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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폴더폰

해태의 글쓰기

by 기픈옹달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내용은 OZGZ.NET에서 볼수 있습니다.

나는 고장 난 폴더폰이다.


오늘도 내 주인은 내 전원을 켰다. 주인이란 놈은 한번 뜻을 세우면 절대 굽히지 않는 성격이다. 내가 배터리만 먹고 있는데도, 전화, 메시지 모두 먹통인데도, TV에서 매일 새 폰을 광고하는데도 모두 무시하고 나를 켰다. ‘오늘은 되겠지...’라고 한 게 벌써 40번째다. 하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


주인은 버튼을 눌렀다, 1분 기다리고, 또 눌렀다, 1분 기다리고, ... 1시간 정도 반복하자 ‘띠리링’ 하고 울렸다. 배터리가 다 닳았다고 내가 울린 것이다. ‘휴... 충전하고 저녁에 다시 켜야겠다.’ 주인은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의 사촌이 운영하는 핸드폰 판매/수리 점에서도 이 폰은 이제 고물인데 왜 아직까지 안 버렸냐고 했고, 요즈음 유행하는 최신 폰을 30% 할인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사지 않는다고 하자 40% 까지 할인해준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주인이 사는 곳은 시골이었고, 사람들도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중. 소 기업조차도 없었다. 핸드폰 판매점이 있었지만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래서 제일 믿음이 가는 사촌이 일하는 곳으로 온 거였다. 이것도 한 달 전 일인데 포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놈도 참 징 하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빨리 나를 포기하고 버리길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내가 주인에게 가져다준 것들은 모두 실망, 안타까움, 아쉬움 등뿐이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은 되겠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난 켜지지 않았다.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충전기에 꽃아 둔 채 일주일을 놔뒀고, 난 8일이 지나서야 켜졌다. 그리고 버튼 먹통이 풀렸지만 전화나 메시지는 안되었다. 주인은 기뻐하면서 ‘이제서야 답하는구나!’라고 좋아했다. 주인은 내가 될 수 있다고 확신이 선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어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더 이상 바구니가 아닌 주인 방 책상에 놓아두었다.


여덟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메시지 먹통도 풀렸고, 뭐든 다 잘 됐다. 통화만 빼고...


주인이 나를 보살 핀 지 1년 정도 되었고, 주인은 나를 자주 썼다. 내 몸이 말을 잘 듣자 나는 컨디션이 아주 좋아 전화 먹통도 풀렸다.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했을 때가 약 1년 전이었고 주인이 노력할 때마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줄어들어 갔고, 점점 긍정적인 생각이 봉우리를 맺고 피어올랐다. 그러자 먹통이 풀리고 컨디션도 좋아졌다. 요즘의 나는 정말 다른 폴더폰 이랑 다를 게 없었다. 그저 모양만 달랐다. 다시 생각해보면 전의 내 생각대로 되었다면, 나의 가능성을 버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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