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루쉰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Jan 11. 2019

[열린강좌] 루쉰의 여러 얼굴들

근본 없는 공부가 새로운 길을 열어줄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기>가 그랬고, <장자>가 그랬으며, 또 <루쉰>이 그렇습니다. 근본 없다는 것은 어떤 선생 아래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특정한 해석을 따라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읽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곁에 선생이 없으니 책도 열심히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논문도 찾아보았습니다. 내가 읽는 것이 맞는지,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지 거듭 따져 물으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표지판으로 삼을 책도 많지 않았고, 논문들을 읽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서툰 판단인지 모르나 책을 읽고 논문을 읽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2017년과 2018년을 거치면서 루쉰에 대한 글을 여럿 썼습니다. 오독도 있을 것이며, 견강부회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 나름대로 읽은 결과를 글로 엮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의 것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큰 성과입니다. 모두 내 것이라 할 것들 뿐입니다.


루쉰을 읽으며 전공이니 학계니 하는 것과 더 멀어졌습니다. 도무지 논문투로는 글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 주목받을 인간이 아니어서 그렇지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학자가 아니다, 연구자가 아니다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입니다. 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것도 그것 나름의 성취라 하겠습니다. 


2019년에도 루쉰을 붙잡고 공부하려 합니다. 다시 차근차근 읽으려 합니다. 전집 읽기 세미나를 열고 싶지만 당장은 할 수 없겠습니다. 2월에는 루쉰의 고향을 비롯해 난징과 상하이를 여행하고 돌아오려 합니다. 루쉰의 행적을 따라 루쉰의 글을 뽑아 읽고 돌아올 계획입니다. 3월부터는 루쉰의 주요 글을 뽑아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미래는 영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계획을 잡아봅니다.


그 첫걸음으로 열린강좌를 엽니다. 누구나 오셔도 됩니다. 루쉰에 관심이 없더라도, 어느 순간 방황 중에 있다면, 컴컴한 길을 걷고 있다면, 밤의 광기에 물들어 있다면 적잖이 재미있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나중에 루쉰에 대한 원고로 강의 내용을 정리해 나누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향>

我想:希望是本无所谓有,无所谓无的。
这正如地上的路;其实地上本没有路,走的人多了,也便成了路。


루쉰은 한 시대의 끝자락을 살았습니다. 오래된 왕조가 무너지고, 전통이 수명을 다한 그때에 루쉰은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길이 끊어진 그곳에서 어찌해야 할까. 그러나 루쉰은 쉬이 답을 찾지 않았습니다. 당대의 계몽주의자들처럼 깃발을 들고 앞서 발을 내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길이 끊어진 그곳에서 몸소 단절의 순간을 산 인물이었습니다.


전통과 근대, 낡은 왕조와 새로운 공화국, 빛과 어두움 그 사이에 그의 삶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루쉰은 어느 시대에 포섭되지 않으며, 국적이 없고, 평범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에게서 시대와 국가, 문명과 계몽을 넘어서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 열린 강좌에서는 루쉰의 글에 나타난 네 가지 표상을 통해 루쉰의 생애와 그의 시대를 조망하려 합니다. 그는 광인이었고, 까마득한 길을 걷는 길손(방랑자)이었으며, 동시에 투창을 손에 든 전사였습니다. 그림자처럼 끊임없이 지워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 강사: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쓴 너머학교의 <고전이 건네는 말 1~4>에서 <논어>, <장자>, <사기>, <욥기>를 주제로 글을 썼다. 저서로는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이 있다.  <주희의 논어 읽기 : 경전, 주석, 전통(Zhu Xi's Reading of the Analects: Canon, Commentary, and the Classical Tradition) 번역중.


* 일시: 2019. 1. 15 (화) 7pm 


* 신청: 홈페이지(링크)댓글로 이름(닉네임), 휴대폰, 메일주소를 남겨주세요.


* '중국역사문화기행 사오싱-난징-상하이(2.23~28)'에 대한 간단한 안내도 함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도 역사를 믿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