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루쉰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Jan 16. 2019

루쉰의 여러 얼굴들 #2

우리실험자들 열린강좌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3. 광인 


1902년 일본으로 떠나, 1909년 유학길에서 돌아온다. 중간중간 고향에 돌아오는 일도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일본에서 개혁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여러 외국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쥘 베른의 <달나라 여행>, <지구속 여행> 등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문단에 이름을 떨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보통, 1918년 소설 <광인일기>를 그의 문예 활동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말을 빌리면 그때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문단의 중심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다만 이때의 문단이란 문학연하는 이들만 일컫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자. 


소설 <광인일기>은 보통 중국의 첫 번째 백화문 소설로 언급된다. 이전의 전통적인 고문古文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백화문白話文을 이용한 소설이었다. 당시 중국 사회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었다. 이미 신해혁명으로 낡은 왕조는 무너졌다. 새로운 체제가 자리 잡아야 하나 이는 요원한 상황이었다. 정치는 여전히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필요가 커지고 있었다. 전통의 언어, 전통의 관습과는 다른 문화. 낡은 전통을 대표하는 흔적은 크게는 셋이었다. 변발, 전족, 고문古文.


고문에 대한 증오가 어찌나 컸던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나는 어찌되었든 동서남북 위아래로 찾아 나서서 가장 지독하고 지독하고 지독한 저주의 글을 얻어 가지고 먼저 백화문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모든 인간들부터 저주하려고 한다. 설사 사람이 죽은 뒤에도 정말 영혼이 있어 이 극악한 마음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나는 결코 이 마음을 고쳐먹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어쨌든 먼저 백화문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24효도>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더디 오는 법. 그가 백화를 쓰자고 주장했으나 낡은 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그는 이른바 전통의 문화 속에 숨겨진 낡은 구습의 틈바구니에 사람을 잡아먹는 잔혹함이 숨어 있다고 고발한다. 통상 예고禮教라 불리는 이 잔혹함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나 이를 옭아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만사는 모름지기 따져 봐야 아는 법. 예로부터 사람을 다반사로 먹어 왔다는 건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 확실치는 않다. 나는 역사책을 뒤져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 역사책에는 연대도 없고, 페이지마다 ‘인의’仁義니 ‘도덕’道德이니 하는 글자들이 비뚤비뚤 적혀 있었다. 어차피 잠을 자긴 글렀던 터라 한밤중까지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그러자 글자들 틈새로 웬 글자들이 드러났다. 책에 빼곡히 적혀 있는 두 글자는 ‘식인’이 아닌가! <광인일기>


<광인일기>가 읽었다는 역사책이란 경서經書를 가리킨다. 연대도 없는 역사책이란 장학성이 말한 '육경개사六經皆史'라는 말을 그대로 참고한 표현이다. 그러니 그 역사책에 있는 것이라고는 인의니 도덕이니 하는 말들이지. '육경개사', 육경六經이 모두 역사라는 말은 경전의 권위를 사서史書로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고래로 전해오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이라는 분류에서 보면 역사서史書는 경서經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경經이란 변하지 않는 법칙을 기록한 책이며, 역사란 무수히 많은 다양한 변화상을 기록한 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꾸로 루쉰은 역사라는 말을 통해 경전을 상대화하기보다는, 경전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전은 역사로 상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이기 때문에, 유구한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쉬이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리하여 루쉰에게는 역사란 '수천년 간 사람을 먹어온 내력'과 같은 말이 된다.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은 우선은 하나의 비유이다. 이는 전통의 도덕이 특정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말이다. 적자를 위해 서자가, 남편을 위해 아내가, 부모를 위해 자식이, 군주를 위해 신하가 등등. 그는 이렇게 강상윤리綱常倫理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실상 전통사회의 도리道理란 누군가를 희생 삼아 벌이는 제의의 현장, 식인의 연회장이라 할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누가 이 식인의 연회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광인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내력에 사람을 먹어온 풍습이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동시에, 자신도 그 동조자였음을 깨닫는다. 전통의 모순이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며, 또한 내 핏줄에 면면이 이어져 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잡아먹는 그 고깃덩어리가 내 피와 살이 되어버린 것을 어찌하랴.


결국 이 잔혹성을 인지한 자는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광인이란 시대의 모순을 발견한 인간이며, 또한 자신에게서 그 모순을 발견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답은 소멸 밖에 없다. 구습이 사라지듯, 변발과 전족, 그리고 백화가 사라져야 하듯 이 광인에게 주어진 미래는 소멸 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루쉰은 그의 다른 글에 나오는 또 다른 광인, <흰 빛>의 주인공에게 죽음을 선물해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하나 언급하자면 <흰 빛>의 주인공 천스청은 <광인일기>의 주인공과는 좀 다르다. 


그는 또다시 주저앉았다. 눈빛이 유난히 번쩍거렸다. 눈엔 무수한 것들이 보였지만 희미했다. 무너져 내린 전도가 그 앞에 드러누워 있었다. 이 길이 넘점 넓어지더니 그의 모든 길을 막아 버렸다. <흰 빛>


그는 시대의 모순을 깨우치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다만 미래가 끊어진 인간이다. 천스청은 수 없이 과거 시험을 보나 매번 낙방하고 만다. 낙방할 때마다 그는 미쳐버린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집안 어딘가 묻혀 있다는 은자를 찾기 위해 밤새도록 땅을 파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매번 헛수고만 할 뿐이다. 더욱 잔혹한 현실은 과거제가 곧 폐지되어 버릴 것이라는 자명한 미래일 것이다. 기대했던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낙방의 상처보다 더 큰 문제는 전해지는 은자에 대한 전설이 헛소문이라는 사실이며, 비록 그는 결코 모르지만, 그의 미래가 곧 산산이 부서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는 데 있다. 땅을 파해치며 은자를 찾아 헤매던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1881년에 태어난 루쉰의 미래라 하여 다를 것인가? 그가 여느 계몽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계몽 이후를 생각했다는 점이다. 계몽이 어떤 시대를 열어줄 수 있을까? 문제는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그 과실의 소유를 주장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아르치바셰프의 말을 빌려 자네들에게 물어보고 싶네. 자네들은 황금시대의 출현을 그들 자손에게 약속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에겐 뭘 줄 수 있는가? <두발 이야기>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시대의 모순을 자각한, 시대의 모순이 새겨진 광인에게 주어진 것은 필멸의 운명뿐이다.




*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 강의 녹취




* 중국 여행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우리실험자들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http://experimentor.net/we_life?board_name=we_life&mode=view&board_action=modify&board_pid=6&order_by=fn_pid&order_type=desc


매거진의 이전글 루쉰의 여러 얼굴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