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May 06. 2019

경극 대신 천극, 촉풍아운

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3

두보초당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벌써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서둘러 나왔습니다.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다행히 두보초당에서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네요.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학생들은 중국 버스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하더군요. 실상 우리와 큰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에 가면 작은 것 하나도 새롭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버스를 잘 이용하려면 지도 어플은 필수입니다.


예전 중국 버스에는 승무원이 한 명 있어 직접 거리에 따라 돈을 받았어요. 승무원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버스 번호를 소리치며 탈 사람을 부르곤 했답니다. 아직도 중국에서 타던 버스 노선의 승무원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에 울리곤 합니다. 


목적지를 말하고 돈을 주면 잔돈을 거슬러주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건 동전을 싫어했다는 점입니다. 동전으로 버스비를 받으면 무겁다는 이유에서. 참고로 중국은 작은 화폐의 경우 똑같은 값의 동전과 지폐가 있답니다.


예전 승무원은 한 손에 커다란 지폐 뭉치를 들고 잘도 계산해주었어요. 때로 버스비를 잊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잘 찾아냈는지. 붐비는 버스에서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어요. 그것뿐인가요? 행여 목적지보다 더 가면 콕 집어 알려주기도 했답니다. 목적지가 지났다고. 그러나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어요. 많은 것이 바뀌었지요. 


우리는 보통 교통 카드로 버스비를 지불합니다. 현금으로 버스비를 내는 경우는 많이 볼 수 없을 거예요. 중국도 마찬가지랍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버스비를 계산한다는 거예요. QR코드로 찍으면 바로 계산이 됩니다. 스마트폰 지불 수단이 없는 우리는 현금으로 버스비를 계산하는 수밖에요. 짤랑 동전으로 버스비를 내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동전이나 지폐나 똑같은 1위안입니다.


두 대를 이어 붙인 버스였어요. 그래서 안에서 보면 중간에 버스가 꺾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휘어지는 버스를 타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목적지에 내려 공연장을 찾았어요. 커다랗게 Chinese Opera라고 쓰여있는데 좀 낯선 표현입니다. 오페라라니. 오페라 무대는 성악가들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헌데 이 공연에는 짙은 화장으로 기묘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촉풍아운 매표소 전경, 다양한 분장과 복장을 볼 수 있어요. 오른쪽과 같은 조금은 우스운 분장도.


우리는 중국 공연하면 보통 '경극京劇'을 떠올립니다. 이를 영어로 옮기면 Peking Opera라고 해요. 실제로 사전에서 찾아보면 '오페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한 종합예술'이라 합니다. 굳이 성악가가 나오지 않아도 오페라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극을 뜻하는 Peking Opera에서 Peking은 북경北京, 곧 베이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베이징에서 발전한 음악극의 이름이 '경극'이랍니다. '북경극北京劇'을 줄여 '경극'이라고 해요.


중국은 넓은 나라니 '북경극'만 있지는 않겠지요. '사천극'도 있어요. 사천, 즉 쓰촨지역도 예전부터 다양한 공연이 발전한 곳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이 지역의 공연을 '천극川劇'이라 부릅니다. 중국어로 읽으면 '촨쥐chuānjù'라고 해요.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변검變脸'이라는 공연입니다. 순식간에 얼굴이 바뀌어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만들지요.


바로 이 천극川劇을 보러 공연장을 찾았어요. 다만 전통적인 천극은 너무 길고 지루해서 오늘날에는 재미있는 요소만 추려 새롭게 구성해놓았답니다. 이름하야 '촉풍아운蜀風雅韵'! 촉풍蜀風이란 촉나라의 문화, 즉 쓰촨의 공연을 가리키는 말이예요. 아운雅韵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 가운데 정수를 뽑았다는 뜻이 되겠네요.


공연장 안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 버렸어요.


공연장은 공원 한쪽에 있어요. 티켓을 내고 커다란 천막 속에 들어갑니다. 이 천막 안이 공연장이예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연을 볼 수 있어요. 야외이기도 하고, 실내이기도 한 이 기묘한 공간의 공기에 단번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붉은 등이며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 높은 무대까지 눈을 사로잡는 게 한 둘이 아닙니다.


공연 좌석은 크게 둘로 나뉘어요. 하나는 고급 하나는 보통. 이역만리로 여행을 왔으니 고급, VIP 좌석으로 예매했습니다. 그것도 중간의 가장 앞자리로. 이 자리는 자리대로 특별한 혜택이 있습니다. 간단한 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귀파기, 안마, 꼭두각시놀음 등을 해볼 수 있어요. 다만 공연장의 분위기에 어지러워 제대로 설명하지도, 도와주지도 못해 동행한 일행에게 미안하게 되었어요. 


1번 VIP 테이블, 간단한 간식과 차를 마실 수 있어요. 당연히 찻물은 끊임없이 공급됩니다.


좀 있으니 공연을 시작합니다. 뎅뎅뎅, 찡찡찡, 강한 쇳소리가 귓가를 울립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처음에는 귀가 멍멍했지만 조금 지나니 이제 괜찮아지네요. 공연은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어요. 음악, 꼭두각시놀음, 얼후 연주, 그림자극, 그리고 변검까지.


저는 그림자극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손으로 다양한 동물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지. 게다가 제가 약간 비스듬한 자리에 앉았던 까닭에 스크린 뒤로 공연자의 행동까지 볼 수 있었답니다.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동작을 하는지를 보니 더 흥미진진했어요.


장난 꾸러기 남편과 무서운 아내가 나오는 공연도 매우 흥미로웠어요. 비록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해도 표정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다들 배꼽을 잡고 웃으며 즐겼답니다. 


손으로 만든 그림자는 토끼가 되기도 하고, 부엉이가 되기도 해요.


흥미로운 점은, 극장 같은 꽉 막힌 공간이 아니라 중간에 사람들이 움직이기도 하고 공연을 보며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기도 한다는 점이예요. 커다란 주전자를 가지고 다니며 찻물을 따라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중에는 '조용히'라는 뜻의 안내판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공연장에 적합한 안내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답니다. 극장처럼 기침소리도 미안한 그런 곳은 아니었으니까요.


조금은 부산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 공연이 이어졌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변검 무대가 시작되었네요. 코 앞에서 가면이 바뀌는 신기한 모습에 환호 박수가 이어집니다. 옆에 앉은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반쯤 넋이 나갔어요. 자연스레 벌린 입이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휘리릭 옷도 바뀌고...
번쩍! 불이 나오는가 하면, 짜잔~ 가면이 바뀌는 공연


공연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캄캄한 밤이 되었어요. 다들 혀를 내두르며 멋진 공연을 보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공연이라며 모두 흥분한 모습이네요.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알찬 하루였어요.


이제 이튿날이면 다시 시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쉬움을 접어두고 다른 일정을 위해 떠나야 해요. 모두 부푼 마음으로 잠이 들었지요. 이튿날 어떤 사건이 닥칠지도 모른 채. 그렇게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그리 편한 마음으로 잠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야경이 꽤 멋지지만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해요. 내일 아침 기차를 위해 빨리 휴식을!!
판다 인형과 변검 장난감으로 잠자기 전 놀이를. 


매거진의 이전글 반가운 비는 좋은 때를 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