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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0. 2018

논어의 역사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두 번째 쉬는 시간

다른 제자백가의 글에 비해 <논어>는 텍스트의 역사에 대해 많은 내용이 남아있습니다. 덕분에 어떻게 <논어>라는 책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완성되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상세히 알 수 있어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논어>는 크게 셋, 제나라의 <논어>와 노나라의 <논어>, 그리고 노나라 공자의 옛 집터에서 나왔다는 옛 <논어>가 있었어요. 이를 각각 <제론齊論>, <노론魯論>, <고론古論>이라 부릅니다. 


이 셋은 각각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하나로 합치고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한나라 말기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논어>의 모습으로 정리됩니다. 따라서 한나라 이전 <논어>가 어떤 모습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연구하는 사람으로는 꽤 궁금한 일입니다. 과연 <논어>의 초기 모습은 어땠을까?


'죽간竹簡'과 '백서帛書'라는 게 있습니다. '죽간'이란 대나무로를 쪼개 이어 만든 책입니다. '백서'는 비단에 적은 글이라는 뜻이예요. 각각 고대 사회의 책의 모습입니다. 종이가 발명되고 널리 쓰이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렸답니다. 그 이전에도 나무 책과 비단 책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 둘은 사용은 편하지만 오래 보관이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이 불태워지기도 했고, 썩어 사라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조그만 조각들이 남아 후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는 합니다.


죽간의 내용을 고칠 때는 칼로 해당 부분을 긁어냈어요.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대표적으로 <노자>의 경우 죽간본과 백서본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어요. 덕분에 고대 사회의 <노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엿볼 수 있답니다. 헌데 문제는 이렇게 세상에 나온 <노자>가 우리가 보는 모습과 달랐다는 점입니다. 순서도 다르고 일부 표현도 다르고... 덕분에 <노자> 연구는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어느 날 <논어>의 낡은 책이 발견된다면 또 다른 논의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백제 유적터에서 죽간으로 된 <논어>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어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는데, 저는 크게 흥미로웠지만 좀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적게 발굴되어서 그랬어요. 1,400년 전 책이 나왔다고 해서 크게 반가웠는데, 그 많은 시간을 살아 남기는 쉽지 않았나 봐요. <논어> 학이편 1,2장 일부만 남았있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좀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논어>의 약 500 구절 가운데 저 두 구절만 발견된 것은 어째서일까? 혹여 옛사람들도 <논어> 앞부분만 줄창 읽어서 그런 건 아닐까? 글세요. 어떤 이유에서 <논어> 맨 앞부분이 발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부분이 발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논어>를 완성한 것은 후한 시기 하안이라는 사람입니다. 보통 하안보다는 그의 할아버지가 더 유명해요. 바로 후한의 십상시에 목숨을 잃은 대장군 하진입니다. <삼국지>에서는 그가 십상시 세력을 견제하겠다고 지방의 군벌을 불러들이지요. 하진이 목숨을 잃고 장안에 들어와 권력을 잡은 자가 바로 동탁입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잃은 하안의 삶은 참 기구했답니다. 게다가 여러 군웅이 등장하여 활개를 치는 바람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하안의 어머니는 빼어난 미모를 가졌나 봐요. 하안은 어머니를 따라 한 군웅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군웅의 이름은 아마 들어보았을 거예요. 난세의 간웅이자 치세의 능신! 바로 조조입니다. 


하안은 조조의 집안에서 조조의 양자처럼 자랍니다. 이른바 귀공자가 된 것이지요. 조씨네 집에서 자라면서도 하안은 꽤 당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태자가 입는 옷을 입고 활보하고 다녔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조조의 아들 조비가 하안을 그렇게 미워했다고 해요. 이후 그는 공주의 남편, 즉 부마가 됩니다. 그래서 역사 드라마 등에서는 ‘하부마’라고 불리기도 해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와 결혼한 그 공주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는 같은...


하안의 기행을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그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역사에 남아 있는 하안에 대한 기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는 그가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 바로 고평릉 사건 때문이라 보는 입장도 있어요. 고평릉 사건은 사마의가 아들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는 사건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데 그 가운데 하안도 있었습니다. 사마씨에 목숨을 잃은 주요 인물 가운도 하나였어요. 사마씨의 집권 이후에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그에 대한 평가를 좀 걸러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인 행보, 역사적인 공과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당당하게 <논어>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입니다. 그의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이전까지의 <논어> 주석을 종합하였고, <논어>를 총 20편으로 정리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논어>는 하안의 손을 거친 책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지면을 통해 소개해야 하겠어요. 나중에 <주희, 논어를 읽다(가제)>라는 책이 나오면 하안을 둘러싼 이야기를 자세히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리 공을 들여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제가 번역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목은 <Zhu Xi's Reading of the Analects - Canon, Commentary, and the Classical Tradition>이예요. 현재 대략적인 작업은 끝났어요. 아마 내년 초에는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흠..;;)


내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더 소개하면 <논어>의 대표적인 두 주석, 하안의 <논어집해>와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注>를 비교하는 책입니다. 두 주석은 <논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석으로 꼽히기도 해요. 하안의 것은 옛날 주석이라는 점에서 고주古註, 주희의 것은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신주新註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각 시대를 대표하는 두 주석이라는 뜻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보통 주희의 해석을 바탕으로 <논어>을 읽고 풀이하는데, 좀 다르게 읽고 싶은 경우 하안의 옛 주석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한동안 <논어>를 읽고 공부했지만 <논어> 해석의 역사를 조망한 책은 쉬이 찾아보지 못했어요.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진 분이 있다면 이 책이 그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변변찮은 실력으로 번역에 뛰어든 이유도 제가 크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대체 <논어>는 어떤 역사를 가진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저도 <논어>의 주석에 대해, 그 해석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부분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제가 <논어>를 ‘시끌벅적 무지개떡’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커요. 한 시대, 한 목소리를 담은 균일한 내용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 <논어>의 큰 특징입니다. 그리고 초기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았던 탓에 <논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풀이가 지층처럼 쌓였어요. 차곡차곡 쌓인 <논어> 지층의 단면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줍니다. 이 책은 주희를 통해 어떻게 송대에 극적인 전환이 가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책으로 빨리 독자들을 만나기 바랍니다. 어서 후반 번역 작업에 힘써야겠어요. 아자아자!!


주희는 <논어>의 역사 뿐만 아니라 중국 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논어>의 역사와 그 지층의 단면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기도 합니다. 지엽적인 부분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허나 이런 이야기를 참고하면, 하나의 책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논어>를 다른 식으로 읽고 풀이한다면 한 번쯤은 이런 역사와 배경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논어> 자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공자를 만날 예정이에요. 인간 공자의 출생부터 다루어 볼 거예요. 그럼 다음 월요일에 따끈따끈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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