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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17. 2019

루쉰의 여러 얼굴들 #5

우리실험자들 열린강좌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6. 그림자


루쉰은 1925년 북경여사대 사건에 휘말린다. 총장과 학생들이 대립한 이 사건은 학생들의 승리로 끝나는듯 싶었다. 내쫓겼던 학생들이 돌아오고 학생 편에 섰던 루쉰도 복직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1926년 3월 18일, 3.18 참사가 발생한다.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향해 돤치루이 군벌 정권이 발포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루쉰의 제자들도 여럿 목숨을 잃었다. 잠깐의 승리는 달콤했으나 적의 항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베이양 정권은 수많은 인물을 잡아 가두었고 그 틈에 여러 인물의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루쉰도 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려 한 달 넘게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몸을 피해야 했다. 결국 그는 그해 여름 쉬광핑과 함께 남쪽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루쉰은 샤먼으로 쉬광핑은 광저우로. 그러나 샤먼에서의 삶도 편치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쉰은 광저우로, 다시 상하이로 거처를 옮긴다. 1927년 상하이에 거처를 정한 이후 1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줄곧 상하이에 머문다.


1926년 삶의 중요한 변화를 겪으며, 베이징에서 샤면, 광저우를 거처 상하이로 삶의 자리를 옮기며 그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이 반년 동안에 나는 또 많은 피와 눈물을 보았지만
내게는 잡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눈물이 마르고, 피는 없어졌다.
도살자들은 유유자적 또 유유자적하면서
쇠칼을 사용하기도, 무딘 칼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잡감’만 있었을 따름이다.

‘잡감’마저도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던져넣어 버릴’ 때면
그리하여 ‘따름’而已만이 있을 따름이다. 

10월 14일 밤,
교정을 마치고 적다. <화개집 속편 / 1926년>


루쉰에 대한 적들의 공격도 더욱 심해졌다. 누군가는 그의 잡감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려야 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그에게 욕이 될 수 있을까. 앞서 보았듯 그는 자신의 글이 자연스레 사라지는 날을 맞을 것이라 여겼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는 시대의 폐단과 사라지는 소멸을 바란 것이지, 적들에게 내쳐지는 운명을 자신의 미래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허나 혹시 아는가 시대가 역행하여 그가 바라던 시대가 불같이 닥쳐오기는커녕 꽁꽁 얼어붙은 시대가 다시 찾아올지.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평생을 분투하여 살았건만 한치도 변하는 것이 없다면. 개별 존재의 소멸만이 닥쳐올 것이라면. 전통적인 지식인들은 이를 역사에 맡겼다. 어쨌든 역사는 의인을 알아줄 것이라는 희망. 역사란 표폄의 공간이며 또 다른 도덕이 작동하는 현장이다. 비록 느리기는 하나 언젠가는 정의는 승리할 것이라 운운하는. 


루쉰은 말년에 새로운 글쓰기 실험을 시도한다. 검열을 피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루쉰이 아닌 채 글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수많은 필명으로 자신을 변주하며 사건에 개입하고자 했다. 한편 고대의 신화와 전설을 걸어내어 자신의 글쓰기 소재로 삼기도 했다. <새로 쓴 옛날 이야기, 古事新篇>은 후자의 묶음이다. 이 이야기 속에 역사와 신화는 새롭게 구성된다. 헌데 루쉰은 역사와 신화의 인물을 비틀고 더불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는다.


신화의 이야기들이 변주된 이후는 어떤가. 사건의 이후, 거기에 남는 것은 그저 별 볼일 없는 일상뿐이다. 사람들은 헛된 소문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아무리 커다란 변화가 있은들 백성들의 삶은 그저 심심한 상태로 다시 돌아갈 뿐이다. 


눈물도 마르고, 피도 마르고, 설사 도살자들이 오가는 상황에도, 모든 것이 쓸모없음으로 돌아간 뒤에도 루쉰은 "‘따름’而已만이 있을 따름"이라 말한다. 이를 어찌 이해할 것인가. 쉬이 읽히지 않는 표현이다. '따름'而已. 여기에 남는 것은 차가운 냉소, 잔혹하게 닥쳐올 그 이후의 시간, 진보도 변혁도, 혁명도 반동도, 그 무엇과도 무관한 그 이후의 시간.


흥미롭게도 루쉰은 말년, 죽음에 관심을 둔다. 1936년 10월 19일 루쉰은 세상을 떠나는데, 약 한 달 전 그는 <여조女弔>라는 제목의 글을 짓는다. 여조란 목매어 죽은 귀신을 가리킨다. 죽음을 앞두고 어린 시절 극에서 보았던 여조를 떠올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녀가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젖힐 때에야 얼굴이 보인다. 석회처럼 하얗고 동그란 얼굴, 칠흑같은 눈썹, 시커먼 눈자위, 새빨간 입술. (...) 만약 밤중에 날이 어둑어둑할 때에 멀리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이 빨간 사람이 어른거린다면, 지금 나라고 해도 달려가서 바라볼 것이다. 물론 내가 거기에 혹하여 목을 매지는 않을 것이다. <여조>


