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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26. 2018

역사 그리고 혹은 신화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일곱 번째 쉬는 시간

오늘은 옛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자의 말이라는 글을 만나고는 합니다. 헌데 제가 모르는 글을 보면 의아한 마음에 출처를 찾아보게 됩니다. <논어>를 달달 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논어>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낯선 공자의 말을 보면 의심부터 하는 편입니다. 근거 없이 가져다 쓴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지요.


한 번은 유명 소설가가 공자의 말이라며 한 문장을 SNS에 소개하더군요. 내용은 '군자는 가슴에 꽃을 달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도무지 공자의 말이 아닌 듯하여 이래저래 찾아보았답니다. 윤재근이라는 사람의 책 제목이었습니다. 더 찾아보면 저자의 말인지, 아니면 다른 글에서 빌려온 말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네요.


또 한 번은 공자의 말이라며 낯선 문장이 돌아다니기에 찾아보았더니 <장자>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지난 안연의 이야기를 나누며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안연은 <장자>에도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꽤 중요한 인물로 등장해요. 헌데 그것이 안연의 본래 모습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장자>에서 공자도 꽤 빈번하게 출연하는데, 이를 다 공자 본인의 말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책입니다. 


<장자>보다는 가깝지만 <대학>이라는 책에도, <중용>이라는 책에도 공자의 말로 기록된 내용이 많습니다. 이를 다 공자의 말이라 해야 할까 문제 역시 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대학>과 <중용>은 전통적으로 <논어>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글이어서 덜 문제가 되겠지만 이 역시 파고들면 쉬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댓글에서 한 분이 말씀하신 대로 인용한 '절차탁마'라는 표현은 본디 <시>라는 글에 실린 시 구절의 일부입니다. 오늘날에는 <시경>이라는 책에 <기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헌데 시의 본디 내용을 보면 공자가 한 말과 영 딴판입니다. 이러한 예는 수 없이 많습니다. <논어> 등에 인용한 시의 구절 태반이 그렇습니다.


이를 '단장취의'라 합니다. 일부를 잘라 자신의 의도대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절차탁마와 이어 붙인 대기만성도 이런 식으로 이용되는 표현입니다. 본디 이는 <노자>에 나오는 말인데, 맥락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표현과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뒷부분 '만성晩成', 완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데 방점을 찍습니다. 그러나 맥락을 보면 '대大', 커다랗다는 표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노자>의 맥락을 살리면 큰 그릇은, 헤아릴 수 없이 커서 도무지 만들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보다는 대기불성大器不成이 더 맞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절차탁마와 대기만성, 각기 출처도 다른 말을 함께 붙여 쓸 수 있을까. 게다가 본래 맥락과 동떨어진  표현으로 이 말을 사용해도 될까. 이런 질문은 당연히 제기되어야 합니다. 허나 저는 이런 질문을 꾹 삼키고, 대중적인 표현을 참고하여 이 두 말을 다루었습니다. <논어>니 공자니 하는 것들이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자공을 소개할까 하는 생각에서 시도한 일입니다. 의도에 충실한 글이었는지,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의 실험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은 가능하면 학술적인 논의는 접어두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일반 독자에게 <논어>는 여전히 먼 글이기 때문에 가능한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왕 논란을 부르는 해석도 있겠습니다. 그런 부분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내용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은 제목과 달리 좀 딱딱한 글이 되었어요.


아직까지 서점가에서는 <논어>를 본격적으로 다룬 학술서, 혹은 교양도서를 쉬이 만나기 어렵습니다. 대체로 <논어>보다는 공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나 덧붙이면 공자의 제자들을 다룬 글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조금 깊은 이해를 원하시는 분께 소개해드릴 수 있는 것은 공자를 통해 <논어>와 공자의 제자들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주제에 대해 가장 빼어난 책은 크릴의 <공자 - 인간과 신화>일 것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반 세기가 넘었지만 이만한 책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공자와 초기 유가를 깊이 공부한다면 한번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제목부터 공자라는 '인간'과 그에 얽힌 '신화'를 나누어 접근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허나 이를 분간할 수 있는 사람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차이를 낳겠지요.


공자, <논어>, 그리고 제자들에 얽힌 역사와 신화를 이야기하려면 <사기>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사기>에 그려지는 공자는 역사이자 신화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이번에 소개한 자공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굳이 구별하자면 <논어>에 담긴 자공의 모습이 역사에, 혹은 자공이라는 인물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기>에 기록된 자공의 모습은 좀 지나친 면이 있어요. 특히 <중니제자열전>에서 그려진 자공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자공은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간단히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 합니다. 이때 자공이 나서서 제나라의 군대를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그것뿐인가요. 오나라와 월나라 등을 돌아다니며 춘추전국의 전체 지형도를 뒤바꿔버립니다. 


<사기> 전체를 통틀어 말재주로 유명한 두 인물, 소진과 장의에 버금가는 활약입니다. 물론 <논어>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를 어찌 보아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이는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마천 개인이 지은, 혹은 당대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공을 소개하는 다른 글에서는 사마천의 글을 빌렸답니다. 워낙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재주'라는 자공의 면모를 잘 보여주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공의 이야기에 '대기만성'을 끌어들인 것도 그릇과 얽힌 <논어>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가능하면 <논어> 원문에 충실하고자 하나 글의 재미와 편의를 위해 가끔 이런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해와 오해는 날 함께 붙어 있기 마련이지요. 그래도 좀 담백한 이해를 원하신다면 한 번쯤 <논어>를 일독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뭐가 빌려온 이야기이고 뭐가 뼈대가 된 이야기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서양에 소개된 공자의 모습. 나중에 한번 쯤 다루겠지만 서양의 공자 이해를 무시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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