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옹달 #13 - 태산편 정丁
'양꼬치 앤 칭따오'.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분개(?!)했다. 이유인즉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 양꼬치에 칭다오 맥주를 즐긴 사람이라면 적잖이 당황하리라. 꽤 잘 어울리던데라는 반문이 날아오기 마련. 허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음식의 궁합이 아니다. 이 둘의 조합이 낯설다는 것을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칭다오는 잘 알려진 대로 중국 동부의 항구도시이다. 한편 양꼬치는? 음식의 역사에 크게 밝지는 못하나 양꼬치가 중원의 문화가 아님은 확실하다. 양꼬치는 서북쪽 유목민족의 문화로부터 출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이란 드넓은 초원에서 주로 자라는 동물이 아닌가. 항구 도시에서는 무릇 해산물 요리가 뛰어나기 마련이다. 칭다오에서 양꼬치를 찾는 것을 비유하면,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서 도토리묵 찾는 격이랄까?
개인적으로 서북지역에서 한 해를 꼬박 지낸 적이 있다. 처음 란저우 공항에 내려 창밖으로 비치는 황량한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독히도 건조한 그 지역에서 쌀농사가 가능할 리 만무. 그곳 사람들은 면을 주식으로 먹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우육면牛肉麵이 그곳의 특산물이다.
한편 회족回族을 비롯해 무슬림이 많은 지역이라 양고기를 어디서나 먹을 수 있었다. 가끔 별식으로 먹는 양다리 구이도 일품이었지만 늦은 저녁 시장통에서 먹는 양꼬치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다. 당시 가격은 7 마오, 우리 돈으로 꼬치 하나에 약 100원이었는데. 한번 먹으면 20~30개는 금방이었다.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동행한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우육면을, 아니 서북에 유명하다는 '라미엔拉麵', 수타면을 소개하고 싶었다. 지난 4월에는 우연히 허름한 식당을 찾았다. 간판에 칭전清真이라 쓰여 있는 것이 무슬림을 위한 식당이다. 우리 주변에는 무슬림이라고 하면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이 있는데 걱정하지 말자. 식당을 찾는 이들이 무슨 종교인지 그들은 따지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우육면 하나, 빤미엔拌麵 하나, 차오미엔炒麵 하나. 우육면, 니우로미엔牛肉麵은 소고기로 국물을 낸 국수이다. 빤미엔은 고기와 야채를 볶아 함께 섞은 면요리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비빔면이라 할까? 차오미엔은 볶음면. 주문을 넣으니 주방에서 열심히 면을 뽑는 모습이 보인다. 아차! 면도 똑같은 것을 먹을 수는 없지. 보통 면과 넓은 면으로 따로 시켰다.
기계로 뽑으면 똑같은 굵기의 면을 뽑겠지만 손으로 뽑는 면은 굵기와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면도 주문할 수 있고, 우동 처럼 굵은 면도 주문할 수 있다. 칼국수의 몇 배가 되는, 손가락 두 개 정도 넓이의 넓은 면도 가능하다. 면을 직접 뽑아 주는 가게에 간다면 다른 식으로 주문해보자.
4월 여행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식사를 물어보았더니 면요리 집을 꼽았다. 비록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바로 뽑아 나온 면의 생생함이 적잖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9월 여행팀에게도 면요리의 기쁨(?)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태산에서 내려와 찾은 음식점도 칭전, 무슬림을 위한 식당이었다. 안타깝게도 직접 면을 뽑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으나 모두 만족하는 식사였다. 암, 여행의 기쁨은 식도락이지.
태산에서 내려와 뜨끈한 국수를 먹으니 마음도 몸도 든든하다. 기차 시간이 좀 남아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커피 한잔을 즐길 곳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곳도 별로 보이지 않더라.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역으로 이동했다. 역에서 시간을 죽이며 앉아 있었던 곳은 역 안의 맥도널드. 음료의 맛은 여기나 그곳이나 별반 차이가 없더라.
약 3시간을 달려 칭다오에 도착하니 벌써 컴컴한 저녁이 되었다. 때가 되었으니 또 먹어야지. 태산을 오르는 고생을 했으니 맛난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 먹을까 하다 어플로 중국인들이 맛집으로 꼽는 곳을 찾아냈다. 다행히 가까운 곳. 지도를 보고 찾아갔으나. 아뿔싸! 이미 시간이 늦어 문을 닫고 말았다.
할일없이 돌아오는 길에 왁자지껄 중국인들이 여럿 모여있는 식당을 찾았다. 사람도 많고 시끌벅적하니 무언가 괜찮은 것이 있겠지. 들어가 보니 해물찜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더라. 맥주와 함께. 우리는 매콤한 해물찜을 시켰고, 칭다오 생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혹시라도 칭다오를 가는 사람이라면 위엔장原装, 생맥주를 마셔보길. 그 고소한 맛에 태산의 피로를 깨끗이 잊고 말았다.
조금 기다리다 맞이한 해물찜도 풍성했다. 커다란 찜솥에 다양한 해물이 가득 들어있는 모습이란. 조개와 새우를 비롯해 다양한 해물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암, 칭다오에 왔으면 해물을 먹어야지. 따지고 보면 같은 바다에 나는 해물이다. 칭다오나 우리네 서해안이나 같은 같은 바다인데 이렇게 가득 풍성한 해물찜을 즐기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여전히 물가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테다. 2018년, 정확히 10년 만에 찾은 중국은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물가가 올라있었다. 지역의 차이를 고려하고, 시간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비싸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먹거리는 우리보다 좀 싼 편이다. 그러니 식도락을 즐긴다면 하루라도 빨리 중국에서 맛난 먹거리를 즐기자.
맛있는 해물을 즐기니 마음도 덩달아 너그러워졌다.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는 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왁자지껄 시끄러운 주변 분위기도 한껏 흥을 돋웠다.
하나 사족을 덧붙이자. 중국 여행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인종 차별이 없다는 점을 꼽고 싶다. 유럽이나 영미권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한단다. 피부색과 눈 모양만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라니. 몸소 직접 경험하지 못해 모르겠지만 분명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허나 중국에서 수 없이 많은 곳을 다녔지만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우리말로 크게 웃고 떠들더라도 그리 상관치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 낯선 이국 사람들이 떠드는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떠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여튼 그런 자유분방함도 중국 여행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풍성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단 하루, 마지막 날만 남았다. 벌써 아쉬움이 크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 마지막 하루는 자유 여행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기획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