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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24. 2018

절차탁마 대기만성?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 출신입니다. 오늘날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가 바로 그곳이지요. 공자는 고향에 돌아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취푸에 가면 공자의 무덤을 볼 수 있어요. 헌데 그 옆을 보면 작은 건물이 있습니다. 자공이 초막을 짓고 공자의 무덤을 지킨 장소라고 해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무려 6년이나 공자의 무덤을 지켰습니다.


자공은 공자 사후에 가장 이름을 널리 알린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좋았어요. 꽤 많은 재물을 모아 천하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어찌나 많은 재물을 모았는지 사마천의 <화식열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어요. 여기서 '화식貨殖'이란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중국의 부자 이야기 묶음인 셈이지요.


공자 무덤 곁에는 자공이 심었다는 나무(왼쪽)와 자공이 초막을 짓고 머물렀다는 자리(오른쪽)가 남아있어요.


그는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인물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링크) 자공은 특히 말재주가 빼어난 인물이었어요. 논어에서도 그의 재능은 여지없이 발휘됩니다. 


선생께서 자공에게 물었다. 
"너와 안연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나냐?"

"어찌 저를 안연에 견주겠습니까?
안연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그래, 안연만은 못하지! 나도 네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5-9)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누구와 누구를 견주어 가늠해보는 것도 어려운데,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라니요. 게다가 상대는 선생님이 아끼는 제자 안연입니다. 어떻게 대답해도 본전도 채 건지기 힘든 상황이예요. 이때 자공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솔직하게 안연의 빼어난 점을 인정합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칠 정도라네요.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문일지십聞一知十'입니다. 지금도 총명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이렇게만 말하고 말았을 거예요. 헌데 자공은 한마디 말을 덧붙입니다. 자신은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사람이라 해요. 앞의 표현을 빌리면 '문일지이聞一知二'라 해야겠습니다. 따져보면 순전히 안연만 치켜세워 말하지 않았어요. 비록 안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자신도 빼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배워 그 하나를 깨우치기도 힘든데 둘을 안다니요. 안연을 치켜세우며 자신의 재능도 함께 내세우는 자공의 말솜씨가 인상 깊습니다.


그래도 공자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나 봅니다. 스스로 뽐내려는 자공의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아예 확실하게 못을 박습니다. 안연이 더 낫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까지 단호히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는 자공의 성품을 잘 알았던 까닭입니다. 자공은 비교하기를 좋아했던 인물이었어요. 주변 사람을 서로 비교해보거나, 자신과 남을 견주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비교해보면 자신의 빼어난 능력이 더 돋보이기 마련이지요.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 사람,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지. 그래도 가난하지만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유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겠지."

"<시>에 '자른 듯 다듬은 듯, 쪼은 듯 갈아놓은 듯'하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겠지요?"

"자공아! 너와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하나를 이야기해주면 또 다른 것을 깨우치는구나."
(1-15)

자공은 자신이 생각한 훌륭한 사람의 덕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자공 스스로를 가리킨 말이예요.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까닭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자공이 기대한 대답은 이렇지 않았을까요? "참, 훌륭한 생각이구나. 그래, 그런 사람이라면 군자라고 할 수 있겠지." 허나 공자는 더 높은 수준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공의 이후 태도예요. 비록 원하던 대답을 얻지 못했지만 또 다른 것을 생각해냅니다. 옛 시에서 표현을 빌려와 선생님의 생각을 묻습니다. 여기서 '자른 듯 다듬은 듯, 쪼은 듯 갈아놓은 듯'이라 번역한 표현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여절여차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 이를 줄여 '절차탁마切磋琢磨'라 합니다. 이 말은 본디 상아나 옥돌을 다듬는 과정을 표현한 말이예요. 상아나 옥돌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듯, 꾸준한 자기 수련으로 더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공의 이 말을 다르게 바꾸면 이렇게 되겠네요. "절차탁마라는 옛 시의 표현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 자공의 말에 공자는 크게 기뻐합니다. 함께 시를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다면서. 좋은 선생이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인물이 아닐지요. 제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일러주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번은 공자가 자천이라는 인물을 크게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군자다운 인물이라며 매우 높이 평가했어요. 이때 자공이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바로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어떤 인물입니까?"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인가요?"

"옥으로 만든 귀한 그릇이지."
(5-4)

공자의 대답이 좀 엉뚱합니다. 어떤 인물이냐는 질문에 그릇이라니요. 이를 이해하려면 공자의 다른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찍이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2-12)' 똑똑한 자공이 공자의 이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습니다. 군자는 그릇이 아닌데 자신을 그릇에 비유했으니, 곧 이 말은 군자답지 못 한 인물이라는 뜻이지요. 어이쿠. 이번에도 기대하지 못했던 답을 듣고 말았습니다. '너도 군자다운 인물이다'라는 답을 듣고 싶었을 텐데.


앞서 보았듯 자공은 단순한 인물이 아닙니다. 한 발 더 나아가지요. 그럼 어떤 그릇일까? 공자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옥으로 만든 귀한 그릇이라고. 저는 이 대화를 보면 늘 궁금합니다. 과연 자공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공자의 말을 듣고 자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논어는 이 뒷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어요. 


아름다운 보석이 쉬이 만들어지지 않듯 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차탁마의 과정이 필요해요.


훗날 사람은 '절차탁마切磋琢磨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을 연마하여(절차탁마)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대기만성)는 뜻이지요. 허나 공자가 자공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와는 조금 달랐을 거예요. 꾸준한 발전의 결과가 커다란 그릇이 되는데 그칠 수는 없습니다. 그릇으로 제한할 수 없는 사람, 어느 한 가지 쓰임에 그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바랐습니다. 바로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후 자공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커다란 그릇이 되었을지, 아니면 군자라 불릴 정도의 인물까지 되었을지. 다만 자공의 이야기는 그 과정에 주목하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절차탁마라는 자기 향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자공이 6년이나 공자의 무덤을 지킨 것은 이런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런지요. 




* 일곱 번째 쉬는 시간. 옛 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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