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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효과 (단편소설) #2

오징어땅콩의 글쓰기

by 기픈옹달
청소년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관련 내용은 OZGZ.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ozgz/1509


< 챕터 1. 그날 밤의 증인들 >


서울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 시골이라 하기엔 애매한 도시. 그렇다고 도시라고 하기엔 더욱더 애매한 공동체. 그런 곳에서 한 명의 여중생이 자살한다. 다음날 뉴스에선 이런 방송이 마을로 흘러나간다.


“오늘 새벽 여중생이 바닷가 근처 절벽에서 떨어진 우울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시각 주위에는 피해 여중생의 같은 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이다.


“그 해변가에는 왜 계신 거죠?”


취조실 안에는 네 명의 용의자가 있다. 피해 학생과 같은 중학교 학생들이다. 그날 밤 해변가 근처에서 발견됐다. 전부가 긴 패딩을 입고 있다. 세 명의 남자아이들, 그리고 말이 없는 한 명의 여학생. 화장이 짙게 된 그 아이를 노려본다.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한다. 불량 학생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반응이다. 무엇보다도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아니, 아주 익숙한 얼굴이다. 긴 정적 끝에 답이 돌아온다.


“바다 구경 좀 해볼까 싶어서요.”

“도로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 아니라 산 하나를 넘어야 될 텐데요?”


다시 이어지는 고요함. 눈을 깜빡여 위협한다. 수사 경력으로 얻은 기술 중 하나이다.


“친구가 추천해줘서 가보고 싶었어요.”


키가 작은 남자아이가 서둘러 말한다.


“혹시 이 학생이 문자를 보내서 해변가 쪽으로 오라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건 절대 아니에요.”


너무 빠른 대답. 세 명이 입을 모아 동의한다. 방금 전 당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이 질문 하나만큼은 준비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다.

분명 피해 학생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으로 봐서 이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곧 있으면 핸드폰 메모리 수사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이 학생이 보낸 모든 문자는 물론이고 전화까지 확인 가능합니다. 그럴 일을 없겠지만 학교폭력으로 그녀가 자살했다면 문자 내용에서 드러나겠지요.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그날 밤 문자가 갔습니까?’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다. 피해자의 핸드폰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움에 빠진 청소년을 속이기엔 충분하다.


“혹시 저희가 자수한다면 이득이 있을까요?”


놀라는 일동.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서류 가져오겠습니다.”

“저희가 한 거 아니에요. 그 멍청이가 지 혼자 떨어진 거라고요.”


갑자기 들리는 불협화음.

그 여학생을 까먹고 있었다.


“그건 무슨 뜻일까?”


너무 날카롭게 나온 목소리에 놀라면서도 대답을 기다린다.


“우울증 때문에 지 혼자 망상한 거라고요. 저희는 괴롭힌 적 없어요.”


우울증이라는 단어 하나가 내 정신을 건든다. 동시에 내 기억을 건드린다. 내 앞에 앉은 그녀가 누구인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눈앞에 드리워진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그래선 안 된다.


“혜정아?”


혜정이는 나를 지그시 쳐다본다.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아빠야.”


순식간에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인다. 놀랄 만도 하다. 13년 만에 만난 아빠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어딘가 찝찝하다. 아내와 내가 불의의 사고로 이혼한 뒤 그녀는 내 자식들을 데려가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후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기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이 침해받은 느낌이다. 혜정이 역시 같은 생각인지 어찌할 줄 몰라했다. 반대로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하길 기다리는 듯했다. 질문에 답을 주기를, 엉킨 실을 풀어주기를.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엉킨 실은 입을 서서히 조아 맬 뿐이었다.

나는 무언가에게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 아이는 나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당혹감과 배신감이 묻어있는 얼굴이다. 내 자리에 서류를 가져가려고 했을 때 경찰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모두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동료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시선으로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피해자 정신병원 기록이 나왔는데 우울증에다가 자살시도가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말이지. 게다가 학교에서 보낸 문서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자 같지는 않아. 오히려 친구가 많고 밝은 분위기라고 해.”

“그래서?”

“아니, 이것 때문에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정신 질환으로 인한 자살을 중심으로 수사하라고.”


방금 내가 느낀 기분이 꿈을 군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허탈하다. 우울병에 의한 사고는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하다. 질병이니까. 아파서 자살한 거니까.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쉰다. 사건이 멈춘다. 새벽에 호숫가 풍경처럼 멈춰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이상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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