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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16. 2019

루쉰의 여러 얼굴들 #1

우리실험자들 열린강좌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1. 루쉰魯迅


우선 오해(?)를 바로잡자. 루쉰은 흔히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중국 문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도 하지만, (중국 작가를 몇이나 알고 있나?)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로 이름을 떨쳤던 까닭도 있다. 그러나 생전에 그가 쓴 많은 글들은 문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으며, 그 스스로도 문학연 하는 행태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남긴 대부분의 글은 '잡감雜感’이라 불리는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글이었다. 그때그때 시류에 따라 주제를 잡아 쓰는 글이었기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칼럼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법하나, 정작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논쟁이 치열하며, 자신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글도 많아 하나의 말로 그의 글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루쉰이라는 이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저우수런周樹人, 루쉰魯迅은 그가 생전에 사용한 여러 필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필명을 사용했는데, 루쉰이라는 필명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일부 전하는 말에 따르면 'Revolution'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허나 그보다는 어머니의 성에서 루魯를 따오고, 그와 모순되는 표현으로 쉰迅을 붙였다는 것이 더 적합한 설명으로 보인다. 루魯는 노둔魯鈍, 느리고 어리석다는 말이다. 쉰迅은 신속迅速, 날쌔고 빠르다는 뜻이다. 느리고도 빠른, 상호 모순되는 요소를 이름에 품은 사람이 바로 루쉰이다.


이런 까닭에 루쉰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크게 엇갈린다. 누구는 루쉰을 계몽주의자로 보는가 하면 누구는 루쉰은 계몽을 거부한 인물이라 본다. 문학가로서 루쉰이 있는가 하면 반문학을 외친 루쉰이 있기도 하다. 루쉰은 사후 마오에 의해 현대의 성인으로 추앙되었는데, 일부는 이것이야 말로 루쉰에게 있어 가장 치욕스런 일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루쉰이라는 모호한 이름처럼, 그는 지금도 해석을 기다리는 존재이다. 



2. 몰락


루쉰은 1881년 샤오싱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 꽤 유복한 삶을 살았다. 이는 그의 할아버지가 청나라 중앙 관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893년 그의 나이 13세 때부터 적잖은 풍화를 겪는다. 할아버지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에 가담한 일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투옥되었고, 루쉰의 집안은 부동산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당시 루쉰은 친척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불행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져 이곳저곳에서 의원을 찾아 모셔와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요구하는 진귀한 약재를 구하러 산과 들을 누비며 고생해야 했다. 이때 겪은 경험은 훗날 전통 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그가 의학을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루쉰은 아버지의 병환에 쓰일 진귀한 약재를 구하기 위해 전당포와 약방을 오가야 했다. 그는 자신의 키보다 갑절이나 높은 전당포 창구 안으로 옷가지나 머리 장식을 밀어 넣었으며, 그 대가로 '모멸어린 돈'을 받아 약을 구입했노라고 기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몰락은 루쉰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으리라. 그는 그 경험으로부터 '세상인심의 진면목'을 보았노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몰락의 경험은 루쉰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어지간한 생활을 하다가 밑바닥으로 추락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길에서 세상인심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리라. 내가 N으로 가서 K학당에 들어가려 했던 것도 다른 길을 걸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찾아보고자 함이었을 게다. 어머니는 방법이 없었는지 팔 원의 여비를 마련해 주시며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울었다. 이는 정리情理상 당연한 것이었다. 그 시절은 경서를 배워 과거를 치르는 것이 정도正道요, 소위 양무洋務를 공부한다는 것은 통념상 막장 인생이 서양 귀신에게 영혼을 파는 것으로 간주되어 몇 갑절의 수모와 배척을 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외침’ 서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연이어 닥친 불행이 없었다면 그는 번듯한 집안의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순순히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테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닥친 불행은 앞에 주어진 길을 의심하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정도正道', 무릇 '도道'란 길을 의미한다. 한 사회가 닦아놓은 일반적인 삶의 과정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뿐인가.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이념, 이상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 바로 '도道'이다. 그러나 그는 몰락을 통해 인도人道, 통용되는 인간사의 가치가 결코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른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루쉰 개인에게만 요청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청조清朝는 쇠락한 지 오래였다.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 참혹하게 패배했으며,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체제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1894년에는 공들여 키운 해군이 전멸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동방의 작은 나라 일본에게. 이에 1898년에는 캉유웨이가 권력을 잡고 개혁운동을 벌인다. 이른바 변법자강운동變法自彊運動. 그러나 '100일 유신'이라 불리는 말처럼 개혁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자금성을 떠나는 1912년까지 낡은 왕조는 끊임없이 퇴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캉유웨이가 개혁의 깃발을 든 1898년 루쉰은 난징에 가서 강남 수사 학당에 들어간다. 이곳은 해군학교였는데 당시 신문물을 수입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일찍이 '천연론(天演論/사회진화론)'을 번역한 옌푸가 해군 출신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불만을 갖고 결국 광무철로학당으로 적을 옮긴다. 이곳은 철도와 광산일을 배우는 학교였다.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서술한다. 


이십 장 높이의 상공으로도 오르고 이십 장 깊이의 땅 밑으로도 내려가 봤지만 결국은 아무런 재간도 배우지 못했으며, 학문은 "위로는 벽락에 닿고 아래로는 황천에 이르렀건만 두 곳 다 무변 세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가 되어 버렸다. <사소한 기록>


해군학교를 다니며 까마득히 높은 돛대에도 오르고, 거꾸로 컴컴한 갱도를 파고 땅 속 깊이도 내려가 보았지만 그 어디도 길이 없었다. 쇠락한 왕조의 낡은 학문은 이제 골동품이 되어 버렸고, 고향을 떠나 서양 귀신에게 영혼을 판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이른 곳에도 딱히 답은 없었다. 결국 그도 외국으로 떠날 생각을 품는다. 그가 선택한 곳은 일본. 그는 그곳에서 의학을 배운다. 


훗날 기록을 보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그 역시 큰 포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경험이 그를 영 다른 길로 이끌었노라 이야기한다. 바로 그 유명한 환등기 사건이다.


내 꿈은 아름다웠다. 졸업하고 돌아가면 아버지처럼 그릇된 치료를 받는 병자들의 고통을 구제해 주리라, 전시에는 군의를 지원하리라. 그런 한편 유신에 대한 국민들의 신앙을 촉진시키리라, 이런 것이었다. (...) 한번은, 화면상에서 오래전 헤어진 중국인 군상을 모처럼 상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몽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설에 의하면,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 참이라고 했다. <'외침' 서문>


그는 이 경험에서 몸이 아닌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건장하고 우람하더라도 어리석고 겁약하다면 조리돌림의 재료가 될 뿐이다. 그것뿐인가? 동포의 죽음을 그저 구경하는 구경꾼이 될 뿐이다. 그는 문예 운동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뜯어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문예운동에 투신한다.




*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 강의 녹취




* 중국 여행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우리실험자들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http://experimentor.net/we_life?board_name=we_life&mode=view&board_action=modify&board_pid=6&order_by=fn_pid&order_type=d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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