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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10. 2018

협객으로 살고 군자로 죽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구나. 뗏목이라도 타고 바다로 나가볼까.
나를 따라올 이는 자로 밖에 없겠지. 
(5-7)

공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군주를 만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에 걸맞은 인물을 만나지는 못했어요. 상심한 공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생각도 해보았어요.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갈까. 


옛사람에게 바다는 신비하고 위험한 대상이었답니다.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바다로 가다니! 그것도 뗏목을 타고. 얼마나 실망이 크기에 그렇게 말했을까요. 공자 조차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도 자로라는 제자는 따라올 거라 해요. 대관절 어떤 제자이기에 이런 말을 들은 걸까요? 

 

자로子路는 공자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어요. 일찌감치 제자가 되어 공자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헌데 그가 제자가 된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자로의 초상] 긴 칼이 인상적입니다.

 

자로는 본디 용맹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었습니다. ‘협객俠客’이라는 무리에 속해 있었어요. 글보다는 칼에, 공부보다는 싸움에 관심이 많은 무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당연히 성격도 급하고 거리끼는 것이 없었어요. 이런 자로가 공자를 찾아옵니다. 한바탕 소란을 피워 골탕을 먹여줄 생각이었지요. 이렇게 만난 공자와 자로는 짧은 논쟁을 주고받습니다.


자로는 공자 앞에서 배움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쭉쭉 곧게 자란 대나무를 예로 들면서 말이지요. 본디 강하고 튼튼한 자질을 갖고 있다면 배움이 필요 없지 않을까요? 마치 튼튼한 대나무를 자르면 바로 튼튼한 활이 되는 것처럼. 자신처럼 용맹스런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공자의 가르침은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자로의 주장에 공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 대나무 활에 쇠붙이를 달면 튼튼한 방패도 뚫을 수 있지 않느냐 되묻지요. 딱 자로를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자로는 공자의 제자가 되기로 해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길을 깨우친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한때 협객으로 이름을 떨친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된들 그 성품이 쉬이 변할까요. 전하는 말에 따르면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된 뒤로 공자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해요. 자로의 귀에 소문이 들어가면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가 혼을 내주었기 때문이랍니다. 공자는 이런 자로의 성급한 성품이 걱정이었어요.

 

자로야. 안다는 것에 대해 일러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2-17)


참 싱거운 말입니다. 누가 모르는 말인가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말도 아닙니다. 헌데 자로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었어요. 자로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었으니까요. 자신이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가늠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러니 아는지 모르는지 곰곰이 따져보고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포호빙하暴虎馮河’라는 말이 있어요. 공자가 자로를 두고 한 말입니다. 풀이하면 맨 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 몸으로 황하를 건넌다는 뜻이예요. 호랑이처럼 사나운 짐승을 맨 손으로 잡겠다고 덤비면 어떻게 될까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예요. 설사 호랑이를 이기더라도 크게 상처 입겠지요. 황하는 거친 물살을 자랑하는 큰 강입니다. 맨몸으로 건너다가는 물귀신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도 자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인물이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상황에도 공자 선생님을 기꺼이 따라갈 테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는 자로는 기뻤답니다. 드디어 선생님이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생각했습니다. 공자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렇게 말할 정도로 크게 실망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관심 밖이었어요. 자로가 크게 기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자는 기가 찼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결국 자로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자로야 네 용맹스러움은 나보다 낫구나.  
헌데 그것을 쓸 데가 있어야지.
(5-7)

한번은 자로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자로의 성급한 성품이 그대로 연주에 묻어 나오자 또 공자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를 듣고 자로의 후배 제자들이 자로를 업신여겼다 해요. 선생님 밑에 오래 있는 선배지만 늘 선생님의 꾸중을 듣는 것을 보니 보잘것없는 인물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어린 제자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로는 그래도 마루에는 올라왔지.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야.
(11-15)

입실入室, 방에 들어왔다는 말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핵심을 잘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자로는 거기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다만 승당升堂, 마루에는 올라온 정도는 되었다 해요.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마당이나 담장 밖에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하찮게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로를 업신여긴 제자들은 어느 정도일까요? 겨우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온 정도에 불과했을 거예요.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자로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논어>에 남을 정도니 자로의 귀에도 이야기가 전해졌을 겁니다. 그런데도 아무 말, 아무 행동이 없는 건 그만큼 자로가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닐까요?
  

공자가 긴 방랑을 마치고 고향 노나라로 돌아올 때, 자로는 위나라에 머물렀다고 해요. 위나라에서 관직을 얻은 까닭이지요. 그의 용맹스러움은 군사 방면에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데 위나라에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공자는 자로가 목숨을 잃을 거라 예상해요. 우직한 성품이라 화를 피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지요.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자로는 칼에 맞아 떨어진 관을 다시 집어 쓰고 죽음을 맞았다 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군자는 관을 바르게 써야 한다.’ 비록 협객에서 출발했지만 자로는 군자로서 최후를 맡고 싶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한 것이지요. 자신의 예상대로 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는 크게 슬퍼했다 합니다. 비록 늘 꾸중을 듣는 제자였지만, 그만큼 공자가 크게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던 까닭이예요. 자로에 얽힌 <논어>의 기록은 공자가 얼마나 그를 아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 당연히 이번 쉬는 시간의 주인공은 자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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