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1
눈높이에 맞게 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튀어나오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난감하곤 합니다. '나를 위해 공부하라'는 제목으로 <논어>와 공자에 대해 강의할 일이 종종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똑같은 발음의 한자 '功夫'를 보여주며 쿵푸 이야기를 끼워 넣었습니다. (참고로, 工夫와 功夫는 똑같은 한자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공부=功夫=쿵푸' 이렇게 정리하고 물어봅니다. '쿵푸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본디 제가 기대했던 대답은 무술, 액션, 이소룡 따위였는데 그런 대답은 절대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학생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쿵푸팬더요!' 어이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영화가 매우 큰 인상을 남긴 게 분명합니다.
왜 그렇게 이 영화가 인상 깊었을까요? 그것은 이 영화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판다라는 매력적인 동물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판다는 매우 큰 사랑을 받는 동물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눈, 동그란 몸까지 온통 동글둥글.
그런데 안타깝게도 판다는 전 세계에 그 수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사람들이 마구 잡아 죽인 데다 번식이 빠르거나 야생에서 잘 생존할 수 있을만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판다의 습성은 도무지 이 동물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어요. 느릿한 움직임 하며, 게으른 습성까지. 야생에서 늑대와 호랑이를 만나면 바로 잡아먹히지 않을까요?
서식지도 제한적이라 오직 중국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판다가 멸종당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었어요. 중국의 국보라고까지 불릴 정도랍니다. 그래서 판다를 해치는 사람에게 사형 내리기까지 할 정도예요.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판다가 귀한 현실입니다.
게다가 판다는 사고팔 수도 없습니다. 중국 영토 바깥, 외국에 나가 있는 판다는 모두 중국 정부가 빌려준 것이예요. 소유는 확실히 중국 정부의 것이고, 행여 새끼가 태어난다 해도 역시 중국 소유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세계의 모든 판다는 중국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당연히 빌려 달라고 한다고 해서 아무 나라에나 빌려주지 않습니다. 친한 나라에게만 빌려주지요. 우리나라도 얼마 전에 러바오와 아이바오라는 두 판다를 들여올 수 있었어요. 이웃 나라의 국보를 모시는 만큼, 판다의 환영식도 매우 화려했답니다.
청두에서도 이런 귀한 판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잔뜩! 청두의 판다기지는 판다를 기르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6마리의 판다로 시작한 이곳에는 현재 100마리가 넘는 판다가 살고 있어요. 아주 작은 새끼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많은 노년의 판다까지! 청두는 세계에서 판다가 가장 많은 도시인 셈입니다.
본디 여행 계획에는 판다기지가 없었어요. 역사문화기행인 만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곳을 방문하는 것이 첫째 목표였으니까요. 그러나 판다 기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열망하는 친구들의 바람을 꺾을 수는 없었어요. 판다기지의 동영상을 보며 어찌나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지. '동영상으로 봤으니 가보지 않아도 되겠지?' 농담으로 꺼낸 말에 수많은 원성이 날아들었습니다. 간절한 소원이니 풀어줘야지요, 뭐.
청두의 두 번째 날 일정은 판다기지 방문으로 시작했습니다. 판다기지도 사람이 많이 몰리니 아침에 일찍 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 식사를 위해 나오는 판다들을 볼 수도 있지요. 다행히 다들 늦잠 없이 일찍 일어나더군요. 판다를 보러 가는 셀램에.
이번에도 택시를 나누어 타고 출발했어요. 고작 며칠 되었다고 이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셋으로 갈라져야 하니 결정은 가위바위보로. 순식간에 나뉘어 택시를 잡아탔어요.
판다기지는 청두 시 동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내 중심에서는 좀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어요. 중국도 공공교통이 나쁘지는 않지만 시간이 아까운 여행객은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합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판다 기지에 도착했네요.
판다기지는 꽤 쾌적한 곳이었습니다. 판다들이 사는 동산(?) 답게 수풀이 우거져 있었어요. 판다를 만나려면 좀 걸어야 한답니다. 우리는 각자 자유롭게 모둠을 만들어 흩어졌어요. 저마다 보고 싶은 판다가 다르니. 돌아다니면서 카톡으로 상황을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저는 혼자 떨어져 조금 산책을 즐겼네요. 개인적으로는 판다보다 넓은 호수가 마음에 들었어요. 백조와 흑조가 있는 호수는 한적하니 좋더군요. 다들 판다를 보러 가서 발길이 드문가 봐요. 점심 먹을 곳을 물색해 놓고는 카페에 들어가 앉아 쉬었답니다. 판다에 큰 흥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며칠간 돌아다니는 바람에 좀 지친 탓이지요.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판다를 하나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좀 돌아다녔어요. 다행히 저도 판다를 볼 수 있었네요. 판다기지의 장점은 많은 판다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일 거예요. 한국에서는 멀리 아득한 거리에서 판다를 보았지만 여기서는 바로 코 앞에서 판다를 볼 수 있네요.
이곳에 판다만 있는 건 아닙니다. 랫서판다도 있어요. 판다와는 영 다르게 생긴 이 친구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습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크더군요. 판다도 그렇지만 랫서판다도 커다란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 같습니다.
오전 시간을 내내 판다와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모였어요. 판다의 동네에 왔으니 죽순이나 버섯이 들어간 요리를 먹어야지요. 식당에 둘러앉아 모였더니 저마다 판다를 본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대나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엉덩이만 보았다, 응가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 판다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등등. 조잘조잘 할 말도 많습니다.
나가는 길에는 판다 기념품을 살 수 있어요. 다들 내심 기대하고 있던 곳이었답니다. 다른 데서도 판다 인형이니 기념품이니 살 수 있지만 판다기지에서 사는 건 좀 특별하니까요. 애정이 담겨서일까요? 청두 시내 어디서나 판다 인형을 볼 수 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국의 국보 판다를 만나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잠깐 쉬고 두보 초당에 가기로 했지요. 이곳, 청두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머문 곳으로도 유명하니까요. 헌데 판다로 들뜬 마음이 시인을 보러 갈 수나 있을까...
참, 이야기를 모아보니 쿵푸하는 판다는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