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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11. 2019

일단, 마침표.

차이나는 옹달 #15 - 회고편

귀국 일정은 정리하지 않겠다. 귀국이란 별 이야기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적당히 시간을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이어지는 탑승 수속... 가운데 사건이라면 태산을 함께 오른 등산지팡이를 가져올 수 없었다는 점이다. 트렁크에 넣었어야 했는데. 비행기에는 타고 갈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버리고 올 수밖에.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어서 고국은 똑같다. 너무 똑같아서 별로 반가운 마음도 없다. 도리어 서울로 오는 지하철에 뒤섞인 외국인들이 반갑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스마트폰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는 것을 보니 아마 적잖이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있겠지. 출국 시에는 말이 많지만 귀국 시에는 별 말이 없는 법.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모두는 수다를 잊어버렸다. 


헤아려보니 다른 여정들도 마찬가지이다. 떠나는 길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 이국 땅에 발을 디딘 후 내 몸으로 파고는 공기의 낯섦도.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십 수년 전, 중국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가방을 짊어지고 기차에 올랐다. 흔히 이민 가방이라 부르는 덩치 큰 가방은 내 혼자 힘으로 들 수 없는 정도였다. 기차에서 내려 까마득한 계단길을 어떻게 이동했는지. 그 커다란 짐을 가지고 어떻게 호텔에 묵었으며, 어떻게 비행기를 탔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 고생길에 아무 기억이 없다니. 아니면 뭔가 당시의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귀국날 아침에 찾은 칭다오 해변. 조용하니 좋더라.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귀국 길의 침묵은 여행의 충실함에 비례하는 것 아니겠나. 다행히도 다들 여행을 크게 만족스러워했다. 깃발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패키지여행과는 달랐다는 평가. 식사도 맛있고 여정 가운데 들린 곳들이 모두 좋았단다. 동료의 칭찬은 꽤 힘을 준다. 10년 만에 중국에 가고자 했을 때에는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을 이끌고 잘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함께 한 사람들의 만족스런 표정은 적잖은 자신감을 주었다.


가장 큰 수확은 함께 여행에 참여한 이들이 중국에 대해 다른 인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중국을 다르게 보자는 말이 결과를 얻었다는 것은 적잖은 성과라 하겠다. 이국, 낯선 세계, 또 다른 문화 공간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니. 덕분에 여행 중간부터 수차례 다시 오자 약속했다.


여행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여행은 소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국의 상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을 낚아채는 것이 여행의 알파요 오메가인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구는 눈과 귀가 호강하는 일이, 혀와 피부로 느끼는 짜릿한 감각이 여행의 목적인 사람도 많다. 그런 것이 모두 쓸데없다며 쓸어버릴 이유는 없다. 다만 뭔가를 배운다는 것도 여행의 큰 덕목이 아닐지 질문해보는 거다.


각각의 장소에서 우리는 글을 읽었다. 그렇다고 고담준론을 나누지도 않았고, 치밀한 이론적인 학습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좀 다르게 보고 싶었다. 문자와 역사, 문학과 해석을 더하고 싶었다. 입구가 다르면, 관점이 다르면, 얻는 것도 다르기 마련. 


사람들을 이끌고 가이드를 하며 스스로를 평가해보았다. 기픈옹달은 어떤 가이드인가?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단점도 적잖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에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 사업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을 덮는 법. 말은 짧지만 유려하게 한다는 점은 장점이다. 사람들을 이끌고 다닌 경험도 있어 현장에서 필요한 말은 대충 다 할 수 있다. 홀로 사람들을 이끌지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기민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공부하고 이를 서사로 엮을 수 있다.


