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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1. 2018

이도 저도 아닌데 : <여름, 19세의 초상>을 읽고

하연의 글쓰기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내용은 OZGZ.NET에서 볼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ozgz/1509


허무하다. 내가 생각한 결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내용도 아니다. 


주인공인 남자는 19살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실에만 누워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골짜기 집 여자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러다 여자가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을 식칼로 죽이는 듯한 광경을 목격한다. 심지어 사람 크기만 한 캐리어를 끌고 공사장으로 가 바닥에 묻는 모습도 본다. 여기까지가 책 뒷 표지의 줄거리다. 


제목을 보고 그 책의 내용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취향에 맞는 책을 단번에 고르기란 어렵다. 아무래도 책을 고를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책 뒷 표지에 나와 있는 짧은 글이다. 일단 아무 책이나 집어 뒤에 있는 글을 읽어본다. 앞부분의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기도 하고, 평론가의 평이 적혀있기도 하다. 이 책은 평론가의 평에서도, 짧게 요약해놓은 글에서도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추리에 로맨스가 더해지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랐다. 추리 소설이라는 껍데기 속에 로맨스 소설이 꽉 차있다. 분명히 평론가가 추리성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추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남자가 여자는 아빠를 죽이고 시신을 은폐한 살인자라고 오해한 부분이 작가가 생각한 추리인가 보다.  


남자는 퇴원 후 여자를 쫓아다닌 끝에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여자는 엄마의 과도한 보호에 지쳐 가출을 결심하고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지만 남자는 야쿠자에게 여자의 위치를 말하라고 협박받는다. 남자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며 여자는 야쿠자의 아지트에 제 발로 돌아간다. 알고 보니 그곳은 남자가 아빠라고 생각했던 N유흥의 회장 아지트였고 여자는 회장과 스폰서 관계였다. 단독주택을 너무 좋아하는 엄마는 골짜기 집에 살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회장과 함께 살며 여자와 스폰서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지만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죽게 되어 공사장 바닥에 아빠의 시신이 아닌 아이의 유품을 묻은 것이다. 남자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회장의 옆이라며 남자를 밀어낸다. 


추리를 통해 여자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확실해져 남자가 살인죄를 덮어썼다던 지, 사실은 살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추리해 나가는 걸 기대했지만, 그런 내용은 하나도 볼 수 없다. 단지 추리에 대한 기대를 로맨스가 무너뜨리면 신선하다고 느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나도 여자와 남자가 이어질 줄 몰랐으니까. 예상외의 전개여서 더 흥미로웠던 건 맞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은 뻔하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다. 여자가 아빠라고 추정되는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은폐하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계속 짝사랑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새로운 소재인지, 서로 죽을 만큼 사랑했어도 현실의 벽은 넘을 수는 없다는 게 새로운 소재인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둘 중 어느 쪽도 맘에 안 든다.


이해 안 된 건 남자의 태도다. 여자와 결별하고 나서 그 추억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겨둔다. 사랑이 이어지지 않아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죽음을 무릅쓴 채 그녀가 납치되어있는 야쿠자의 아지트에 처 들어갔던 남자다. 그랬던 사람이 현실의 벽을  넘어볼 생각조차 안 하고 죽을 만큼 사랑한 그녀를 포기한다는 건 어느 맥락에서도 이해가 안 된다. 일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서 결말이 새드 엔딩이다. 자고로 로맨스는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새드 엔딩이나 오픈 엔딩은 뭔가 읽어도 읽은 거 같지 않은 느낌이다. 계속 마음속에 찝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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