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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10. 2019

아직도 역사를 믿나?

루쉰, 전사의 글쓰기 #10

오래된 믿음을 이야기하자. 정의는 승리한다. 진실은 통한다. 악인은 벌을 받는다. 선한 행동은 보답을 받는다. 역사는 발전한다 등등. 이를 믿음이라 부른 것은 모두 기약 없는 내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언젠가는'을 붙여도 무방하다. 


미래未來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기필코 오리라는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따져보면 그것은 오랜 습관에서 시작한 것이다. 어제 태양이 떴으므로, 그 전에도, 그 전에도 그랬으므로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습관의 퇴적물인 전통과 역사란 이러한 믿음을 낳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앞으로. 그러므로 역사를 읽는 것은 반복되어 왔고, 반복되고 있으며, 반복되어야 할 그 무엇을 곱씹는 행위이기도 하다. 


일찍이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 말했다.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쓰자 난신적자亂臣賊子, 즉 못된 놈들이 벌벌 떨었다고 주장한다. 포폄褒貶, 잘한 일은 높이고 못된 짓은 나무랐기 때문이다. 무엇을 통해? 바로 <춘추>를 통해. 따라서 역사란 공과를 기록해놓는 것이며 이를 대대손손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하늘 같은 권력을 손에 쥔 자라 하더라도 역사보다 더 오래 살 수는 없는 법. 사관의 말은 사관보다도, 권력자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아 영원토록 준엄하게 꾸짖으리라! 마찬가지로 비록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하더라도 역사는 그를 기억하고 기념하리라. 


그렇게 역사란 그저 오래된 사건의 묶음이 아니라 굳건한 하나의 윤리적 심판대로 활약한다. 이런 까닭에 개인적으로 루쉰이 <고사신편>을 통해 옛이야기, 역사와 신화 등을 다룬 것이 영 불만이었다. 그는 왜 낡은 이야기를 들추었을까. 오래된 윤리적 투쟁의 장, 포폄의 무대에 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까닭일까? 


허나 재미있는 것은 그가 옛이야기를 고쳐 쓰되, 그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옛이야기는 새롭게 변주되지만 동시에 그 이후도 언급된다. 


예를 들어 <고사리를 캔 이야기>를 보자. 백이와 숙제가 굶어 죽은 다른 이야기이다. 독자를 붙잡는 것은 기존의 이야기와 다른 '차이'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뒤에 낯설게 달라붙는 '이후'이기도 하다. 


<고사리를 캔 이야기>가 백이와 숙제만을 다루었다면 그들의 죽음을 다르게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루쉰은 그 '이후'를 붙여 놓았다. 그들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을 소개한다. 이야기는 새롭게 변주되나, 또 다른 사람들의 개입으로 정체를 알 수 없게 된다. 긍정과 부정, 그 쌍방의 대립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이 들러붙는다. 


<검을 벼린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이 이야기의 축이 되는 인물은 셋으로 미간척과 연지오자 그리고 이들의 복수의 칼날을, 아니 이빨을 맞는 왕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건 복수는 이루어졌고, 이들은 솥 안에서 모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끝나도 될 이야기에 이들을 장사 지내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기이하고도 음습한 분위기가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솥에서 해골을 건져내는 이야기며, 해골의 일부를 가지고 왕의 머리를 추측하는 이야기는 우습기만 하다. 그것뿐인가 터럭, 머리털인지 수염인지 모를 무엇을 건져내어 논하는 장면은 어떤가.


가장 압권은 장례식장의 모습이다. 왕이 죽었는데 길에는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몇몇의 충성스런 백성만이 '대역무도한 두 역적의 혼백이 왕과 함께 제사를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릴뿐이었다. 복수자와 복수의 대상을 함께 장사 지내는 것도 우습지만 백성들의 태도는 더욱 의아하다. 그렇게도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백성들은 한가하다.