서사가 있다는 점, 이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중국과 함께 '중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재하는 정치체제인, 이웃나라 중화인민공화국을 보여주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한편 설령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이 망하더라도 살아남을 수천 년의 역사가 퇴적층으로 쌓여 있는 문화와 문명의 공간으로서 '중국'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공자의 고향 취푸, 진시황과 한무제가 제사를 지냈다는 태산을 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분에 칭다오에서 맥주공장에 가지 않았지만 원망을 듣지 않았다. 발 마사지가 없었어도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도 즐거웠고, 낯선 식당을 열고 들어가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즐거워했다. 백화점을 가지 못했어도 따로 화려한 거리를 지나지 않았어도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무엇이라도 정리해야겠다 싶어 글을 엮었다. 글을 쓰며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현장에서 더 많이 메모해 두었으면. 좀 쓸만한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으면.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기고 다음 행보를 준비할 뿐이다.


2월 15일 ~ 21일 / 시안西安 - 청두成都
2월 23일 ~ 28일 / 샤오싱绍兴 - 난징南京 - 상하이上海


2019년에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일정을 확정했다. 2월 15일부터 21일까지 시안西安과 청두成都를 방문할 예정이다. 멀리 동떨어진 두 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두 권(?)의 책에 대해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다. 바로 <삼국지>와 <서유기>! 시안에는 삼장법사인 현장이 묻힌 대안탑을 돌아볼 예정이다. 당나라 시대의 문물은 물론, 저 옛날 진시황의 무덤과 홍문연 자리도 둘러봐야지. 청두에서는 유비가 묻힌, 제갈량을 비롯해 삼국지의 여러 인물이 엮인 무후사를 가야지. 판다의 고향이라니 가는 김에 판다도 만나고 올 계획이다. 


초등학생들과 청소년들과 함께 간다. 기대도 되지만 아마 사건사고도 적지 않을 듯. 지난해 6개월 이상 함께 준비하고 공부했다. 그 결과를 글로 묶어 볼 생각도 있다. 행복한 기록이 될지, 싸움과 원망의 기록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튼 준비 중.


21일 여행을 마치고 나는 홀로 중국에 남을 예정이다. 바로 당일 밤 열차를 타고 상하이로 이동한다. 또 다른 여행팀을 맞기 위해서.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를 타는 것도 매력이지만(저녁 7시 45분 기차를 타서 새벽 6시 30분에 도착한다), 침대 좌석으로 고속열차를 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지만(硬卧, 딱딱한 침대 기차와 무엇이 다를지 궁금하다), 십 수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만날 계획도 있다. 

 

23일부터는 다시 새로운 팀을 맞아 샤오싱绍兴-난징南京-상하이上海를 둘러보고 올 예정이다. 두 번째 여정팀은 루쉰의 행적을 따라 여행한다. 루쉰의 고향 샤오싱, 루쉰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 난징, 그리고 루쉰이 잠든 상하이까지. 그곳에서 읽는 루쉰의 글은 어떨지 자못 기대되기도 한다. 


약 15년 전. 친구는 중국에 터를 잡고 10여 년째 살고 있다.


아마 두 차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또 이야기할 거리가 많겠지. 이번에는 작정하고 글감을 챙겨야겠다. 사진도 잘 찍고. 어찌 보면 숙제와도 같지만 그렇게 마음먹어야 무엇이라도 남는다.


욕심이 있다. 올해 하반기에도 다시 중국에 가고 싶다. 말의 씨앗을 뿌려 놓아야 열매를 맺는 법. 생각이라도 나누자. 칭다오와 취푸에 다시 가고 싶다. 다음엔 더 여유 있게. 일정을 소화하기보다는 현지 사람들과 사귀고, 관계를 맺는 시간으로. 하나 더 욕심을 내면 베이징北京과 청더承德를 가야지. 청더의 옛 이름은 열하热河이다. 맞다 <열하일기>의 그 열하.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힘이 많이 생기면 실크로드를 밟아야지. 아니, 나의 옛 고향 란저우兰州가 어떻게 변했는지라도 보아야지.


어쨌든 이렇게 '차이나는 옹달' 1부는 끝이다. 그러니 서둘러 2부를 준비할 것이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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