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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9. 2018

시끌벅적 무지개떡

작가들은 책 제목을 짓는데 많은 공을 들이곤 합니다. 제목이 책의 얼굴이 되는 터라 멋진 제목을 찾고 싶어 골똘히 고민하지요. 헌데 옛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제목으로 붙이곤 했어요. 예를 들어 <맹자>니, <순자>니, <노자>, <장자> 따위가 그렇습니다. <맹자>는 맹자의 말을, <순자>는 순자의 말을 담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공자>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야 할 거예요. 공자는 위에서 언급한 맹자나 순자, 노자나 장자보다 훨씬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딴 책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 공자의 말과 행적은 <논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연구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어째서 <공자> 대신 <논어>라는 책이 있게 된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오래전이라 언제 누가 이 책을 엮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예요. 다만 약 2,000년 전에 공자의 후예들이 이 책을 정리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논어>를 펼치면 대부분 ‘자왈子曰’이라는 말로 시작해요. 풀이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뻘 되는 사람들이 공자 선생님의 말씀을 정리한 책이 바로 <논어>입니다.


공자 선생님의 말씀을 정리하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나 봐요. <논어>라는 책의 제목이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줍니다. ‘논論’은 ‘토론討論’이라는 말처럼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걸 이야기합니다. ‘어語’는 ‘언어言語’라는 말처럼 ‘말’을 의미해요. 따라서 ‘논어’를 풀이하면 ‘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아마 공자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모여 선생님의 말과 행적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거예요. 


공자와 제자들 @曲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자는 평생 3,000명의 제자를 가르쳤다고 해요. 그 가운데 세상에 이름을 떨친 제자는 7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제자들은 출신도, 나이도 다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내용도 달랐어요. 그래서 <논어>를 보면 제자들끼리 서로 말다툼을 벌이는 부분도 있답니다.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시끄러웠을까요. 게다가 선생님의 말씀을 정리하는 것이니 열띤 토론이었을 겁니다. ‘논쟁’이라 부를 정도로 치열한 다툼이었을 거예요. 


<논어>는 이 열띤 토론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토론이 잘 마무리되었고 합의된 결론이 있었다면 <논어>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양의 책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나 토론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선생님의 말씀이 완벽히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책으로 엮어졌습니다. 그래서 <논어>를 펼쳐보면 여러 말이 두서없이 마구 뒤섞여 있답니다. 


그것뿐인가요 공자 이외에도 여러 제자들의 말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는 물론, 제자들의 말, 공자의 제자가 자신의 제자와 나눈 대화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례로 증자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도 꽤 어린 축에 속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도 남아 있어요. <논어>의 주인공은 공자가 틀림없지만 그 밖의 제자들도 여럿 등장한답니다.


그래서 이 책, <논어>를 ‘시끌벅적 무지개떡’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면에서 시끄러운 책이예요. 실제로 <논어>를 두고 ‘학자들의 수다’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어요. <논어>의 형식을 한마디로 잘 압축한 매우 훌륭한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소란스러움에도 층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대마다 차근차근 누적되어온 다양한 흔적이 있답니다. 마치 무지개 떡처럼 말이지요. 


논어는 한 사람의 생각과 글이 아니예요


커다란 시루에 여러 사람의 생각과 말이 모였어요. 당연히 가장 아래에는 공자 본인의 말과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 위에는 공자 제자들의 말과 생각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것뿐인가요? <논어>라는 책을 편집하고 완성한 사람도 하나의 층을 이룬다고 할 수 있어요. 비록 앞과 비교하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논어>라는 무지개떡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우리가 <논어>를 만날 때는 여기에 적어도 두 층이 더 쌓여있어요. 하나는 ‘주석’, 다른 하나는 ‘번역’입니다. 우선 번역은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논어>가 옛 한자로 된 글이다 보니 오늘날 우리말로 옮겨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한자를 쓰는 중국 사람도 오늘날 말로 바꾸어야 읽을 수 있어요. 힘이 닿으면 옛 한문을 원문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번역의 도움을 빌리는데, 이때 번역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논어>를 만납니다.


‘주석’은 옛사람이 붙인 일종의 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워낙 오래된 글이다 보니 옛날 사람도 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글자의 뜻을 풀이하기도 하고, <논어>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해석해 놓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논어>의 본래 구절과 주석이 층층이 섞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논어> 구절 중간에 기록된 이런 주석을 ‘행간주석’이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과거 <논어>를 읽는 사람들은 <논어> 구절 일부를 읽고, 그에 대한 주석을 읽고, 다시 나머지 구절 일부를 읽고, 거기에 붙인 주석을 읽고… 이런 식으로 <논어>를 읽어야 했어요. 당연히 책도 꽤 두꺼워졌답니다. 


[四書大全論語集註大全] 논어 원문과 주희의 주석, 주희의 주석에 대한 주석까지...


이렇게 시끌벅적 무지개떡, <논어>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층층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논어’라는 제목은 꽤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목소리를 담았다는 <논어>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지요. 거기에 후대 사람들이 주석과 번역을 통해 여러 생각과 의견을 덧붙일 수 있었다는 점도 이야기해줍니다. 또한 오늘 우리도 그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말해주고 있어요. 


<논어>는 제목 그대로 말들로 엮인 책입니다. 또한 다양한 말들을 불러오는 책이기도 해요. 가끔은 <논어>라는 책 제목을 빌려 오늘 새로운 ‘논어’를 엮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공자 선생님과 제자들의 말을 옮겨둔 것처럼, 우리도 <논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기록해 보는 것이지요. 제법 재미있는 작업이겠지만 그 일은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일단 우리는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논어>를 만나보려 해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당연히 공자입니다. 다음에는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담긴 비밀스런 이야기를 만나보도록 해요. 




* 이번 쉬는 시간에는 '논어의 역사'에 대해 더 이야기를 덧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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