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2
하나만 보지 말기. 중국 여행을 기획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한 주제랍니다. 중국을 보려면 과거와 함께 현재를 보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야 뻔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지요. 단순히 '중국여행'이라 하지 않고 '중국역사문화기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와 과거, 시대와 역사, 기술과 문명을 같이 보자는. 그래서 가능한 다양한 교통편을 경험하도록 의도하기도 했어요. 택시와 버스, 지하철, 그리고 대륙을 가르는 고속열차까지. 식당도 신경 쓰기도 했답니다. 길거리 식당에서 패스푸드점까지.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죽과 만토우로만 아침을 때웠다면, 어느 날은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사 먹어보기도 했어요. 대략 5배 차이가 나는 식사. 5원짜리 죽 한 그릇도 중국을 보여주고, 40원짜리 햄버거도 중국을 보여줍니다.
여튼, 이렇게 고민이 많으니 발이 수고로울 수밖에요.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인 판다를 만났으니 다시 과거로 눈을 돌려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두보를 만나러 가야지요. 숙소에서 잠깐 쉬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어요.
두보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입니다. 그는 이백과 더불어 중국의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해요. 직접 그의 시를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이백과 두보의 이름은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거예요. 두보가 살았던 시대는 아주 어지러운 시대였답니다. 이른바 '안사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예요. 안록산과 사사명이라는 인물이 연거푸 반란을 일으켜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의 시 <춘망春望>은 이런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渾欲不勝簪(혼욕부승잠)
김소월은 이 시를 <봄>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옮겼답니다.
봄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있더냐,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에 뿐이어
오! 서럽다 이를 두고 봄이냐
치워라 꽃잎에도 눈물뿐 흩으며
새 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두근거리는 가슴아
못보느냐 벌겋게 솟구치는 봉숫불이
끝끝내 그 무엇을 태우려 함이리오
그리워라 내 집은
하늘 밖에 있으니
애닳다 긁어 쥐어 뜯어서
다시금 짧아졌다고
다만 이 희끗희끗한 머리칼뿐
이제는 빗질할 것도 없구나
이런 혼란한 시대 때문에 안락한 삶을 꿈꾸었던 두보의 꿈도 깨어져버리고 말지요. 그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 쓰촨성 청두에 이르러 초당을 짓고 잠시 한가한 삶을 보냅니다. 이곳을 오늘날 '두보초당'이라 부르고 있어요.
판다는 좋았는데 두보라니 다들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게다가 시를 읽자니. 그래도 낯선 이국 땅이니 이끄는 대로 가는 수밖에요.
이번에도 가위바위보로 팀을 나누어 출발! 다행히 두보초당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도착하니 다른 택시 두대에 탑승한 친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게다가 공교롭게도 어른들과 학생들로 나뉘었네요. 학생들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신문명의 힘은 위대하여 다행히 연락이 닿았네요. 알고 보니 택시가 서로 다른 입구에 내려준 것이었어요.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 입장.
초당에 들어서니 시인의 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두보를 기리는 곳이라 곳곳에 두보의 상을 만날 수 있는데 저마다 좀 다른 인상을 선물합니다. 애절함, 소박함, 단단함 등등.
'두보'도 매력적이지만 '초당'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잘 꾸며진 옛 집을 방문하는 느낌이랄까요? 나무와 풀, 건물과 호수, 꽃과 정자가 멋드러지게 잘 어울려있습니다.
천천히 감흥을 느끼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학생들을 만났어요. 자기들끼리 돌아다녔던 까닭인지 조금 상기된 표정인데, 이 넓고 포근한 공간이 싫지는 않은가 봅니다. 부드러운 날씨, 문득문득 싹이 오른 가지들,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다른 시대로 넘어온 것만 같은 풍경입니다.
저는 제법 국어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까닭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시는 좀 멀게 느껴졌습니다. 나와는 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종종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나기도 했지만, 고전시가는 도무지 감상 불가능한 작품이었어요. 한시는 더더욱.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두보의 <강촌江村>은 한문 교과서에서 만났던 시로 기억합니다. 참 따분했던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용케도 기억나는 구절이 있네요.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시는 어렵고 멀기만 합니다. 시인의 마음에 들어가려면 좀 준비운동이 필요할듯해요. 너무 막연해서.
그러나 공간이 선물해주는 감각의 힘이랄까요? 두보초당에 오니 두보에 한걸음 가깝게 간 것만 같습니다. 두보는 무려 천년 전 사람이지만 천년의 시간이 결코 막막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시간은 흘렀어도 공간은 홀로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품은 공간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찬찬히 걷다 보니 돌 하나, 나무 하나, 풀 하나가 감동을 주었어요. 문을 하나씩 넘으며 새롭게 나타나는 공간은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춘야희우春夜喜雨>, '봄 밤 반가운 비'라는 제목의 이 시는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는 첫 구절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제목을 딴 <호우시절>이라는 영화도 있어요.
추운 겨울을 매듭짓는 봄의 비는 얼마나 반가운지요. 얼었던 마음도 녹고, 새싹이 피듯 새로운 희망을 품기 마련입니다. 전쟁으로 황무지가 된 장안을 떠나 청두에 이른 두보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서북의 매서운 모래바람을 맞다가 청두에 이르러 봄비를 만나니 적잖이 반가웠을 겁니다. 마치 우리처럼.
중국에서는 우리네 설을 춘절이라 한답니다. 봄을 알리는 명절이라는 뜻이지요. 실제로 설이 되면 제법 추위가 가시곤 합니다. 두보초당에 방문하기 바로 전날 비를 맞았는데 그 비가 바로 두보가 말한 '춘야희우'였네요. 비로 촉촉이 젖은 초당의 싱그러움이 내내 우리 마음을 들뜨게 한 것이었답니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반가운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어 만물이 자라나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만물을 적시나 가늘어 소리 없네
들길은 구름에 온통 어두운데
강에 뜬 배 불만 밝구나
새벽 붉게 물든 곳을 보니
꽃들이 겹겹이 금관성에 가득하지
청소년들은 멋지고 예쁜 것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하나의 편견일 뿐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요. 다만 우리네 각박한 환경 탓에 그 감수성이 충분히 발휘될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닐지요.
봄에 푹 젖은 우리는 다들 흠뻑 취해 아쉬운 마음에 두보초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오래오래 있고 싶었을 거예요. 시를 읽고 바람을 맞으며 새소리를 듣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다들 두보초당에 오기 전까지는 두보가 누구인지 잘 몰랐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보를 똑똑히 알고 가는 시간이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그의 시를 제대로 읽고 가는 시간이었다고 해야지요. 그 봄, 싱그러운 날의 시는 내내 기억에 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