 그런 불안전한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을 찾아보면 원재료인 구리가 꼬여 있었다는 것이다. 구리가 꼬여 있지만 않았어도 C작업자는 그런 불안전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없었을 거다. 그럼 왜 구리가 꼬여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은 작업자와 반장님의 인터뷰에서 답을 찾았다. 신선기라는 기계에서 원재료인 구리를 규격에 맞게 뽑아내는데 이때 구리를 담는 캐리어의 위치가 신선기 중심과 맞지 않아서 구리가 캐리어 내에 흐트러지게 쌓이면서 구리들이 꼬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에 크게 이 두 가지의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고가 발생이 되었다.
이 사실을 토대로 재해속보(Flash Report)를 작성했다. 작성한 재해속보는 공장장의 검토를 거쳐 외국인 사장님께 보고 하였다. 이메일로 보고하고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사장님은 이 사고가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Stupid~ Stupid~Stupid~~~. He is very stupid."
뒤 이어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왜 작업자가 기계를 멈추지 않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연이어 물어보고는 내일 J공장으로 출근을 해서 직접 현장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말씀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허허허
년 초라 지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회사의 최고 리더가 일깨워주지 않으면 추가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 신 거 같다.
어제 머릿속으로 사고 후 Follow-up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대로 이제는 사고가 발생한 생산팀과 기계의 직접적인 개선을 진행하는 설비팀 팀장부터 현장 관리감독자, 작업자들까지 연락을 취하여 긴급으로 사고분석 회의를 진행하였다.
4M 기법으로 인적요인, 관리적 요인, 작업방법 요인, 기계적 요인에 따른 원인을 나열하고 왜?라는 물음을 질문하면서 사고의 근본원인을 분석해 나가고 그 원인을 개선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세우는 회의이다.
회의를 통해서 최종 결정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가장 시급한 업무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최대한 빨리 개선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사고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내일 사장님께 보고할 예정이다.
어제 생각해 두었던 사고 후 조치들을 하나하나 투두 리스트(To Do List)에서 밑줄 그어가며 처리하고 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박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이번 사고를 통해 차츰 희미해지고 있던 우리의 안전의식을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날 서울 사무소에서 근무하시는 사장님께서 J공장에 내려오셨다. 다른 일정이 있어 J공장에 방문하신 게 아니라 사고 현장을 직접 보시고 관리자들에게 안전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하신다.
우선 사장님과 현장을 가서 사고 발생 원인과 대책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였고, 보고서를 통해 사고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이해를 시켜드렸다.
사고 현장뿐 아니라 J공장 전체에 대한 안전점검을 같이 하고 올라와 회의실에서 어제 사고분석미팅 이후 도출된 사고분석 보고서를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대로 된 사고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과 대책을 적절하게 세운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장님께서는 회의실에 모인 관리자들에게 이번 사고에서 배워야 하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시고는 서울사무소로 다시 올라가셨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고 생산 실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옳지 못한 선택(불안전한 행동)을 하게 되는 데 각자의 이유가 있더라도 안전을 무시하면서까지 하지 마라. 생산과 안전의 기로에서 선택을 한다면 무조건 안전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 꼬인 구리 선을 확인했다면 기계를 멈추고 풀었어야 하지만 생산품질사고가 발생할 걱정으로 인해 안전을 무시하고 기계 가동 중에 꼬인 선을 풀다가 사고가 발생하였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어떠한 것도 안전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명심해라. 안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