나는 그가 가진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 삶과 죽음을 오가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여조를 떠올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삶의 현실에 주목했던 사람이지만 거꾸로 그에게 삶이란 죽음의 반대말이기도 했다. 그는 삶과 죽음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그중에 하나를 취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삶과 죽음 양쪽 모두를 성찰한다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그는 삶의 뒤편에 계속 눈길을 주고 있었으며, 문득문득 비치는 어둠의 그림자를 부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세계란 본디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모든 존재가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허위의 허위와 허위만이 있는 건 아닐까. 밤이 되어도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법. 빛이 사라진 대도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삼켜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둠 속에 어둠을 보는 자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자가 있을 뿐.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당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미래의 황금 세계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그런데 그대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오.
동무, 나는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소. 나는 머무르지 않으려오.
나는 원치 않소!
오호오호, 나는 원치 않소. 나는 차라리 무지无地에서 방황하려 하오.
(…)
나는 이러기를 바라오, 동무 -
나 홀로 먼 길을 가오. 그대가 없음은 물론 다른 그림자도 암흑 속에는 없을 것이오. 내가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에, 세계가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할 것이오. 
<그림자의 고별>


존재를 믿는 자는 존재가 지워지는 순간을 가늠하지 못한다. 희망을 품는 자는 희망을 빼앗은 이후를 감당하지 못한다. 순진한 계몽주의자들은 빛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날은 있겠으나 그림자를 몰아내는 날이 있을 수 있을까? 


루쉰은 일찍이 희망이건 절망이건 모두 허망함을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희망도 절망도 사라지고 허망만이 남는 순간이 있을 테다. 나는 그가 수많은 적을 상대했음에도 원귀가 되지 않은 것이, 원수와 복수를 입에 올림에도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은 것이, 숱하게 많은 글을 써냈으면서도 글과 문자의 노예가 되지 않은 것이 존재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믿지 않았고, 존재와 실재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의 글쓰기는 진솔하되 진리를 추구하지도 진실을 말한다고 자부하지도 않는다. 어둠 속에 가라앉는 법,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세계가 자신에게 속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

 

그는 <여조>를 쓰기 며칠 전,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도 죽음을 앞두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남긴다. 그 스스로 '사람이 죽고 나서 귀신이 되는 일은 없다고 확신하였다'하나, 죽고 난 뒤의 일이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며, 상관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허나 몇 마디쯤은 남긴다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1. 상을 치를 때, 누구에게선 돈 한 푼 받지 말라. - 다만 친한 벗의 것은 예외이다.
2. 바로 널에 넣고 땅에 묻어라.
3. 어떤 기념 행사도 하지 말라.
4. 나를 잊고 제 일을 돌보라. - 그러지 않는다면 진짜 바보다.
5. 아이가 자라서 재능이 없으면 작은 일로 생계를 꾸리도록 하라. 절대로 허울뿐인 문학가•예술가 노릇은 하지 말라.
6. 남이 너에게 해주겠다는 것을 참말로 여기지 말라.
7. 남의 이빨과 눈을 망가뜨려 놓고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
<죽음>


옛날 증삼은 사람이 죽을 때면 말이 순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루쉰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은 참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별로 순해지지 않았다. 평범한 당부도 있으나 첨언한 말이 인상적이다. 설사 돈 한 푼 받지 않더라도 친한 벗의 것은 받을 수 있다는 말. 자신을 잊고 제 일을 돌보지 않으면 진짜 바보라는 말. 그의 벗들이 그 말을 듣고 어찌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루쉰은 바라지 않았을 테지만, 루쉰의 관 위에는 '민족혼'이라는 커다란 휘장이 덮였다. 훗날 마오는 루쉰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이며, 위대한 문학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이며 혁명가이다.' 비록 상상이기는 하나, 마오의 평가를 들었다면 무덤 속의 루쉰은 무어라 말했을까. 역설적으로 지난번 중국을 찾았을 때에는 서점에서 루쉰의 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루쉰에 대한 시끄런 찬사가 그친 지금, 루쉰은 또 무어라 생각할까. 


위에서 이어지는 루쉰의 글로 매듭지으련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것 말고도 있었을 것이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열이 많이 났을 때 유럽 사람들이 치른다는 의식을 떠올린 기억은 있다. 남에게 용서를 비로 자기도 용서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적이 많은데, 내게 신식 사람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나를 미워하라고 해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런 의식은 없었다. 유언장도 쓰지 않았다. 말없이 누워 있었을 뿐이다. 때론 훨씬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는 거구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는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서 한번뿐이니 어떻게든 견뎌 내겠지... 나중에 좀 호전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나는, 이런 것들은 아마, 정말 죽기 직전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정말 죽을 때에는 이런 상념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도대체 어떠할까는, 나도 모른다. <죽음>




*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1 / #2 / #3 / #4 / #5

* 강의 녹취




* 중국 여행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우리실험자들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http://experimentor.net/we_life?board_name=we_life&mode=view&board_action=modify&board_pid=6&order_by=fn_pid&order_type=d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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