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5
시안은 실크로드의 성지라 불릴만한 곳입니다. 도시 곳곳에 서역과 교류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요. 첫날 들렸던 회민가, 회족거리가 그 대표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먼 옛날 긴 거리를 넘어온 서역 상인들 가운데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에 머물러 사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들의 후예가 오늘날 회족이 되었습니다.
옛 당나라의 장안은 이렇게 이역만리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는 국제도시였다고 해요. 각 지역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종이 몰려 사는 거대 도시는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을 지금도 '장안의 화제'라고 하지요. 저 옛날 장안 사람들이 입에 올렸던 화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과거 이렇게 번영을 자랑하던 대도시 장안도, 당나라의 몰락과 함께 쇠락합니다. 이후 중국의 주요 왕조는 수도를 동쪽에 세웁니다. 장안은 자연스레 서쪽 변방으로 밀려나버려요. 결국 이름도 오래도록 평안을 이룬다는 장안長安 대신 서쪽의 평안을 의미하는 서안西安으로 바뀝니다. 시안Xī’ān은 서안을 중국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구요.
시안으로 돌아와 우리는 시안 남쪽에 숙소를 잡았어요. 시안의 또 다른 명물, 대안탑과 섬서역사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답니다. 대안탑이 있는 대자은사大慈恩寺는 현장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절 입구에 현장스님의 동상이 크게 서 있답니다.
현장스님은 당태종 시기의 인물로 불경을 찾아 서역으로 긴 여행을 떠난 인물이예요. 현장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데 많은 부족함을 느꼈어요. 더 많은 것을 직접 읽고 배우고 싶어 부처님의 고향 인도로 향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허나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어요. 우선 당시 당태종은 나라 밖으로 사람이 나가는 것을 금지했어요. 현장스님은 이 사실을 알고도 국경을 넘으려 했습니다. 자칫하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기로 한 것이지요. 여차저차 국경을 넘어도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마실 물도 제대로 찾기 힘든 사막을 건너야 한다는 점이었지요. 게다가 넓은 초원과 높은 산까지.
현장스님은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인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원 없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여러 경전을 싣고 다시 장안으로 돌아와요. 그 이후 스님은 인도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바로 대자은사에서 머물면서 여러 경전을 번역했어요. 그리고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이 바로 대안탑이랍니다.
이처럼 불경을 깊이 연구한 현장스님에게는 또 하나의 칭호가 붙습니다.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 세 부분에 모두 통달했다는 점에서 '삼장법사三藏法師'라고 불려요. 삼장법사는 이처럼 불교 경전에 빼어난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당연히 현장스님 이외에도 여러 삼장법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나요? 서쪽으로 불경을 구하러 간 스님 이야기. 게다가 그 스님의 이름도 삼장법사! 맞아요 바로 <서유기>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어보았을 거예요. 후한 말 세 나라가 세력을 다툰 역사가 훗날 <삼국지>라는 소설이 되었듯, <서유기>도 실제 역사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바로 당나라 현장스님의 이야기를 멋진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것이지요.
실제 현장스님은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 그 먼 길을 가지만, <서유기>에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그리고 백마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서유기> 내용도 함께 공부하며 여행을 준비했어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역사가 이야기가 되는 현장을 방문하자는 목적이었답니다.
일행 가운데 한 친구는 이 대자은사와 대안탑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어린 시절 <서유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며 그 삼장법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간다는 생각에 너무 두근거린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내 실망하고 말았답니다. 왜냐하면 대자은사는 말 그대로 절이기 때문이예요. 거기에는 손오공도, 저팔계도, 사오정도 없으니까요. 역사 속의 현장스님만을 만날 수 있지 <서유기> 속의 삼장법사를 만날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대신 또 다른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2월 19일, 마침 이 날은 정월대보름이었어요. 그래서 절에서는 법회가 열리고 있었답니다. 천년이 넘은 오래된 절에서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를 듣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이 절이 천년이 넘도록 커다란 도시 한가운데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거리에는 대보름 행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답니다. 그 수많은 사람의 인파를 헤치고 경내에 들어오니 밖과는 전혀 다르게 고요했어요. 절 바깥은 천년의 시간이 지나며 수 없이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바뀌었지만 절 안은 그 변화와 무관하게 또 다른 시간을 간직한 곳이었어요.
천년의 절이 주는 감격을 느끼며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답니다. 한쪽에는 현장스님이 번역한 <반야심경>도 새겨져 있었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의 구절이 바로 여기서 나왔답니다.
반야심경이 새겨진 맞은편으로는 대안탑이 높이 솟아있어요. 이 탑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어찌나 높은지 아래에서 보면 이 거대한 탑을 어떻게 지었을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입장권을 구매하면 탑 안으로 들어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어요.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방으로 트인 유리창으로 시안 시내를 둘러볼 수 있답니다. 시안의 공기가 워낙 나빠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보름 행사를 위해 저 아래 모인 인파들이 새까맣게 보이네요. 지금이야 여러 높은 건물이 시안 곳곳에 있지만 저 옛날 당나라 때에는 이 대안탑이 옛 장안의 가장 높은 건물이었겠지요.
대자은사를 둘러보며 역사의 무게를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과거의 유물을 보는 것은 그것이 관통해온 역사를 함께 만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대자은사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느꼈던 미묘한 감동은 바로 그 시간의 무게가 선물해주는 숭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요.
비록 옛사람은 없지만 옛사람의 자취는 그리 쉬이 지워지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특히 그런 특별한 곳에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