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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08. 2019

낯선 서향書香 속으로

차이나는 옹달 #14 - 여적편

모든 일정이 끝났다. 바로 떠나도 될 테지만 바다 건너 넘어왔는데 그렇게 서둘러 떠날 이유가 있나. 하루의 여유를 갖기로 했다. 한 번쯤은 가이드 없이, 제 스스로 중국의 거리를 거닐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으나 그것도 나름의 오해였다. 지난 4월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할 때에는 반 강제적으로 자유 시간을 갖도록 했다. 출발 전부터 호텔에서 내쫓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니. 


물론 전혀 걱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길을 잃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면서도 짧게나마 제 스스로 시간을 가져보도록 독려했다. 다행히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크게 근심을 덜었다. 청소년들은 모둠을 이루어 몇몇 곳을 돌아다녔다. 제 스스로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 타고, 식당에 가서 주문도 하고, 나름 중국인 친구도 하나 사귀고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에 몇 마디 해 보았다고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얻어왔다. 기획했던 교육적 목적(?!)을 잘 완수한 것.


[5.4광장] 4월 여행팀. 자유 여행을 마치고 광장에서 모였다.


9월 성인 팀은 영 달랐다. 출발 전부터 자유여행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으나... 결국 마지막 날 모두 함께 서점으로 향했다. 지난 4월 여행에서는 일정이 너무 촉박해 서점을 들리지 못했다. 적잖이 아쉬운 마음에 이번에는 꼭 서점을 들리기로 마음먹었다. 살 책도 몇 권 정해 놓았다. 나는 서점을 갈 테니 각자 일정을 잘 소화하자 했건만. 어쩌다 보니 다 함께 서점을 가는 상황이 되었다. 자유여행의 자유가 증발하는 순간이다.


중국은 도시마다 커다란 서점이 하나씩 있다. 어찌나 큰지 수성書城, 책의 성이라 부를 정도다. 다들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 서점을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예전에 중국에 있을 때에도 서점에 종종 가곤 했다. 책에 관심은 있으나 중국어로 읽을 생각은 없어 별로 사지는 않았다. 중영대역문고로 몇 권을 사놓은 게 전부. 그래도 책을 사놓으면 언젠가는 보게 된다고, 그때 사놓았던 중영대역 삼국지를 들춰보게 되더라. 


그 연장선이랄까. 이번 목표 가운데 하나는 삽화가 들어간 삼국지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친구들에게 삼국지를 주제로 강의할 계획이라 자료로 사용할 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둘러보니 멋진 그림과 함께 짤막한 설명이 삽입된 삼국지가 눈을 사로잡았다. 문제는 가격과 무게. 전질을 사려니 제법 비싼 가격인데,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눈을 꾹 감고 구매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책이니. 


최근 한국에 번역된 책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제는 <소년독사기少年讀史記>, 직역하면 '소년 <사기>를 읽다', 풀이하면 '청소년이 읽는 <사기>' 정도가 되겠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번역본의 제목은 <장자화의 사기>가 되었다. 제목이 바뀌면서 청소년이 아닌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 되었다. 청소년에게 <사기> 같은 책은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반증이 아닐지. 중국에서도 크게 성공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크게 어렵지 않게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구입한 책들 일부

서점을 돌면서 크게 놀란 것은 고문古文에 관련된 책이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각 학년별 맞춤 교재가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장자화의 사기>가 성공한 것처럼 중국은 적극적으로 전통을 읽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적잖이 궁금했다. 옛글에 관심이 많으니 필사본 교재도 몇 권 구입했다.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돌아다니니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는 중국 지도를 발견한 것. 입체 조형으로 된 중국 전도를 구입했다. 예전에는 어느 지역에 도착해 처음으로 하는 일이 지도 구입이었다. 지도를 보고 낯선 지형을 빨리 익혀야 헤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어디를 가나 제법 상세한 지도를 쉬이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도를 찾는 사람도 없는지, 지도를 구하기 힘들었다. 다들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니 따로 지도가 필요 없겠지. 그래도 실물로 보는 것만은 못한 법이니 하나 구입해야지. 


그밖에 관심 있는 책을 주섬주섬 담으니 부피가 엄청 늘어나버렸다. 게다가 책의 무게란. 돌아가기 전날 구입했기에 망정이지 처음부터 이를 짊어지고 돌아다녔으면 꽤 고생했겠다 싶다.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고생할 생각에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수 없이 손에 집었다 놓은 책이 수두룩 하다. 어쩌겠는가 마음에 드는 책을 다 집어 들면 지게를 빌려와도 모자랄 지경이다. 글을 쓰면서도 놓아두고 온 책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여 다음에 필히 구매해 가지고 올 책을 벌써 정했다. 루쉰 전집 20권 전질을 구매해야지. 


루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 루쉰은 스스로 자신의 글이 곧 사라져 버릴 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그의 바람대로 되지 못했다. 루쉰의 글은 훗날, 특히 마오의 시대에 경전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루쉰 세미나도 하고 있으니 루쉰에 관한 글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웬걸 오늘날 중국 서점에서는 루쉰에 관한 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루쉰과 상대했던 인물에 관한 책을 더 쉬이 찾았다. 후스, 장제스 등에 대한 책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루쉰의 위치도 예전과는 영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진짜 장개석을 찾아서], 후스의 [용인과 자유] : 루쉰 책은 찾아볼 수 없고 이런 책이 눈에 띄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드라마로 배우는 한국어 교재도 발견했다. <별에서 온 그대>로 한국어를 배우자는 책인데 드라마의 힘이 세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학 코너를 둘러보고 있으니 일행 중 한 명이 중국어 교재를 골라 달라고 한다. 찾아보니 반갑게도 그 옛날 내가 보았던 책이 여전히 있더라. <301구>. 여전히 이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지만, 한국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데 놀라기도 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중국을 배우겠다고 달려드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하다.


예전에는 서점이 마치 커다란 도서관 같았다. 종이 질도 좋지 않아서 어떤 책은 도무지 책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표지도 단순하고 조악해서 마치 두꺼운 노트 같은 책이 여럿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더라. 책 만듦새도 꽤 나아졌고, 디자인도 많이 발달했다. 커다란 서점 안에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구, 교재, 전자 기기 등을 판매하는 것을 보니 중국의 서점도 우리네 서점처럼 복합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찾아보니 어느 층은 24시간 운영한다고도 한다. 


한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누구는 거리에서 사회를 읽기도 하고, 누구는 시장이나 백화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점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중국도 나름 문자의 나라인 바, 한번쯤 중국 서점에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알 수 없는 글자만 가득하더라는 원망 섞인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나 그래도 중국 서점에서 서향書香을 맡아보는 것도 꽤 색다른 경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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