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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y 20. 2019

청진사에서 만나는 중국

중국역사문화기행 3기 #18

박물관을 나와 바로 시안 성벽으로 향했습니다. 시안을 여행하면 어디서나 성벽을 볼 수 있지만 그 위에 올라가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지요. 시안 성벽에 올라가면 그 높이와 넓이에 놀라곤 합니다. 어찌나 크고 넓은지. 


며칠 전 원소절 행사로 꾸며놓은 장식들이 성벽 위에도 가득합니다. 색색의 불빛으로 정말 볼만했을 텐데 살짝 아쉽습니다. 그러나 어쩌려나요. 제한적인 시간에 돌아다니는 여행에는 늘 아쉬움이 뒤따르는 법. 


워낙 넓어 성벽보다는 또 다른 거리를 탐방하는 기분입니다.


성벽에 올라 잠깐 구경을 마친 뒤 두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한 팀은 자전거를 타며 성벽을 일주하기로 했고, 다른 한 팀은 청진사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청진사清真寺를 둘러본 뒤에는 저는 저대로 움직이고 나머지 인원은 회민가를 탐방하기로 했어요.


청진사의 '청진清真'은 무슬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청진사란 무슬림 사원을 의미합니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녹색 간판에 '청진清真'이라 쓰인 식당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을 빌리면 할랄식당, 즉 무슬림을 위한 식당입니다. 중국 여행 중에 이런 식당을 만났다면 한번쯤 꼭 경험해보기를 권합니다. 


무슬림 아닌데 괜찮느냐구요? 상관없습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들어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단 외부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청진'이란 깨끗한 식당, 무슬림의 예식에 따라 도축된 고기를 먹는 식당이기 때문입니다. 무슬림은 예법에 따르지 않은 식재료, 특히 돼지고기를 불결하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의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듯 중국의 무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돼지(猪)'라는 말을 입에 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가리키는 '저육猪肉zhūròu' 대신 '대육大肉dàròu'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분위기는 여느 중국 식당과 똑같지만 간판이나 내부 장식을 보면 차이가 보입니다. 무어라 쓴 건지는... 저도 몰라요 ;;


앞서 소개했듯 중국에는 꽤 많은 수의 무슬림이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 가운데 많은 수가 있어요. 이들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후예 회족回族입니다. 이들은 흰 모자를 쓴 것을 제외하면 중국인 가운데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과 큰 차이가 없어요. 


이들과는 달리 겉으로 보아도 확연히 구분되는 무슬림이 있어요. 언뜻 보면 중앙아시아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들도 중국인입니다. 몇몇 소수민족이 있는데 위구르족維吾爾族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겉모습은 물론, 식생활, 문화, 언어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인과 전혀 다릅니다. 


시안에서 그리고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무슬림은 회족들이 대부분입니다. 위구르족 등을 만나려면 시안에서 한참 서쪽으로 가야 해요. 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요.


오늘날에는 한족 가운데도 무슬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런 까닭에 중국의 커다란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청진사를 볼 수 있어요. 그래도 중국 최고의 청진사를 꼽으라면 시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천년도 넘게 오래된 청진사가 있으니까요. 회민가 곁에 위치한 대청진사大清真寺가 바로 그곳입니다.


낡은 현판과 전경. 언뜻 보아서는 이슬람교 사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742년 당나라 현종 천보원년天宝元年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이후 명나라 홍무 2년, 1392년에 다시 세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낡은 흔적이 많습니다.


오래된 사원이 주는 역사성보다 절도 아니고 모스크도 아닌 기묘한 분위기가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스크, 이슬람교 사원의 모습과는 영 다릅니다. 한자로 편액이 걸려있는 데다 기와를 올린 모습이 언뜻 보면 절이나 평범한 옛 건축물처럼 보입니다. 헌데 중간중간 알 수 없는 아랍문자가 섞여 있어요. 


깊숙이 들어가면 커다란 예배당이 있습니다. 천으로 드리워져 있어 안 모습을 구경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하는 곳이니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네요.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고 있나 봅니다. 오랜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신앙이 이어지는 곳이지요.


이곳저곳 둘러보다 한 중국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물어보니 저 멀리 깐수성에서 왔데요. 가족과 함께 예배하러 이곳을 찾았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등.


예배당 안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연히 만난 회족 가족과 찰칵! 선물도 나누어 주었어요.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는 무슬림이라면 머리에 터번을 올린 테러리스트를 쉽게 떠올리곤 합니다. 동시에 대다수의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합니다. 십억이 넘는 무슬림이 모두 그렇게 폭력적일까요. 글세요. 제가 중국에서 만나본 무슬림은 '청진'이라는 말처럼 정결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청진사에서 나와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만나자고. 괜찮을까 했는데 다들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며칠 되었다고 중국에 벌써 익숙해진 까닭이지요. 누구는 시안 시내 곳곳을, 누구는 각종 맛난 음식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친구가 회민가를 다시 방문했어요. 맛난 길거리 음식을 먹으러!!


마지막 저녁 식사는 위구르 음식점을 골랐어요. 丝路餐厅, 우리말로 옮기면 '실크로드 식당'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 만찬을 근사하게 나누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네요. 이야기를 듣자니 자유시간에 저마다 간식을 잔뜩 먹어서 그렇답니다. 각종 길거리 음식을 원 없이 먹었다네요.


시안에서 맛볼 수 있는, 특히 회민가에서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은 이름처럼 회족들의 음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안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또 다른 길거리 음식이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모래 바람을 무릅쓰고 실크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또 다른 중국의 모습을 만나보자고 약속해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먹기 바빠 음식 사진을 찍지도 못했지만 이 날은 좀 여유가 있었어요.


이렇게 우리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역사문화기행'이라는 이름처럼 중국의 역사를,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는데 어땠을까요. 


한 마디씩 소감을 들어보는데 다들 생각보다 멋진 경험이었답니다. 매일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이었다고, 게다가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살이 쪄서 돌아간다네요. 매일 긴 거리를 걸어서 힘들고 피곤했다는 이야기도. 


여행을 기획하면서, 그리고 떠나오면서 중국에 대한 좀 다른 시삭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한국에서 접하는 단편적이고 편향된 시각이 아닌, 직접 현장을 경험하고 느끼는 저마다의 인상을.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룬 것 같아 저도 뿌듯하더군요. 이 배움을 디딤돌 삼아 더 큰 배움으로 도약하기를! 마지막 밤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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