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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1. 2018

추억을 찍다

강아지똥의 글쓰기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내용은 OZGZ.NET에서 볼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ozgz/1509


테이프를 책상 구석에서 꺼냈다. 그런데 테이프와 함께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자연스레 떨어진 것을 쳐다보았다. 사진들이었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증명사진. 


어렸을 때부터 가족사진을 보관하고 정리해두었다. 큰 사진은 저쪽에, 중간 정도의 사진은 이쪽에, 그리고 증명사진은 책상 한 칸에, 작은 비닐 팩에 봉해놓은 채로. 그렇게 보관해놓았다. 나도 모르게 완전히 봉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증명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사진들. 오랜만에 보게 된 가족들의 옛 모습. 5년 전의 사진도 있고 10년 전의 사진도 있었고, 15년 전의 사진들도 있었다. 


엄마의 웃는 모습은 그대로지만 머리카락은 더 탄탄하고 검었다. 이모의 얼굴은 그대로지만 목의 주름은 보이지 않는다. 언니의 예쁜 얼굴은 그대로지만 개구쟁이 같은 저 웃음을 참는  어린 모습이 선명하다. 그리고 지미는 돌이 지났지만 살이 너무 많아 목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뽀글머리 때문에 더 못 생겨 보인다. 아니 못생겼다. 


하얀 배경에 사람 하나 있는 증명사진이지만 하나하나의 증명사진들을 볼 때마다 하나의 영상이 같이 떠오른다. 그때 증명사진을 찍었을 때의 기억들.


10년 전쯤 찍은 엄마의 증명사진. 엄마는 회색 티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날 회색 티를 입고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다. 사진기사가 엄마가 입고 있는 티는 예쁘게 나오지 않으니 다른 색의 티로 갈아입고 오라 했다. 그래서 모두가 다급하게 엄마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었다. 다급한 엄마의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12년 전에 찍은 나의 증명사진. 사진을 찍는다고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파마했다. 내 스스로가 굉장히 예쁘다고 느껴서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사진을 받고 괘 만족스러워했었다. 그 파마머리가 굉장히 예뻐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사진을 보고 하루 종일 웃었다. 저팔계를 닮았다면서... 아직도 난 그 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뽀글머리 증명사진을 보며 하나 더 떠올린 기억은 바로 다음 날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니 나의 뽀글머리는 온데 간데 사라져 없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머리였는데 없어져 버리니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속상했을 까. 다시 파마해 달라며 하루 종일 울고불고 떼쓰며 유치원도 안 가겠다고 고집부렸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7년 전에 찍은 증명사진. 난 보라색 티를 입고 언니는 주황색 티를 입었다. 그리고 나는 긴 머리를 깔끔하게 두 갈래로 묵었다. 지금 보니 두 갈래의 머리카락이 작은 산소통 두 개를 매고 있는 듯하다. 깔끔한 나의 머리에 비해 단발이었던 언니의 머리는 정신 사나워 사진기사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언니는 내 머리에 있던 보라색 핀을 슬쩍해서 자기 머리에 꽂았다. 그때 옷이랑 깔 맞춤한 핀이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2년 전에 찍은 증명사진. 여행을 준비하던 중 여권이 만기일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급하게 가는 바람에 머리를 감지 못했고 그곳에서 머리를 쫙 땡겨 하나로 높게 묶었다. 검은색 티를 입고 단정하게 찍은 사진이 예전 사진에 비해 꽤 성숙하게 보인다. 하지만 저 머리와 이마의 경계에 팽팽해 보이는 머리카락만 봐도 아파 보인다.


6개월 전에 찍은 증명사진. 학교 동아리 소개란에 올리기 위해 찍었다. 처음으로 혼자 가보는 동네 사진관에 살짝 들떴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머리는 길게 정리해서 깔끔한 여고생 느낌을 내려고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약간 보정된 사진을 받았는데, 이런... 좀 많이 보정된 듯싶다. 많이 예뻐진 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이미 돈은 냈고 사진관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사진을 학교에 제출했다. 내 얼굴을 제출한 거지만 왠지 모르게 창피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사진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 오랜만에 본 사진 속 인물들은 너무나도 반가웠다. 분명 같이 살고 지내는 사람인데 사진 속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인 거 같다.  그때의 가족이 그립고 그때의 내가 그립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며 사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찍은 나의 증명사진도 함께 새로운 비닐 팩에 담아 넣었다. 나중에 다시 우연히 보게 된다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새롭고 반갑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나는 그 사진들을 다시 기억 속에 봉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립고 반갑게 느껴질 때쯤, 그쯤 다시 열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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