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글쓰기를 말하다>
폴 오스터의 <글쓰기를 말하다>는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인 폴 오스터의 잡담을 몰래 엿들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거장의 수다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그런 가볍고 사소한 대화가 아니다. 때로는 무겁고, 기묘하면서, 우울하기도 하다. 그렇게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 동안 눈치를 보면서 계속 듣게 되는 대화에 가깝다.
이 책은 여러 시기의 인터뷰를 묶어 놓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잘 짜인 소설처럼 읽힙니다. 어쩌면 폴 오스터라는 인물은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아니라,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소설 같다고 하였으니, 어떤 소설인지 비유를 하자면 폴 오스터라는 사람이 "왜 글을 쓰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질문은 하나인데 범위가 점점 넓어집니다. 뉴저지의 외로운 유년기, 타자기를 끼고 다니던 파리의 청년 시절,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썼던 첫 장편 이야기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심각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폴 오스터의 진지함은 철학과 교수님처럼 다가오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돌박적인 고백들은 웃음을 짓게 합니다. 예를 들면 "글을 안 쓰면 몸이 아프다."라는 말에는 이 사람은 진짜 글을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느껴집니다.
읽다 보면 이 책은 독립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맥락 없이 툭툭 던져지는 말들이 당황스럽지만, 곧 익숙해지고 그러다 이 사람의 생각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충동이 듭니다. 그러니까 폴 오스터는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중고가가 꽤 비싸네요. 우리나라에 폴 오스터 팬이 많은가 봐요.
글쓰기란 무엇인가?
폴 오스터는 왜 글을 쓰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아마도 폴 오스터라는 사람이니까 많이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자판기처럼 동일한 답을 합니다. "글쓰기는 묻혀 있는 비밀과 만나는 통로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다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비밀은 어디에 묻혀 있는데?"라는 단편적인 질문이 따라옵니다.
폴 오스터는 글쓰기는 일종의 발굴 작업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고고학자는 흙을 파내고 들어가지만, 오스터는 자신의 사고를 깊게 파고든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도 팬을 하나 들고. 그는 컴퓨터 대신 손글씨를 고집하고 수정은 타자기로 합니다. 요즘 시대에 타자기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LP판을 사랑하는 힙스터들도 포기한 구식 아이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폴 오스터는 진심으로 사용합니다. "펜은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직접 받아 적는 도구"라고 도발적인 표현을 합니다.
그의 일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아침에 차 한 잔, 신문 읽기, 그리고 브루클린 작업실로 도보 이동. 그곳엔 전화가 하나 있고, 그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3명뿐입니다. 이 정도 되면 그는 작가가 아니라 어느 스파이를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는 진짜로 세계의 비밀과 접촉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겨줍니다. 이처럼 폴 오스터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일종의 실존적 투쟁이자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오스터가 우연에 집착하는 이유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번 본 것 같은 사람을 다시 마주쳤을 때의 불편함과 그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사실 넌 내 아들이야."라고 말하는 당혹감이 동시에 따라옵니다. 그 세계는 현실처럼 보이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비평가는 오스터의 스타일을 비현실적이라 불렀는데, 그는 이에 이렇게 답합니다. "우연은 현실의 일부다." 딱히 반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지갑을 분명히 침대 위에 두었는데, 냉장고 안에서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실은 가끔 기괴하면서도 굴욕적이기도 합니다.
폴 오스터는 우연을 가벼이 넘기지 않습니다. 그는 그 우연을 매우 집요하게 붙잡고, 그것을 플롯의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릴 적 에디슨을 동경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에디슨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이 <달의 궁전>에 고스란히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영웅이 후에 소설 속 악역으로 등장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은 복잡하지만 이야기는 복잡함에서 시작됩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오스터는 아내의 고향에서 온 낯선 남자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말이 파티지 이 정도면 게임 속 버그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작가의 장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스터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마치 우주가 그에게 시나리오 초안을 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오스터는 말합니다. "삶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걸 그냥 넘기지만, 그는 그걸 기록합니다. 이 차이가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우연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며, 오스터는 그 몇 안 되는 통역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르? 그건 남이 정해주는 것!
문학 평론가란 작업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 작품에 라벨을 붙이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폴 오스터를 보고 "아~ 그 미스터리 작가?"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폴 오스터는 이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소설은 자기를 위해 형식을 스스로 발명한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폴 오스터의 소설은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셜록 홈스처럼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율리시스>처럼 난해하지도 않으며, 동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옛날 옛적에.."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던 이름 없는 이야기꾼, 다시 말해 동화의 집단 창작자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구조에서 상상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오스터는 현대판 동화 작가를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폴 오스터의 작품들은 이상하게도 이질적이면서도 낯설게 다가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 와중에 길 잃은 주인공과 함께 브루클린 뒷골목을 헤매고 자꾸 어딘가 본 듯한 쪽지를 줍는데 그게 다 말이 됩니다. 말이 되는 게 이상한 데, 그게 폴 오스터의 재주인 것입니다.
소설과 영화를 둘 다 한다고?
폴 오스터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 글을 쓰고, 혼자 걷고, 혼자 상상합니다. 브루클린의 작업실에서 하루 6시간씩 커피 없이도 혼자 잘 지냅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이, 현장에서 조명 기사한테 소리도 못 칠 거 같은데"? 같은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폴 오스터는 실제로 <스모크>, <루루 온 더 브리지> 같은 영화를 연출했습니다. 폴 오스터에게 영화란 글쓰기를 하다가 "이제 사람 좀 만나야겠다."라고 느꼈을 때 시작한 사회성 실험 프로젝트 같았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영화 작업을 "글쓰기의 휴식"이라고 표현했다는 데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게 휴식이 아니라, 영화를 찍는 게 휴식이라는 것입니다. 폴 오스터는 "소설은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고, 영화는 함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라는 멋진 말도 합니다.
이러한 양면성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는 고독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가다가 어느 날은 여럿이 모여 대사 한 줄로 두 시간 토론하는 영화 현장에서 웃습니다. 낮에는 은둔형 외톨이, 밤에는 사교 클럽을 들낙거리는 인싸처럼 다가옵니다. 결국 오스터는 혼자서도 잘 놀고, 여럿과도 잘 노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를 말하다."는 작법서, 작가론 같지만 아쉽게도 아닙니다. 이는 작가라는 존재가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고독을 견디면서 매일같이 불확실한 언어의 숲에서 탐험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준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세상의 비밀을 더듬으며 문장으로 기록한 탐험가에 가깝습니다.
고로, 이 책은 작가라는 삶의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는 진정한 문학적 성찰의 기록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타인의 문장 뒤에 숨겨진 생각들을 읽고, 자기 생각으로 문장을 옮기려는 분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