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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5. 2018

착시효과 (단편소설) #3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 내용은 OZGZ.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ozgz/1509


<챕터 2. 병>


방 안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콤한 향 냄새가 지윽하다. 창문이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립된 장소에 홀로 선 기분이 든다. 햇빛도 들지 않고, 바람도 드나들지 않은 미지의 세계. 그런 몽환적인 기분으로 나는 수사에 나섰다.

수사 대상은 피해 학생의 정신병원 의사. 방금 전부터 안경을 치켜올린 채 느긋하게 학생의 기록을 찾고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의사 가운이 방 분위기와 잘 맞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음산했다. 이 방 안 기운이 전부 이 사람한테서 나온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불편한 감각이다.


“여기 있네요.”


피해자의 정신병원 기록은 수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나는 지나친 억측으로 수사를 몰아갈 뻔한 형사로 낙인찍혀버렸다. 그렇게 빨리 심문에 나선 탓이었다. 어찌 됐든 수사는 수사다. 앞에 있는 의사에 집중하기로 한다.


“... 여기 지금까지 검진에 쓰였던 자료들입니다. 마음껏 보시지요.”


그는 입꼬리를 약간 올렸는데 그렇게 미소가 안 어울리는 사람은 또 처음 본다. 깨진 거울로 사람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나에게 건넨 자료는 무슨 그림이거나 짧은 글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전부 밝은 분위기였다. 미소 짓고 있는 가족, 친구들과 놀러 간 놀이공원 이야기 등등.


“꽤 밝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아, 네. 그렇네요.”


갑작스러운 말에 흠칫 놀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우울증 환자라고 하면 다들 엄청나게 이상한 경우만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그 반대죠. 현대 사회에서는 엄청나게 흔한 질병이죠. 물론 만성 우울증의 경우 해마가 퇴화되는 등 큰 증세도 있지만 말이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 피해자의 경우에는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그게...”


사실 그다지 집중은 되지 않는다. 혜정이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의사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젓는다. 


“아무것도 이상한 게 없더군요.”

“네?”


나는 외친다. 하지만 당혹감에 말은 그대로 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못다 한 말은 표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병원에서는 분명히 피해자의 기록이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상하다. 그는 내 표정을 읽고 대신 답해준다.


“저희 쪽에서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경찰서에서 확인도 안 했나요? 이렇게 급하게 저를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글쎄요. 다들 생각이 있으셨겠죠.”


이상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찡그려진 미소를 답례로 보내준다. 시간만 버렸다. 


“혹시 모르니 저희 병원의 모든 환자들의 최근 기록들이라도 가져가시지요.”


그는 자리에서 굳이 일어나 자료를 건네준 뒤 문까지 열어준다. 나는 분위기에 떠밀려 밖으로 나간다.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동료 형사한테서 전화가 온다. 


“갔다 왔어?”

“정신 병원 얘기라면 맞아. 착오가 있나 본데?”

“뭐? 일단 경찰서로 와봐.”


나는 자동차에 올라탄다. 큰길로 나가자 중학생들이 보인다. 지금쯤 학교가 끝났는지 모두 활기차 보인다. 나도 저절로 미소가 난다. 내 아이들도 지금쯤 하교해 집에 가고 있을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의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혜정이 생각이 난다. 정신이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잔상으로 기억된 나무와 왜소한 집들을 스쳐 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다. 교문에는 피해 여학생을 기르는 현수막이 여럿 걸려 있었다. 빨리 수사를 진행해야 된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는 그 순간 차 앞으로 아는 얼굴이 지나간다. 굳은 머리를 헤집어 누구인지 파헤친다. 시험이 끝난 날 딸이 데려온 친구 녀석인 것 같다. 이름은 김현미였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차창을 내려 인사한다. 


“안녕~현미 맞지?”


크게 외친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학생은 뒤를 돌아본다. 


“안녕하세요..”


왜소한 체격에 어울리는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원래 수줍음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경찰과 이렇게 가깝게 대화해본 적은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대화를 이어나갈까 그대로 창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도중 그 녀석들이 보인다. 어제 경찰서에서 본 청소년들. 


“어! 그 아저씨다!”


그들은 개그 코너라도 보는 듯 재밌어한다. 그리고 나에게 보여줘서 안 될 것을 보여준다. 현미를 발로 차 버린다. 그 연약한 몸이 바닥에 쓰러진다. 아니, 엎드린다. 마치 수긍하듯. 이미 익숙해진 현실에 수긍하듯. 하나의 인사에 지나지 않는지 그들은 현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온다. 


“아저씨, 반가워요.”


어제 만난 키가 작은 남자아이다. 침을 바닥에 뱉으며 인사를 시도한다. 그 옆에는 익숙한 남학생 두 명이 따라붙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딸을 찾는다.


“혜정이는 어딨니?”

“이 아저씨 봐라?”


그들은 소풍 온 유치원생마냥 시끄럽게 웃는다.


“아저씨 진짜 딸바보다. 어제 혜정이한테 다 들었어요.”


무엇을 다 들었다는 것일까?

그들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듣자니 어릴 적 일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내 옆에 친구가 동물원에 원숭이를 보고 배 빠지게 웃은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직원들과 선생님들은 조용히 해달라고 애청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곤란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내 눈은 한 원숭이의 눈에 사로잡힌다. 


증오에 찬, 

나는 차를 뒤로 뺀다. 


혐오가 눈에서 넘쳐 눈물이 될 정도의,

마지막으로 그 아이들을 직시한다.


그 눈을 통해서라면 전 세계가 뒤집혀 보일 듯한,

그 상태로 페달을 밟는다.


그 무서운 시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내 시선은 과거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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