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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26. 2019

삼국지의 성지, 청두

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8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이 말은 책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책에는 책만의 체험이 있기 마련이며, 직접 몸소 경험하는 것은 또 그대로의 매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요. 다만 이 둘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 청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 여름이라 무척 더웠어요. 습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렸지만 다행히 기운을 잃지 않았습니다. 꿀맛처럼 단 복숭아 덕택에 힘을 낼 수 있었거든요. 평소 복숭아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청두에서 먹었던 복숭아는 특별했습니다. 그렇게 맛난 복숭아를 먹으면서 생각했지요. <서유기>의 손오공이 반도원에서 복숭아를 훔쳐 먹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가만 둘 수 있었을까요. 


<서유기>에서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손오공이 훔쳐 먹습니다.


단순히 복숭아 때문에 손오공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어요. 그 여행에서 황과수 폭포를 방문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황과수 폭포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커다란 폭포랍니다. 어찌나 큰지 폭포 안으로 동굴이 있을 정도예요. 이 동굴에서는 폭포 바깥을 내다볼 수도 있습니다. 이 동굴에는 수렴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원숭이들을 이끌고 들어간 그 동굴의 이름이지요. 이 폭포 덕택에 사람들은 <서유기>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거예요. 


이처럼 멋진 이야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풍부한 배경 위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요. 다양한 자연환경과 상상력이 어우러져 <서유기> 같은 작품을 낳았습니다. <서유기>에 대해서는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니 다음으로 미룹시다. 이번에는 <서유기>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야겠어요. 바로 <삼국지>!!


이 폭포는 <서유기>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삼국지>는 역사이기도 하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 둘은 서로 달라요. 역사는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 반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니까요. 본디 <삼국지>는 진수(陳壽, 233~297)가 쓴 역사책을, <삼국연의>는 나관중(羅貫中 1330? ~ 1400)이 정리한 역사 소설을 가리킵니다. <삼국지>와 <삼국연의>는 이처럼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삼국지'라고 할 때에는 보통 <삼국연의>를 가리켜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역사와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꼼꼼하게 따져보곤 합니다. 물론 이도 흥미로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천여 년 뒤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사실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때로는 실제 역사보다 지어낸 이야기가 더 힘이 센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청두成都는 이를 잘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청두는 삼국지의 성지라 할만한 곳이예요. 바로 유비가 이곳을 수도로 삼았기 때문이지요. 그 이후 이 도시는 촉나라의 수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유비의 무덤뿐만 아니라 제갈량의 사당이 있어요. 바로 무후사武侯祠가 그곳입니다. 삼국지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가보아야 하는 곳이예요. 그곳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는 물론이거니와 제갈량을 비롯한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답니다. 


무후사의 유비, 관우, 장비. 멀리서 왔으니 얼굴이라도 만져봐야지요.


잘 알려져 있듯, <삼국지>는 세 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툰 이야기입니다. 위, 촉, 오 세 나라의 수도 가운데 유독 청두가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삼국연의>, 즉 삼국지 이야기가 촉나라를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이예요. 실제 역사에는 주인공이 없지만,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입니다. <삼국지>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가지요. 그래서 <삼국지>를 읽으면 유비와 그 형제들, 그리고 제갈량을 비롯한 주변 인물에 큰 관심을 쏟을 수밖에요. 덩달아 청두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처럼 유명한 도시이지만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이 도시의 위치를 알면 <삼국지>가 얼마나 넓은 땅을 배경으로 쓰인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유비의 고향 유주 탁현 누상촌은 오늘날 베이징 부근입니다. 여기서 청두까지의 거리는 약 1800여 km! 서울에서 베이징까지의 거리보다 약 두배나 떨어진 곳이지요. 거리로만치면 까마득히 먼 외국 땅과도 같은 곳입니다. 헌데 유비는 어째서 고향을 떠나 이토록 먼 곳에 수도를 세웠을까요? 


베이징과 쓰촨성. 쓰촨성 한 가운데에 청두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나라를 세울 곳이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예요. 이른바 무주공산, 주인이 없는 텅 빈 산과 같은 지역이었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버려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너무 외진데 있는 바람에 교통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산을 넘거나 강을 거슬러 올라야만 갈 수 있는 지역이었어요. 이러니 일부러 힘들여 그곳에까지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담긴 곳이기도 했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넓은 평지가 있어 많은 식량이 생산되었습니다. 그만큼 백성도 많이 살았구요. 다른 나라의 침입은 막고 힘을 기르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유비처럼 별 기반이 없는 군주에게는 최적이 땅이었지요. 유비는 제갈량의 조언을 따라 이곳에 나라를 세웁니다.


그러나 유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제갈량이 나랏일을 맡게 됩니다. 그는 유비가 품은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차례 군대를 일으켰어요. 그는 한나라의 옛 수도 장안, 오늘의 시안을 얻기 위해 수차례 전쟁을 벌입니다. <삼국지>에는 이 제갈량의 활약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나 너무 험한 산들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병사들은 매우 고생했다고 해요. 


제갈량은 지금도 매력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드라마 <대군사사마의> 제갈량 예고편


우리는 제갈량이 전쟁을 일으킨 것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청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장안, 즉 시안에서 출발해서 청두로 가는 길입니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내기 힘든 길이었을 거예요. 큰 마음을 먹고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길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얼마 전 시안에서 청두까지 고속철도가 놓였어요. 덕분에 시안과 청두를 3시간 만에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높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할 필요 없이 터널을 뚫어 곧바로 길을 뜷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기차 안에서 한동안 창문 밖으로 아무 풍경을 볼 수 없었답니다. 터널 속 컴컴한 어둠만 보일 뿐이었어요. 긴 터널을 지나다 문득 비치는 바깥 풍경을 보면 비로소 얼마나 험한 산을 통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시안의 삭막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푸르른 땅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네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배가 되는 거리를 달렸으니 계절이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시안의 냉랭한 공기와 달리 포근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해주었어요. 이 포근하고 촉촉한 도시는 생각지 못한 만남을 선물해주었답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창밖 풍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청두에 도착 후 첫 번째 일은 맛난 점심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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