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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08. 2019

옛 것을 다시 '쓴다는 것'

루쉰, 전사의 글쓰기 #8

'고사신편故事新编', 직역하면 '옛 것을 새로 엮다'정도가 될 테다. <루쉰 전집>을 펴내면서는 <새로 쓴 옛날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고사신편>이라는 낡은 원제가 더 익숙하다. 한자 표현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면, 거기에는 늘 해석의 여지가 남기 마련이다. 그런 여유나 거리감을 좋아한다. 한편 한자 표현 자체가 갖는 독특한 멋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번역된 제목을 곱씹어 보던 가운데 '쓰다'라는 말에 문득 눈이 간다. 원제에는 없는 내용 아닌가. 그러나 어색한 번역이라거나 억지 추임새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루쉰의 독특한 소설집 <고사신편: 새로 쓴 옛날이야기>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아닐지. 


루쉰은 평생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 많은 작품을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잡감雜感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면서 당대의 여러 현재적 문제를 다루었다. 비판과 논쟁이 그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다. 그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붙잡고 늘어졌으며, 그에 대항하는 적을 글을 통해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래, 그의 '잡감'은 요즘 시쳇말로 옮기면 '저격글의 무더기'라고 해야겠다. 누군가는 대문호 루쉰의 글을 그렇게 깎아내려도 되겠느냐 물을지 모르겠으나, 루쉰 본인은 그의 잡감이 대단한 예술 작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줄곧 언급했다. 루쉰의 표현을 빌리면 원수에게 날리는 짧고 빠른 투창의 묶음이라 해야겠다. 


다른 하나는 <들풀>에 실린 산문시다. <들풀>에는 강렬하고 간결한 형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글들이 모여있다. 혹자는 루쉰의 정수가 그곳에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앞의 잡감이 현재의 구체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면, <들풀>의 글은 보다 추상적이고 우화적이다. 마치 헛도깨비 같은 헛헛함을 남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소설집이 있다. 널리 알려진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와 같은 소설이 <외침>에 속한다. <외침> 이후 소설들은 <방황>에 실려 있다. '외침'과 '방황'이라는 제목은 그가 당면한 시대의 문제와 그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외침'에서 그는 철의 방 비유를 통해 컴컴한 시대의 민낯을 폭로했다. '방황'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컴컴한 시대에도 '오르락내리락' 이리저리 떠돌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신문화 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소설들 때문이었다. 1919년 5.4 운동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다. 전통의 언어, 사상, 관습과 단절을 요구하였으며 나아가 당시 중국을 위협하던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에 저항하였다. 이 가운데 루쉰은 전자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고문古文 대신 백화문을 주장하였으며, 전통 사상의 폭력성을 식인(吃人)이라는 말로 폭로하였다. 한편 변발이나 전족과 같은 구습도 그 공격 대상이었다. <외침> 등에 수록된 다수의 작품은 이런 당시의 문제를 깊이 반영하고 있다. 


그의 다른 소설집 <조화석습朝花夕拾: 아침 꽃 저녁에 줍다>와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이와 좀 다르다. 이 둘은 과거의 일을 다루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루쉰 개인의 어린 시절을 다루었고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신화나 전설, 역사에 나오는 인물을 빗대어 이를 재가공하였다. 앞의 것이 상당 부분 실제 사실과 부합한다면 뒤의 것은 상당 부분 이른바 창작이라 일컬을 수 있다. 

 

보통 루쉰의 작품 활동은 1918년 <광인일기>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이후 193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18년간 왕성한 작품을 써냈다. 그 이전의 글도 있기는 하나 이후의 글쓰기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1926년에 쓰였다. 루쉰의 생애를 참고하면 그의 중반기 작품이라 해야 한다. 실제로 1925년에서 1927까지, 18년 작품 활동의 중반기에 그는 삶의 큰 변화를 겪는다. 1925년 북경 여사대 사건에 동참하여 학생들의 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지만, 1926년에는 돤치루이 정권의 무리한 진압으로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3.18 사건) 그해 루쉰은 베이징 생활을 정리하고, 샤먼으로 몸을 옮긴다. 이어 1927년에는 다시 광저우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로 다시 거처를 옮긴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상하이에서 줄곧 생활한다. 베이징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상하이에 정착하기까지. 그 중간의 불안정한 길 위에 루쉰은 옛 것을 다시 들춰내고 있는 셈이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후반기에 넓게 걸쳐 있다. 첫 소설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는 1922년에 쓰였지만 두 번째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는 1926년에 쓰였다. 이후 책이 묶어 나오는 것은 1935년이다. 이듬해 그가 사망하니 중후반기의 루쉰을 만날 수 있는 책이라 해야겠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첫 번째 글,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는 본디 <외침>에 속한 글이었다. 어째서 이 글을 <외침>에서 제외했는지, 그 이유를 <새로 쓴 옛날이야기: 서언>에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부터 본격적으로 그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찾아볼 수 있을 테다.


그는 <서언>에서 자신의 글이 통속적이며 장난기의 결과로 쓰인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실제로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에서 그는 제법 장난기 어린 시도를 여럿 보인다. 예를 들어 "Nga! nga"니, "Akon, Agon"과 같은 의성어를 쓰는가 하면, 옛날 의관을 차려입은 작은 사내를 여와의 가랑이 사이에 놓기도 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음험한 비평가', '정인군자' 등을 비꼬기 위해서였다. 