그것뿐인가? 그 자리에 있었던 후궁과 환관, 대신 등등은 그저 '슬픈 체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여기에 이르자 백성들은 자리를 떠난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는 행렬도 뒤죽박죽 붐벼서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끝난다. 아무리 처절한 복수가 있으면 뭐하나 그 끝은 그저 좋은 구경거리인가 여부만 남는다.


어쩌면 이는 미간척과 연지오자의 복수에 함께 동참하며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던 독자들을 골탕 먹이는 것이기도 하다. 복수의 순간이 있은들, 삶과 죽음이 엇갈리고 생명이 번뜩이는 순간이 있은들 그것은 한순간에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그 셋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복수고 뭐고 하는 것도 영 중요하지 않을 테다. 


<전쟁을 막은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묵자의 수성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전쟁을 막기 위한 묵자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그는 나는 듯 초나라로 넘어가 전쟁을 막는다. 쉴 틈도 없이 그는 송나라로 돌아온다. 그의 수고는 어찌 되는가? 별 볼일 없다.


송나라 국경에 들어서자마자 두 차례 몸수색을 당했고 도성 가까이 와서는 또 의연금을 모집하는 구국대를 만나 헌 보따리조차 기부해야만 했다. 남쪽 관문 밖에 이르러서는 또 큰 비를 만났다. 비를 좀 피할 생각으로 성문 밑에 잠시 서 있다가 창을 든 두 명의 순찰병에게 쫓겨났다. 묵자는 온몸이 흠뻑 젖게 되었고 그 바람에 코가 열흘 이상 막혀 버렸다.
<전쟁을 막은 이야기>


루쉰은 앞서 언급한 포폄의 질문이 끼어드는 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커다란 전쟁을 막았으니 묵자를 기리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의 수고로부터 무언가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차갑게 소개할 뿐이다. 그 이후의 사건들을. 


루쉰이 덧붙이는 사건들은 앞의 문제를 뒤섞어 버리거나, 혹은 그와 전혀 무관한 일들이다. 묵자가 고뿔에 걸린 것이 어찌 초나라로 다녀왔기 때문일까. 잠시 교외에 나갔다 돌아오는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의 공을 모른다고 탓할 것도 아니고, 하늘이 그의 수고를 몰라준다고 투정할 것도 아니다. 그 '이후'란 늘 그렇다.


따지고 보면 '이후'란 그런 것이다. 혁명적인 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충격이 있다 하더라도, 설사 불같은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이후엔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낯선 사건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개념치 않는다. 슬픔을 겪었다고 위로를 주지도 않을 것이며, 즐겁다고 하여 애써 비애를 심어주지도 않을 테다. 그저 알 수 없는 변덕쟁이 같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설사 그 이야기의 진상을 알았다 한들 함께 공감하고 동참하는 이들은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어깨너머로 힐끗 눈길을 돌릴 뿐이며, 무료함이 관심보다 커지면 언제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던 길로 갈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가 대단히 의미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루쉰은 되묻는다. 그것은 실상 쓰여지고 가공된 것이 아닐까? 믿음이라 부를만한 당위가 낳은 서사가 아닐까? 사건은 단절적이며, 시간은 늘 제멋대로인데. 행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소수에게만 의미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옳네 하는 식으로 아웅다웅 다투는 이들을 위한. 


허나 돌아오는 것은, 그 냉소와 함께 들러붙는 것은 또 다른 질문이다. 믿음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늘 이상한 결말로 매듭지어진다면 그러면 그다음은? 거기엔 정의도 불의도, 선도 악도, 증오도 우정도 그 모두와도 무관한 삶이 덩그라니 남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에서 예는 상아의 배신에도 굶주린 배를 채우고 고단한 몸을 뉘어 잠잘 생각을 했다. 또한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에서는 장자가 도망친 이후에도 순경과 드잡이하는 벌거벗은 사내를 남겨두었다. 


그리하여 루쉰이 이리 말하기도 했다. 삶의 무서운 진실이란, 세 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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