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리라>
활과 리라는 20세기 멕시코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타비오 파스의 시론서이다. 그런데 이는 지루하고 딱딱한 시론으로만 볼 수 없다. 이 책은 시를 매개로 존재와 언어, 역사 그리고 인간과 문명 전체를 사유하는 어느 철학자의 사색이자 시인의 언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본질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하며 시라는 세계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서평
<활과 리라>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시의 구성 요소를 탐구하는 기술적이고 분석적인 장이다. 언어와 리듬 그리고 운문과 산문, 이미지를 통하여 시의 기원을 들여다본다. 2부는 보다 내면적인 층위다. 시적 계시, 영감, 피안 등을 다룬다. 이는 시인이 시를 통해 경험하는 무의식, 초월적인 순간들을 풀어낸다. 마지막 3부는 시와 사회 그리고 역사 사이의 긴장 관계를 다룬다. 시의 사회적 위치와 그 변화에 대해 논의한다.
저자는 시를 단지 언어의 조형물로 여기지 않았고,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표현했다. 그에게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말한다. 시는 본질적이면서도 혁명적이다. 외면의 질서를 바꾸는 힘이며, 내면의 해방을 향한 열림이다. 시는 단지 감성의 산물이 아니라 지성의 수련, 사유의 훈련,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대답이다.
책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2부의 시적 계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동양 사상 특히 바가바드 기타와 불교적 세계관, 자크 라캉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말라르메의 시학 등을 아우른다. 그렇게 그는 시를 세계에 대한 초월적 응시로 새롭게 정의한다. (시인도 지식이 풍부해야 하는구나 ㅠㅠ) 여기에서 사유한다는 건, 적절한 음률을 타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단어가 발화되기 전부터 그것을 예감하고, 그 파문을 몸으로 견디는 사람이다. 고로 시란, 언어를 통하여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지하고 실현하는 예언자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리듬을 통해 시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그는 리듬을 단순한 형식적 장치로 보지 않았고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보았다. 고대의 신화와 제의, 시간과 역사, 문명과 예술 그리고 정치적 질서조차 리듬을 기반으로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듬이란 단순한 박자가 아니라, 존재의 찬동이며 시가 탄생하는 심연의 울림으로 본 것이다.
사실 이 책의 감동은 옮긴이의 깊은 헌신에 있다. 두 명의 역자는 긴 시간 동안 옥타비오 파스를 연구해 왔으며,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무려 10년 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ㄷㄷㄷㄷ 그만큼 번역 과정에서의 깊은 사유, 존경은 본문의 곳곳에서 보일 정도다. 이는 독자에게도 경건한 마음으로 독서하게 이끌어준다.
이 책이 오늘날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활과 리라>는 단지 시인이나 문학 전공자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인간은 왜 시를 쓰는가?", "왜 언어로 존재를 건드리려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시를 통하여 인간의 실존과 문명, 철학을 꿰뚫어 본다. 특히 우리 시대처럼 언어가 가벼워지고, 말이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이 책은 다시금 시의 무게와 언어의 힘을 되묻는다.
이 책은 시가 삶의 곁을 지나는 장식품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심연과 맞닿은 사유 방식임을 말해준다. 문학을 읽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할 만하다.
대선을 앞두고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언어의 피로와 불신 속에 살고 있다. 거대담론은 구호로 소비되고 있으며, 정책은 공약이라는 수사로 가려져 진실은 정략의 틈새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활과 리라>는 언어가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라 말한다. 말이 진심이 되지 못하고, 말이 신뢰를 갖지 못할 때, 공동체의 해체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시는 언어를 되찾는 법이다."
시가 가진 정직함,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의 진실 같은 말이다.
지금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의 시성이다.
언어를 가볍게 흘리지 않는 정치, 수치를 가리고 분노를 유희로 바꾸지 않는 리더인 것이다.
<활과 리라>란 책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언어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한국 사회는 현재 세대와 지역, 계층 이념으로 극심하게 분열되었다. 파스는 시의 본질 중 하나로 리듬을 말했다. 이 리듬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박자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만드는 감각적 통로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대선을 앞두고 내 편을 이기게 만드는 도구로 정치를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진짜 공동체는 함께 울 수 있는 말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시는 공동체의 잊힌 언어다."라는 저자의 말은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연결, 공명, 리듬 그리고 소통과 화합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은 존재론적인 책이다. 인간이 왜 말을 하는지, 시를 왜 필요로 하는지 와 같은 질문들은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체성 혼란에 서 있다. 나의 권리는 어디로부터 시작되는지,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고 어떤 가치 위에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지만, 그 질문을 근본으로부터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정치는 정답을 말하는 기술일 수 있겠지만, 시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정답보다는 정직한 질문이 더 가치 있다.
이 책 중고가가 왜 이리 비싼지 모르겠네요. 올리는 사람 마음이겠죠 뭐.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책을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책의 첫 부분은 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언어의 작동 방식, 산문, 운문의 차이를 조명합니다. 저자는 언어가 단지 소통의 도구가 아닌, 인간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임을 강조합니다. 시란 그 언어의 가장 밀도 높은 형식이라 말합니다. 시는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나 미적 구성물이 아닌, 존재의 진동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이미지와 리듬을 통하여 현실을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언어는 시인의 손에서 기능을 넘어선 존재로 탈바꿈되고, 말 이전의 감각과 직관 그리고 몸의 반응까지 포함한 통합적 체험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다룹니다. 저자는 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무의식, 영감, 계시라는 개념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시인이 단어를 발화하기 전에 그것을 예감하고 그 말이 만들어내는 진동을 견디는 사람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그는 동양의 신, 사상, 불교, 힌두교 그리고 서구의 정신분석학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시의 발생을 철학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합니다. 시는 일상의 시간에서 벗어난 찰나의 틈새에 개인의 자아가 해체되며 세계와 직면하는 순간에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시간과 언어 자아의 구조를 전복시키는 계시의 순간이자, 그 순간에 시인은 자신이 아닌, 전체 존재의 일부로서 말하게 된다고 합니다.
마지막 장은 시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지 질문합니다. 저자는 시가 단지 개인의 내면을 노래하는 게 아닌, 역사와 문명의 틀 안에서 새로운 시간과 질서를 제안하는 힘이라 말합니다. 시는 세계를 설명하는 게 아닌, 세계를 다시 느끼게 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고대의 제의적 시는 공동체의 리듬을 유지하고, 세계관을 형성하는 핵심이라면, 현대의 시는 고립되고 단절된 개인이 다시 공동의 감각을 회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시를 '잊힌 공동체의 언어'라고 표현하면서 시를 통해 우리는 다시 연결되고 다시 기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