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May 20. 2019

고대인의 유물 속으로

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7

마지막 날 우리의 일정은 섬서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하기로 했어요. 이 박물관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박물관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가 있었던 자리인 까닭에 빼어난 유물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예요. 실제로 방문해보니 적잖이 감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섬서역사박물관을 방문하려면 아침에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 4,000까지 무료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예요. 숙소에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섰습니다. 9시에 개장인데 약 30분 전에 도착했어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서 있네요.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국인이라 따로 창구를 소개해줍니다.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국인, 즉 중국인에게는 웨이신 등을 이용해 예매를 하라고 일러주네요. 


그러니 여권은 필수입니다. 여권을 보여주면 입장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여느 중국의 유적지처럼 짐 검사를 해야 합니다. 크게 문제 될 물건이 없어서 괜찮으려니 했는데 셀카봉이 문제랍니다. 다행히 입구 쪽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두고 오는 건데. 여튼 셀카봉을 맡기고 서둘러 입장합니다. 기왕에 온 거 쾌적하게 관람하려면 사람이 적은 게 좋겠지요.


셀카봉은 안 되지만 휴대폰은 필수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박물관과 달리 내부 촬영이 자유롭기 때문이예요. 멋진 유물을 보면 사진을 찍어둡시다. 


용을 형상화한 청동 유물


섬서역사박물관은 '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역사 순서대로 유물들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고대 유물이 잔뜩 있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곳은 당나라 때까지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장안'이라는 옛 이름이 그 화려한 과거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당나라의 몰락과 함께 이 도시의 명성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후 중국의 수도는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역사박물관'이라지만 딱 절반의 역사박물관이라 해야겠습니다. 저 먼 주나라부터 화려하게 전개되던 유물이 당나라 이후로는 뚝 끊겨버립니다. 대표적인 통일 왕조, 원, 명, 청 시대의 유물은 볼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족함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워낙 고대 유물이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대 유물이 가진 묵직함이 적잖은 울림을 줍니다. 직관적인 멋이 있다고 할까요. 후대 유물의 경우 글이 많아 까막눈이면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적이나 문인화 등이 그렇지요. 그러나 섬서역사박물관에 가득 찬 유물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유물이 대부분입니다. 청동솥과 흙인형,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을 통해 고대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읽지 않아도 고대인의 상상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비언어적 감동이라고 할까요? 흙인형들이 빼곡히 가득한 병마용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동입니다. 문자로 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말로 전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울림이 있어요.


중국은 우리네 역사와 달리 통일 왕조의 수명이 짧았습니다. 몇 백년 단위로 나라가 세워졌다 사라지곤 했어요. 게다가 그렇게 새로 등장한 왕조들마다 제각기 특징들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천천히 시대를 좇아오며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훌륭한 시간여행이자 역사공부라고 해야겠네요.


저 먼 옛날 주나라의 유물부터 눈을 사로잡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주나라 시대의 거대하고도 정교한 고대 유물은 주나라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찍이 공자는 주나라를 크게 찬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주나라를 그토록 칭송했을까요? 아마도 이런 화려한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다양한 크기 다양한 모양의 솥(鼎)을 볼 수 있습니다.



주나라는 청동기 유물, 그 가운데도 커다란 솥으로 유명합니다. 주나라 왕은 아홉개의 커다란 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천하가 아홉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했고, 이처럼 천자도 아홉개의 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구정九鼎, 아홉개의 솥이라 합니다. 


솥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주나라의 청동솥은 제사 도구로 쓰였습니다. 이 커다란 솥은 주나라의 웅장함을, 그리고 그 웅장한 기물을 통해 하늘에 올리는 제사는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주나라가 갈갈이 나뉘고 진나라로 통일되지요. 진나라의 유물은 병마용이 제일일 것입니다. 여러 유물이 있지만 병마용에서 보았던 것도 있는 만큼 그렇게 눈을 사로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나라 시대의 유물이 인상 깊네요.


진나라를 이어 천하를 통일한 한나라는 오늘날 중국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한자漢字니 한문漢文이니 한족漢族이니 하는 말의 한漢이 모두 한나라에서 온 것이니까요. 옛 장안은 한고조 유방이 도읍으로 삼은 뒤 한동안 한나라의 수도였습니다. 때문에 한나라 황제의 무덤도 여럿 있습니다. 다만 이 무덤들은 서쪽에 위치한 까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옛 유물로 아쉬움을 달래야지요. 


소박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흑인형도 많습니다.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모두 중국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장안이라면 당나라를 으뜸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지요. 장안을 국제 도시로 키운 왕조가 바로 당나라니까요. 당나라의 유물은 화려한 그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당삼채唐三彩라는 특유의 색감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전의 유물이 정교하면서도 단조로웠다면 당나라 시대의 유물은 매우 화려합니다. 게다가 서역과 교류가 많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의 유물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말과 낙타 모습의 유물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진나라와 한나라 유물 가운데도 말 형상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유물만큼 생동감 넘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말이 귀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당나라 시대에는 교역이 활발해지고 그만큼 말과 낙타가 많이 쓰입니다. 이 말과 낙타로 수많은 사람이 실크로드를 오갔을 테지요.


서역 사람들의 모습을 한 인형도 많습니다. 건장한 체격과 커다란 골격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인종이 다른 사람들도 여럿 장안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중국도 다민족 국가인데, 그 다양성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화려하면서도 기묘한 유물들은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아름다운 색감과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시간이 더 있다면 더 찬찬히 박물관을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오후에 자유 시간을 가지려면 좀 서둘러야 해요. 이번에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물관을 나서야 했습니다. 다음 목표는 시안의 명물, 시안 성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뒷골목에서 거대한 서점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