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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04. 2018

쌍권총을 든 공자?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네 번째 쉬는 시간

앞선 글에서 <논어> 문장을 인용해놓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어요. ‘3화 공짱구 그 출생의 비밀’에는 인용한 문장 끝에 ‘9-6’이라 표기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앞의 숫자 9는 논어의 편을 말합니다. 9번째 편이라는 뜻이예요. <논어>는 총 20편으로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뒤의 숫자 6은 9편 가운데 6번째 문장이라는 뜻입니다.


지난 ‘4화 집 잃은 개 천하방랑기’에서는 깜빡 잊고 인용한 문장의 주소를 덧붙이지 못했어요. 이 문장의 주소는 15-2입니다.(웹은 수정이 가능하니 곧 수정해 놓겠습니다.) 첨언하면 <논어>의 각 편에는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위에 소개한 9편은 ‘자한子罕’, 15편은 ‘위령공衛靈公’이예요. ‘자한편 9장’, ‘위령공편 2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편의상 숫자를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편의 이름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저 처음 시작하는 글자를 뽑아 편의 이름으로 삼았어요. 그래서 편의 이름을 풀이하면 뜻 모를 말이 되어 버립니다. <논어>의 첫 번째 편 ‘학이學而’를 풀이하면 ‘배우고’, 9편 ‘자한子罕’은 ‘선생께서는 드물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숫자를 사용하는 것이 간결하고 편리합니다.


논어 원문을 읽고 싶으시다면 웹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논어 9-6’라고 검색하면 제가 앞서 인용한 문장의 원문, 또 다른 번역 등을 만날 수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ctext.org라는 사이트를 애용하는 편입니다. 위에 소개한 문장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아요.


9-6: https://ctext.org/analects/zi-han#n1315

15-2: https://ctext.org/analects/wei-ling-gong#n12228


누차 언급했듯 <논어>는 집단 저작물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한 목소리로 풀어낸 책이 아니예요. 책의 화자도 많을뿐더러 내용도 조금 뒤죽박죽입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책으로서는 완성도가 조금 미흡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공자와 제자들의 역동적인 관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훌륭한 형식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단톡방과 같은 형태가 아닐까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소개하도록 할게요.


공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아무리 <논어>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있다고 해도 그 주인공은 공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공자라는 한 개인보다 제자들과의 관계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공자를 두 꼭지로 짧게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래도 공자에 관심이 많은 분을 위해 간단히 도움이 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논어>를 아무리 읽어도 공자의 삶이 잘 그려지지는 않아요. 공자의 행적이 <논어> 문장 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잘 정리된 작품의 힘을 빌리는 것이 좋아요.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공자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겠지요.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늘 그렇듯 영화 홍보문구는 좀 걸러 읽어야 해요.


지난 2010년 <공자 춘추전국시대>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본디 제목은 <孔子>인데 아무래도 너무 간결한 제목이다 보니 부제를 붙인 게 아닌가 싶어요. 평점이나 영화평을 찾아보시면 그리 썩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영화로서는 범작과 망작을 오가는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내용으로는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큰 무리 없이 교과서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사실 공자라는 인물의 삶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도, 이야기로 매력적이지는 않으니 상업영화로 성공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자 배역이었습니다. 바로 저우룬파, '주윤발周潤發'이 그 주인공이었어요. 세대마다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에게 주윤발은 선글라스에 검은 코트, 그리고 쌍권총과 담배로 기억됩니다. <영웅본색>이라는 영화에 나온 모습이 워낙 큰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거예요. 헌데 그가 공자의 역할을 맡다니!!


배우라는 직업이 천 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하지만, 청춘 배우로, 암흑가를 오가는 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친 배우가 공자 역할을 연기하다니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라고 할까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 같은 사람이 예수 역할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예수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가운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라고 있어요. 이 영화는 멜 깁슨이라는 배우가 제작과 감독을 맡았어요. 멜 깁슨이라는 배우도 한때 적잖이 반항아의 모습을 연기한 배우입니다. 대표적으로 <매드 맥스 Mad Max> 시리즈가 있지요. 제목처럼 미치광이 같은 무법자를 연기한 사람이 예수 영화를 만든다니. 그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도 예수 역할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감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네, 동일인물입니다.


영화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이 차이가 예수와 공자의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는 여전히 성스러운 인물로 그려지지만 공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공자를 연기하는 주윤발이라는 배우의 얼굴에서 옛 영웅본색의 어떤 부분이 연상된다 하더라도 상관없을 거예요. 공자는 예수보다 세속적이고, 그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윤발의 연기는 꽤 괜찮았어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그 영향 때문인지, 영화 이후 주윤발의 얼굴과 닮은 공자상을 여럿 볼 수 있었어요. 공자를 연기한 주윤발의 얼굴을 본떠 공자의 모습을 형상화한다니!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이미지가 시대의 관념과 욕망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논어>를 좀 읽었다면, 중국어를 배웠다면 영화 속에서 <논어> 구절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답니다. 다만 단점을 꼽자면 번역가가 <논어>나 공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머지 어색한 번역이 종종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논어>의 맥락을 더 살렸으면 좋겠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평범한 문장으로 풀이한 부분도 여럿 있었어요. 가장 큰 문제로는 염구冉求라는 공자의 제자를 ‘책구’라고 옮긴 점입니다. 주요 인물 가운데 하나인데 어떻게 그렇게 옮겼는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분명 엔딩 크레딧에도 염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여러 단점도 있지만 시간이 많은 날 공부 삼아 보기엔 괜찮습니다. 헌데 영화를 공부 삼아 본다니 뭔가 어폐가 있어 보이네요. 여튼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공자의 제자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자로子路입니다. 영화에서도 자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요.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왼쪽은 지난 시간 소개한 이미지입니다. 좀 닮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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