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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2. 2018

꿈에서도 공자?

옛날 어느 마을에 호랑이 훈장이 있었더란다. 이 훈장은 툭하면 학동들을 혼내곤 했는데, 특히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호통은 물론 회초리로 매질을 하곤 했지. 그런데 정작 자신은 꼬박꼬박 낮잠을 잤어. 점심을 먹고 노곤할 때면 학동들에게 책을 읽으리고 하곤 잠을 잤지. 어찌나 잠 귀가 밝은지 딴짓이라도 하려면 바로 일어나 회초리를 들고 성을 냈어.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나 봐 날도 덥고, 책 읽기도 물리는 터라 한 학동이 이렇게 물었어.

“훈장님, 좀 쉬면 안 되겠습니까? 낮잠이라도 자면 맑은 눈으로 다시 책을 볼 수 있겠습니다.”

“예끼 이놈! 나는 꿈속에서도 공자님을 만나 뵙고 있다. 낮잠 잘 틈이 있으면 글공부나 더 열심히 하거라!!”

그런데 이 말을 듣고 한 학동이 꾀를 내었어. 무슨 생각인지 다음날 글공부 시간에 훈장님 앞에서 보란 듯이 졸았지.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훈장은 호통을 치며 회초리를 들었어. 그러자 학동이 억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저도 꿈속에서 공자님을 뵙느라 잠깐 졸았습니다.”

“허, 요런 당돌한 녀석을 보게! 그래 공자님께서 뭐라 말씀하시더냐?!”

“예, 공자님께서는 스승님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이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지요. 이 재미난 이야기는 <논어>의 내용을 재미있게 각색한 것이랍니다. 공자는 꿈에서 주공周公이라는 성인을 만난다고 제자들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또 공자의 제자 재아는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게 크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논어>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훈장이 공자를, 재기 넘치는 학동이 재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겁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는 훈장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즉 공자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이야기인 셈이지요. 무턱대고 학동을 혼내는 훈장의 모습을 통해 공자를 콱 막힌 선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공자 학교의 학생이라면 어떨까요? 재아처럼 꾸벅꾸벅 조는 학생일까요 아니면 또랑또랑한 눈으로 선생님의 수업을 귀 기울여 듣는 모범생일까요? 


서당의 모습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공자가 말했다. 맹자가 말했다.’가 될 텐데, 이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가르침을 일컫는 말이지요. 사전을 찾아보면 ‘어려운 문자를 써 가며 유식한 체함을 이루는 말.’(다음 사전)이라 하네요. 위에 소개한 호랑이 훈장의 태도가 딱 그렇습니다. 학동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제 잘난 척만 하고 있으니까요. 


<논어>에 대한 책을 쓴 탓에 <논어>를 주제로 강의 요청을 받곤 합니다. 막상 강연장에 가 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만 모여 있어요. 제가 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인데도 말이지요. 아무래도 <논어>는 영 인기가 없는 책인가 봅니다. '공자왈 맹자왈'로 <논어>를 읽는 까닭이겠지요. 그러나 거꾸로 저는 초등학생이나 청소년과 <논어>를 읽는 게 매우 즐거웠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청소년과 <논어>를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책을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할까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10년 넘게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어요. 물론이지요. 아이들은 전혀 어려워하지 않아요. 거짓말이 아니냐구요? 아니요. 진심입니다. 

큰 소리로 논어 읽기


<논어>가 어려운 책이라는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런 엉터리 소문을 낸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한바탕 혼을 내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견을 심어주어 <논어>를 읽을 생각을 갖지도 못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게다가 <논어>를 읽지 않았거나 제대로 읽지 않고서 저런 말을 하는 게 분명합니다. <논어>는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랍니다.  


저는 논어가 어려운 책이기보다는 낯선 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려운 책이라면 남다른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좀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사람이 읽는 책이라고 여기곤 하지요. 적어도 인생 경험이 풍부해야 하거나. 헌데 옛사람은 논어를 난해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깝고 쉬운 책이라 생각했답니다.


<논어>는 참 오래된 책입니다. 적어도 약 2,000 살은 되었으니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닳고 닳은 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반대로 그 오랜 시간을 견딘 만큼 뭔가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논어>라는 이 오래된 책에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야깃거리를 발견해보려 합니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좀 생생한 이야기로 <논어>를 새롭게 읽어보려 합니다. 


사실 저도 오래도록 <논어>를 공자왈 맹자왈 읽어왔습니다.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로 <논어>를 대하곤 했어요. 전공 공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손에서 털어버렸을 책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긴 글을 쓸 생각을 하는 것은 뻔하디 뻔한 이야기로 읽지 않도록 도와준 여러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논어>를 읽었습니다. 차분하고 호젓한 분위기에서 분위기 있게 <논어>를 읽었다고 오해하시지 말기를. 꽤나 시끄럽고 부산한 분위기에서 <논어>를 읽었어요. 말 그대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교실에서 <논어>를 읽었답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교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 <공자>]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공자와 제자들의 교실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마다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면모를 보노라면 딱딱하고 답답한 공기가 내려앉은 교실은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공자 역시 우리처럼 화를 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걸핏하면 선생에게 혼나는가 하면, 늘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기도 하지요. 


오늘날 우리 교실은 맨 앞에 소개한 깐깐한 훈장의 서당과 비슷할 것입니다. 피곤하고 졸린 데다 따분하기까지 하지요.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당돌하게 들이받는 학동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점일 거예요. 부디 이 글이 훈장 선생의 가르침처럼 하품을 부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학동처럼 당돌한 질문이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혹시 아나요? 꿈에서라도 공자를 만날지. 혹시 만나게 되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귀동냥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 '쉬는 시간'이라 하여 매거진 꼭지를 통해 나누지 못한 내용을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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