허나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는 좀 다르다. 이 글에는 장난기보다는 당혹스러움과 곤혹스러움이 교차한다. 이는 루쉰 자신도 어느새 풍자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테다. 1926년,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를 쓴 해 루쉰은 46세였다. 지금이야 40대 중반의 한창 나이라겠지만 100여 년 전은 좀 달랐다. 종종 '늙은이'라는 소리가 그에게도 날아 꽂혔다. 실제로 그는 젊은 문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외침>을 통속적이라 평한 청팡우는 1897년생, 남몰래 활을 날린 봉몽으로 빗대어진 가오창홍은 1898년생이다. 루쉰보다 약 15년 이상 젊은 인물들이다.


15년, 그 숫자의 차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시대의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루쉰은 1881년 청조 말에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청나라 관원이었다. 그는 고문古文을 배우며 자랐으나 1905년 과거제가 폐지되었다. 루쉰은 해군학교와 광산학교를 오가며 길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통의 폐지와 새로운 변화의 모색,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걸쳐 살았던 그가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문제였다. 허나 그를 공격한 청년 비판자들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다.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때는 이미 신해혁명(1911)으로 청조가 무너진 뒤였다. 그들은 신문화운동의 세례를 받아 자란 새로운 인종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루쉰도 과거의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루쉰을 비판하면서 "예술"을 들먹였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청팡우는  루쉰의 소설이 통속적이라 손가락질했다. 한편 가오창홍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루쉰)가 나에게 준 인상은 사실 그 짧은 시기(1924년 말)가 제일 확실했다. 그때는 정말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훌륭하지는 못하면서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의 모습만 있는 것으로 점차 전락해갔다."(<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각주 10) 아무래도 루쉰의 글은 새로운 문학도들에게 별 매력이 없었던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과거로 눈을 돌린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를 공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잖이 먹잇감을 던져주는 행위가 아닌가. <아침 꽃 저녁에 줍다>는 새 시대의 모습을 조망하지도 못했으며, 또한 창작과도 거리가 멀었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어떤가. 더 먼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회귀했으며 그 스스로도 창작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다. 늙은 루쉰이 낡은 이야기를 서투르게 건드리고 있다며 손가락질할만하다. 


아마 그도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그는 왜 '옛 것'에 천착한 것일까? 이는 아마도 그가 당면한 시대의 당혹스런 상황 때문일 테다. 그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만 동시에 혁명 이후의 쇠잔함도 보았다. 낡은 왕조는 무너졌지만 낡은 사상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일부는 더 먼 옛날로 돌아가려 했다. 탐욕스런 권력의 폭력성도 목도했다. 어찌 보면 낡은 왕조의 그늘이 더 낫지 않을까? 적어도 그때에는 상대해야 할 적이 분명했으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확실했다. 


한편 루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여느 계몽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그늘에 주목하는 인간이었다. 밝고 화려한 모습보다는 어둡고 컴컴한 데에 주목했다. 황금 세계를 믿지 않았으며, 똑똑히 미래의 전망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는 회의하는 인간이었으며 소멸을 욕망하는 사람이었다. 

1925년 첫날에 쓴 <희망>이라는 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는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과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 몸 밖에서 청춘을 찾지 못한다면 내 몸 안의 어둠이라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어둠 밤은 어디 있는가? 지금 별이 없고, 달빛이 없고, 막막한 웃음, 춤사위 치는 사랑도 없다. 청년들은 평안하고 내 앞에도, 참된 어둔 맘이 없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진보니 전통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당면한 현재의 문제만이 남았으리라. 그러나 현재의 문제조차 명료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상황은 쉬이 바뀌고, 사람들은 혼돈에 빠졌으며, 시대의 조류가 어떻게 흐를지 모르고 있었다. 이때 그가 옛 것을 건드린 것은 그것이 심원한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며, 어떤 근본적인 성찰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가 다룰 수 있고, 다룰 법 하며, 다루고 싶은 소재였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런 면에서 루쉰는 중국을 통렬히 비판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중국인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문화적 토대, 역사, 전통, 신화, 전설 위에서 그는 다시 그의 현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역사란, 과거의 사실이란 '다시 쓰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역사는 늘 새로운 해석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루쉰의 글쓰기는 좀 다르다. 그는 과거를 고쳐 쓰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비틀어보고, 현재의 문제를 다르게 조망하기 위해 옛이야기를 끌어들일 뿐이다. 


중국 전통 가운데는 옛 것을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전술傳述, 전해지는 것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記述, 벌어지는 사건을 그대로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와 전설은 후대에 고스란히 전해져야 했고, 역사는 기록과 동시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루쉰은 전술도 기술도 아닌 자신의 쓰기에 옛 것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통의 쓰기가 현재의 삶에 과거의 사건이나 전설을 삽입하는 식이었다면, 루쉰은 그와 전혀 다른 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과거를 현재와 뒤섞어버렸다. 과거는 신비를 가지고 있는 세계도 아니고, 특정한 교훈과 윤리의 근거이자 뿌리가 되는 장소도 아니다. 


루쉰은 베이징에서 샤먼, 광저우, 상하이로 이어지는 방랑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반년 동안에 나는 또 많은 피와 눈물을 보았지만
내게는 잡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눈물이 마르고, 피는 없어졌다.
도살자들은 유유자적 또 유유자적하면서
쇠칼을 사용하기도, 무딘 칼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잡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잡감'마저도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던져넣어 버릴' 때면
그리하여 '따름'(而已)만이 있을 따름이다. " 


1926년 10월의 글이다. 그는 폭풍과 같은 흔들림 속에서, 거꾸로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하나씩 가르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옛 것도 새 것도 모두 흐트러지는 상황에서 오로지 '쓰기' 만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을 테다. 따라서 <고사신편: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옛 것도 아니고 새 것도 아니다. 다만 써 내려가는, 그의 쓰기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렇기에 이 글들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보다는 모색과 탐색의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물음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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