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Nov 04. 2018

그때의 나를 후회해

강아지똥의 글쓰기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내용은 OZGZ.NET에서 볼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ozgz/1509


안녕? 나야


너 한데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깐 너무 어색하다. 그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해보자.

넌 어렸을 때부터 참 착한 친구였어. 잘 웃어주고, 잘 들어주고, 얌전하지만, 다른 남자애들하고도 잘 어울리는 친구. 그리고 쑥스러움도 참 많았지.


나는 너의 그런 점들이 좋았어.

그때부터 너를 좋아하게 된 거 같아.


초등학교 졸업하고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반이 된 다음부터 우린 더 가까워졌어.


그리고 중3 여름에 결국 사귀게 됐지.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건 사귀는 것도 아니었어. 왠지 모르게 난 ‘사귄다’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어 항상 조심스럽고 너 또한 표현에 있어서 굉장히 답답했고, 서로 연락도 잘 안되고 친구로 지내는 것만도 못하는 사이가 됐어. 우리 둘은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네가 울면서 나한테 말했잖아. 그만하자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어.


근데 또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처음에는 어색했어.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지.

자주 마주치다 보니 그 어색함은 줄어들었고 우린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인사는 잘하고 다니는 그런 어정쩡한 사이가 되어버렸지.


하지만 네가 우리 수학학원에 오면서부터 우리 사이는 완전히 회복되었어.


사이가 회복됨과 동시에 나는 너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했었어. 어쩌면 사귀었을 때 보다 더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더 발전된 사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나에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고, 선생님 말씀을 재치 있게 받아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 주기를 바랐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만큼 너도 그만큼 발전해서 나의 기대는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너와 같이 수업 들으면서, 같이 집에 가면서 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됐어.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 뭐냐고?

넌 하나도 변한 게 없고 발전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젠 확실히 네가 싫어졌어.


나는 네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너의 모습이 괜찮아 보였어. 하지만 이젠 답답해.

말로 너의 느낌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모습에 나의 가슴은 터질 거 같았어. 내가 너의 기분까지 챙겨줘야 하니?

나는 네가 말없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너의 모습이 참 친절하게 느껴졌어. 하지만 이젠 짜증 나. 네가 말을 잘 안 하니 난 계속 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너의 라디오니? 넌 왜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오히려 네가 내 말에 웃으며 반응할 때마다 짜증이 나.


네가 왜 수학 쌤한데 예쁨을 못 받는지 모르겠다고 했지? 그래서 내가 이유를 알려줬잖아.

네가 쌤 말씀을 유머러스하게 받아치지 못해서, 네가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날카롭게 선생님의 말씀을 쳐내서 그렇다고 내가 말해줬잖아. 근데 너는 왜 수긍하지 못해? 왜 계속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부인해? 내가 너를 옆에서 보고 느낀 대로 말해줬으면 고칠 생각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답답해.. 정말 답답해. 내가 너 한데 한 번도 욕한 적 없지? 그날 속으로 엄청 니 욕 했어. 답답한 새끼, 융통성 없는 새끼


그리고 우리 사이에 나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니? 아님 내 얼굴만 보면 돌로 굳니?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는 거야? 항상 집 갈 때도 내가 앞으로 가는 가고 넌 나보다 한 발짝 뒤에 떨어져서 대화했잖아. 내가 앞으로 오라고 해도 넌 몇 분 뒤에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있고. 하.. 정말 답답해 미칠 거 같아. 그 딴 자세로 얘기할 거면 차라리 나랑 대화를 하지 말아.


너에게 화가 났던 것들, 답답했던 것들로 논문 한 편 정도 쓸 수 있을 거 같아.


너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난 너의 그런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어. 더 썼다간 내가 열 받을 같으니깐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


그리고 지금 와서 깨닫게 되었지만 너라는 ‘친구’를 좋아했던 거지

너라는 ‘이성’을 좋아했던 게 아니었어. 내가 헷갈렸을 뿐이야. 내가 어리석은 거였어.


그니깐 우리 이제 답답하게 지내지 말자. 혹시 아직도 나를 좋아한다면 이 글 보고 깨끗하게 마음 접었으면 좋겠어. 그런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 그냥 지나가다가 인사 정도 가볍게 할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로 남는다면 너를 더 좋게 기억하고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이젠 안녕. 나의 친구야.


참고로 내가 이번에 자전거 산 거 학원 끝나고 너랑 같이 집 안 갈려고 산 거니깐 이제 집도 같이 가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기대를 벗어난 이탈리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